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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개혁, 결기만으론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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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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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집단행동에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파업 사태가 소환되고 있다. 관제사들의 파업에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규모 해고를 포함한 강력 대응으로 노조를 패배시킨 사건이다. 정부가 의사들의 진료 거부에 대해 법과 원칙으로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981년 관제사 파업은 노동운동사에서 의미가 크다. 1970년대 서구를 휩쓸었던 노동운동이 퇴조하고 그 자리에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들이닥침을 알린 상징적 사건이었다. 임금인상과 근무시간 단축을 놓고 정부와 줄다리기하던 항공관제사연합 노조는 협상이 결렬되자 8월 3일 아침 7시를 기해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휴가철로 공항이 한창 붐빌 때였다. 그날 당장 미국 전역에서 7000대의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노조는 “우리가 없으면 하늘길이 마비될 것”이라며 자신했다. 그러나 레이건의 조치는 단호했다. “48시간 내로 업무에 복귀하라. 불복 땐 해고다. 재고용은 없다”고 못 박았다. 설마 했으나 진짜였다. 미복귀자들에게 가차 없이 해고통지서가 날아갔다. 노조원 1만4000여 명 중 1만1400여 명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12년 뒤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일부가 재고용되긴 했지만 해고 인원의 6%에 지나지 않았다. 노조의 완벽한 패배였다.

레이건 승리한 1981년 관제사 파업
그 뒤에는 원칙·여론·계획의 삼박자
의사는 여론 외면, 정부는 거칠기만
길어지면 정부·의사 모두 지는 싸움

이 사건에서 ‘엄정한 법과 원칙’만 읽는 것은 단편적이다. 두 가지를 더 봐야 한다. 하나는 여론, 또 하나는 준비다. 레이건의 강경 조치가 가능했던 것은 시민들의 호응 때문이었다. 당시 갤럽조사 응답자의 70% 가까이가 관제사들의 파업은 잘못이라고 봤다. 정부의 강경책을 지지한 비율이 60%나 됐다. 2년 전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거대노조의 횡포에 염증을 낸 유권자들이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에 표를 던졌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레이건은 이런 여론을 믿고 그 난리통에 캘리포니아에서 느긋하게 휴가까지 즐겼다.

레이건이 여론만 믿었던 건 아니다. 시민 불편이 장기화하면 여론의 화살은 거꾸로 돌아올 수 있다. 레이건은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전직 관제사 및 관제 감독관 3000여 명, 파업 불참자 2000여 명, 군 관제사 900여 명을 전국 공항과 주요 관제센터에 배치했다. 파업 전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불편을 견딜 정도는 만들었다. 몇 달 후에는 20년간 200억 달러를 들여 첨단 관제 시스템을 새로 만들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치밀한 사전 준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처가 1984년 영국병의 상징이었던 탄광노조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요인도 결기가 다는 아니었다. 대처는 석탄 비축을 지시하며 발전소에 쌓아 놓도록 했다. 수송 철로가 막히는 사태까지 대비한 것이다. 긴급 석탄 수입 계획은 물론이고, 석유발전 확대 계획도 짰다. 시대의 물줄기를 바꿀 요량이라면 굳건한 의지, 우호적 여론, 치밀한 계획의 삼박자를 갖춰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를 다루는 정부가 이런 삼박자를 갖췄나. 의지와 여론은 모르겠지만, 치밀한 계획은 ‘글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5년간 매년 2000명을 늘려 놓겠다고 발표했지만, 5년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이라는 시간표가 없다. 지역의와 필수의에 대한 보상 강화, 지역 공공의료 확충 계획 같은 명세표도 없다. 갑자기 늘어난 의대생들 교육은 어떡할 건가. 대통령은 “2000명이 최소”라는 말만 던진 채 요지부동이다. 여론만 믿는 듯하다.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어떤 플랜이 있는지 궁금하다. 일단 총선은 넘기고 보자는 전략인가.

의정갈등이 아직은 ‘공공선 대 사익’의 성격으로 비치는 듯하다. 정부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방증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의사들의 책임이 크다. 의사들이 든 손팻말에 “일방적인 정책추진 국민건강 위협한다”는 문구가 보인다. 10년 뒤쯤 위협받을 국민건강은 걱정되고, 지금 당장 아픈 환자들은 걱정되지 않는가. 공익을 표방한 사익 추구에 속을 국민은 없다. 의사들은 자기들끼리 가까워질수록 여론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설사 이번 갈등에서 의사가 정부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다 해도 여론은 이를 ‘정부의 패배’라기보다 ‘국민의 패배’로 느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가 정책의 초점은 ‘반개혁 기득권 세력’ 의사집단의 힘을 약화하는 데 맞춰질 것은 뻔하다. 벌써 비대면 진료 확대, 의료행위의 의사 독점 완화 등에 대한 요구가 높다. 지지율에도 도움이 되는데, 이런 정책 추진을 마다할 정권은 없다. 이는 앞으로 의사 직역에 의대 정원 수호보다 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돌아가는 판세가 의정 일방의 승리는 어려울 것 같다. 자신의 유리한 점만 보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약점을 직시해야 타협할 수 있다. 정부는 여론의 지지가 철회될 가능성은 없는지, 장기전이 진짜 가능한지 돌아봐야 한다. 의사는 여론을 적으로 돌리는 이 싸움이 장기적으로 자신들에 유리할지 고민해야 한다. 정부든, 의사든 과유불급이다.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