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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밸류업 프로그램과 주가 상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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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주 주식시장은 금융당국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에 따른 기대와 실망으로 출렁거렸다. 일명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우리나라 주식의 저평가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 원인으로 후진적 기업지배구조와 낮은 주주환원율을 지목하고 있으나, 이외에도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몇 개의 정책으로 일시에 해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주가의 장기적 우상향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 상속세 현실화 등
여러 정책·요인 복합적 작용해야
정부 부처 전방위 협력해야 가능

일각에서는 이번 당국의 발표를 두고 기업들의 자율에 맡긴 연성 규범으로, 세제 혜택이나 상장폐지 경고와 같은 강력한 한방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원조 격인 일본의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외견상 도쿄증권거래소가 주도한 만큼 대부분의 내용이 기업의 자율적 참여를 독려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으며, 다만 2026년까지 PBR 1배 미달성 시 상장폐지를 고려할 수 있다는 경고 정도에 차이가 있다.

한가지 생각할 점은 최근 일본의 주가 상승이 단지 작년 3월 실시한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조치’라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기인했는지에 대한 논란이다. 일본은 2014년부터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책을 통해 이사회 중심의 경영, 지배구조의 투명성,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등 지난 10년간 꾸준히 실질적 밸류업 프로그램을 작동해 왔다. 즉, 빌드업을 통해 중원을 넘어 상대 문전까지 다다른 후 마지막 슈팅이 작년 발표된 밸류업 프로그램이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빌드업 과정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 진영에서 상대 골문에 바로 롱슛을 쏜 형국이기 때문에 골을 바라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오히려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은 지배구조개선 및 주주환원에 대한 기업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빌드업 과정의 일환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2010년 12월부터 니케이225지수에 연동하는 ETF를 직접 매수하는 질적 완화를 수행해왔다. 현재 중앙은행이 보유한 ETF는 약 30조엔 정도로 일본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ETF 시장에서 일본은행의 점유율은 2016년 이후에는 꾸준히 50%를 웃돌았다. 중앙은행이 전통적 통화정책에서 벗어나 화폐발행을 통해 주식을 매입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일본의 주가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ETF 매입이 본격화된 2012년 말부터로, 일본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작년 3월까지 무려 3.4배가 올랐다. 동 기간 동안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주가 상승을 보인 것이다. 즉 지배구조개선과 중앙은행의 주식매입을 통해 히말라야 산맥을 쌓은 후 작년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에베레스트라는 봉우리를 얹은 격이다.

또한 최근 일본주가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 시점인 2020년 10월 말은 공교롭게도 엔화가 달러 대비 본격적인 약세를 보이기 시작할 때다. 지난 30년간 디플레이션으로 악전고투한 만큼 인플레이션 유발은 일본 경제에서 핵심적 과제였다. 엔화가 본격적으로 약세를 보인다는 것은 결국 디플레이션 탈출 신호가 타전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인식되었고, 여기에 작년부터 중국에서 이탈한 해외자본이 주로 일본과 인도로 유입되면서 일본의 주가 상승에 탄력이 붙었다. 따라서 최근의 일본주가 상승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밸류업 프로그램은 그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은 그런 면에서 첫술을 뜬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궁극적으로 정부가 지향해야 할 주식시장의 과제는 주가가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추세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면 장기투자가 활성화되고 부동산으로 쏠리는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어 자본비용을 낮추고 주가가 다시 상승하는 선순환이 장착된다. 그러나 이는 지난한 과제로 전 세계에서 오직 미국만이 유일하게 달성했다. 선진국이라는 영국, 독일, 프랑스 포함 유로존 전체 주가 차트를 한번 보라. 2000년 대비 주가가 얼마나 상승했는지.

주가를 우상향시키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나 주주환원율 제고와 함께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및 증여세의 현실화, 불공정거래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부당이득 환수, 중복상장과 벤처 생태계의 왜곡으로 인해 날로 증가하는 상장주식 수의 증가세 완화, 기관투자자 비중 확대, 운용수수료 대비 훨씬 높은 판매수수료의 시정, 연기금과 우정사업본부 등 준정부기관의 위탁 및 중개수수료 현실화 등 많은 정책이 필요하며, 여기에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져야 가능하다. 이는 금융당국뿐 아니라 기재부, 공정위, 중기부, 법무부 및 감사원 등을 총망라해 부처를 초월한 전방위적 협력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당 부분이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과제들이지만 그렇더라도 정부가 이러한 빌드업에 관한 방향성이라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