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9월 학기제로 ‘교육 갈라파고스’ 벗어나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3월은 신학기의 달이다. 학생 본인이나 자식 혹은 친척들이 3월에 입학식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학년 학기를 시작한다. 왜 3월일까? 우리나라에서는 근대교육이 시작된 이래 대부분 봄에 새 학기를 시작해 왔기 때문에 ‘3월 학기제’에 익숙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3월 학기제’는 소수에 속한다. 오히려 ‘9월 학기제’를 채택한 나라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와 교류가 빈번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을 보면 일본, 호주, 뉴질랜드, 칠레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9월에 새 학기를 시작한다.

세계 대부분 국가 9월에 새 학기
3월 학기제는 국제 표준 어긋나
글로벌시대 학생교류 등에 불편
6년간 학기 한달씩 당기면 해결

이 같은 학기제의 차이는 점차 글로벌화하는 환경에서 국제교류를 하는 데 여러 가지 불편함을 준다. 우선 외국으로 유학을 갈 때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유학 올 때 6개월의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해외주재원으로 수년간 파견 나간 부모를 따라갔던 학생들은 심지어 1년을 뒤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불편은 외국 학생들이 한국으로 유학 오는 것을 꺼리게 하는 한 요인이다. 얼마 전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해외 유학생을 지금보다 두 배 가까운 30만명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는데, 학제의 차이가 이 목표 달성에도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3월 학기제를 유지하고 있는가? 아마도 첫 번째 이유는 관성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부터 봄 학기제를 채택하는 바람에 거의 100년 동안 봄 학기제를 운용했다. 정부의 자격시험이나 기업의 채용시험 등도 모두 이에 맞추어 시행되어 왔다. 이처럼 오랫동안 시행되어왔던 제도를 바꾸는 데에는 심리적, 제도적 저항감이 있기 마련이다. 둘째는 봄 학기제에서 가을 학기제로 전환하는 데에는 큰 비용이 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한꺼번에 학기를 6개월 바꾸면 교실이 2배 있어야 하는 등 큰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매년 1개월씩 학사일정을 줄여 6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학기 시작 시기를 바꾸면 큰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특히 요즘은 학령인구가 줄고 있어서 이처럼 점진적으로 시행하면 시설비용은 거의 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학교의 입학 시기를 6개월 앞당기면 국가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는 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경제활동에 들어가는 시기가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하여 늦는 편이다. 남성들은 군 복무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만일 봄 학기제를 가을 학기제로 바꾸고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6개월 앞당겨 5.5세에 입학하게 되면, 청년들의 경제활동 편입 시기가 그만큼 빨라져서 국가 경제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들이 의무교육에 조기 편입되면서 육아 휴직 부모들의 직장 복귀가 빨라지고 미취학 연령기의 사교육비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여름 방학 기간이 늘어나면 학생들의 대외활동이 활발해질 것이고, 학교는 새 학년 시작 전에 충분한 학사운영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9월 학기제’로의 전환은 그동안 여러 차례 논의됐다. 가장 최근의 논의는 코로나 사태로 학교들이 ‘3월 개학’을 못하고 있었던 2020년 봄이다. 기왕 개학이 지연되고 있으니 이를 계기로 아예 학기를 반년 미루어 9월에 개학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 등이 제안하고,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과 일부 시도지사 등 유력인사들이 동조하면서 이슈화되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9월 학기제를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하면서 결국은 없던 일이 되었다.

물론 학기제 개편 같은 중대한 문제를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개학 연기와 같은 일시적인 문제를 계기로 급하게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일찍이 1997년과 2006년에도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에서 9월 학기제로의 전환을 권고한 바 있다. 이처럼 ‘9월 학기제’로의 전환은 그동안 꾸준하게 논의되어 왔고 이에 따라 일반 국민의 인식도 많이 변화한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온라인 여론조사에 의하면 9월 학기제에 대한 선호도가 2004년 조사에서는 22.6%였지만, 2006년 조사에서는 48.8%로 증가하였다. 즉 국제적 통용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경제적 사회적으로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이 주도하는 소위 ‘국제 표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춘 덕이 크다. 그러나 ‘3월 학기제’는 이러한 국제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교육에서 소위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질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사실 봄 학기제의 원조인 일본에서조차 도쿄대를 중심으로 가을 학기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큰 비용 부담 없이 교육의 국제화를 촉진할 수 있는 ‘9월 학기제’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