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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1285억 투입 ‘장기전’ 대비…병원선 “한계” 운영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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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병원 이탈 전공의 7854명에 대한 행정처분 절차를 개시한 가운데, 6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기숙사에 보건복지부가 발송한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붙어 있다. 복지부는 현장 미복귀 확인을 마친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전날부터 면허정지 사전통지서 발송을 시작했다. [뉴스1]

정부가 병원 이탈 전공의 7854명에 대한 행정처분 절차를 개시한 가운데, 6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기숙사에 보건복지부가 발송한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붙어 있다. 복지부는 현장 미복귀 확인을 마친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전날부터 면허정지 사전통지서 발송을 시작했다. [뉴스1]

의대 증원을 둘러싼 반발이 전공의에서 의대 교수까지 확산하지만, 정부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비상진료대책을 위한 1200억원대 예비비 투입을 결정, 진료 공백 메우기에 나섰다. 동네의원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직행하는 길을 막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임시 대책만으로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6일 세종시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사는 국민 보건에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일로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거나 의료서비스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빅5 관계자 “병원 운영 자체 위협받을수도”

이 회의에서 정부는 1285억원의 예비비 지출을 심의·의결했다. 이 돈은 전공의가 이탈해 발생한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사용된다. ▶상급종합병원의 당직 교수·전임의와 비상진료인력 인건비 580억원 ▶공공의료원의 평일 연장 진료, 주말·휴일 진료비 393억원 ▶일반병원이 상급종합병원 전원 환자 진료 시 인센티브 40억원 등이다.

한시적으로 동네의원에서 상급종합병원에 바로 갈 수 없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금은 동네의원(1차 의료기관)이나 중소병원·지역종합병원(2차 의료기관)을 거쳐 상급종합병원(3차 의료기관)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진료 차질이 심해지면 동네의원에서 바로 상급종합병원으로 갈 수 없게 2차 병원의 진료 의뢰를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상급종합병원으로 갈 경우 환자가 진료비를 100% 내게 하는 등 진료비 부담을 높여 3차 병원행을 막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응급실 이용도 제한한다. 119 구급대가 이송하는 경우, 병원 간에 전원한 경우에만 응급실에서 수용하게 된다. 환자가 스스로 응급실에 가면 진료를 못 받게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만들어 곧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진료 차질이 장기화하더라도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중환자실이 제대로 운영되고, 고난도 수술도 웬만큼 유지돼야 한다. 그러려면 중등증(중증과 경증 사이)·경증 환자를 2차 병원으로 내려보내야 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들은 전공의 공백으로 축소 운영에 들어갔다. 서울대병원은 암 단기병동 등을 축소 운영하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정신과 폐쇄병동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전남대병원은 이날 2개 병동을 폐쇄했고, 부산대병원은 유사한 진료과 2개를 병동 1개로 묶는 식으로 축소 운영 중이다. 서울아산병원 등은 환자 감소로 직원들의 무급 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병원 운영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들의 반발은 이날도 이어졌다. 지난 4일 정원을 현재 76명에서 200명으로 늘리겠다고 신청한 경상국립대에선 의대 보직교수 12명이 보직 사직원을 냈고, 평교수 2명이 사직서를 냈다. 전국 33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전날 정부를 상대로 증원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한 수도권 의대 교수는 “전국 의대 교수 모두가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냐’는 심상찮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예비비를 넣고 군의관·공보의로 전공의 공백을 메우면 일부 완화 효과는 있겠지만, 이대로 강대강 대치를 계속하면서 버틸 수는 없다”면서 “이제는 정말 정부가 의협·전공의·교수·의대생 대표를 만나 대화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경상국립대 의대 보직교수 12명 사직원 내

이날 이기식 병무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전공의의 사직서가 수리되면 입대 인원이 굉장히 많아진다”며 “수급 체계 조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이나 이미 병역을 마친 전공의를 제외하더라도 수천 명이 한꺼번에 입영 대상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하지만 올해 의무사관후보생에 대한 의무장교·공중보건의 등 역종 분류와 입영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라, 내년 3월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을 불러 조사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과 관련해 의료법상 업무개시명령 위반, 업무방해 교사·방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주 위원장은 “MZ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신인류인데 선배들이 나서서 이러쿵저러쿵한다고 따를 애들도 아니다”며 “우리가 후배를 교사하거나 방조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앞서 복지부는 의협 전·현직 간부 5명을 업무방해 및 교사·방조 혐의로 고발했다. 주 위원장에 이어 9일 노환규 전 회장, 12일 김택우 비대위원장과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이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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