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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나오면 떼 놓은 당상인데"…野 한강벨트가 심상찮다 [4·10 격전지 한강벨트를 가다]

중앙일보

입력

[SPECIAL REPORT] 4·10 총선 격전지를 가다 ① 서울 표심 가르는 한강 벨트 

[뉴스1]

[뉴스1]

서울은 야도(野都)였다. 최근엔 달라진다지만 대체로 보수당엔 덜 호의적이었다. 간혹 굽이치는 한강을 가르며 부는 산들바람이 돌풍으로 바뀔 때면 서울 전체가 요동쳤다. 부동산·개발 이슈에 민감했다. 선거의 향배를 가른다는 ‘구도’와 ‘바람’이 그 어느 곳보다 센 곳이다. 4·10 총선까지 40여 일, 중앙SUNDAY가 서울의 격전지를 찾았다. 이른바 ‘한강 벨트’로 불리는 서울 광진갑·을부터 마포갑·을까지 9곳 선거구다.

“임종석이 나왔으면 떼 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에서 만난 민주당 지지자들은 물론 일부 국민의힘 지지자도 이렇게 말했다. 다들 더불어민주당이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컷오프 하고 대신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공천하기로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직전 발표였는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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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가 임 전 실장에게 각별하긴 했다. 그가 2000년 34살의 정치인으로, 거물 정치인(이세기)을 꺾었을 때부터 민주당의 아성이 됐다. 6번 총선에서 5번 민주당이 승리했다. 임 전 실장이 두 번(16·17대) 이겼고 최근 세 번(19~21대)은 그의 친구(홍익표 원내대표)가 승리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최근엔 조금 달라지긴 했다.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란 표현에서 드러나듯 성동구가 부동산값 폭등의 수혜지역이 됐고 일부 지역엔 초고가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됐다. 표심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통령 선거와 서울시장 선거에선 국민의힘이 이겼으나 구청장(정원오) 선거에선 민주당이 수성(守城)에 성공했다.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지난달 17~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임 전 실장(33%)과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30%)이 오차범위 내 접전으로 나왔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성수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성범씨는 “동네가 달라졌다. 서울시장 선거 때도 이 동네는 빨간 물결이었다”며 “전체 선거구로 봤을 땐 임종석이었으면 근소하게 질 것을 전현희가 돼서 더 크게 질 것 같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이 지역 공략을 위해 내세운 윤희숙 전 의원이 통하는 듯했다. 성수동에 사는 이은호(59)씨도 “윤희숙은 일 잘하는 거로 유명하지 않나”라고 했다.

그런 데다 민주당의 공천 파열음 여파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도선동 통장 출신이자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김모(68)씨는 “민주당 지지자였고, 구 활동을 했기에 임종석을 잘 안다”며 이처럼 토로했다.

“성수동, 시장 선거 때도 빨간 물결” “임종석 나왔으면 떼 놓은 당상”

“(임 전 실장이) 이 동네에서 마당발이다. 온갖 모임에도 꼭 찾아와서 인사하고 가고 그랬다. 이재명 대표가 완전히 공천을 잘못했다. 여긴 민주당 텃밭이라고 불리는 지역인데 왜 갑자기 전현희를 데려오나. 요즘 이 대표 행보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민주당을 찍어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다음날인 28일 임 전 실장이 공개 예고한 유세현장을 다시 찾았다.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전인 오후 5시30분 이미 150여 명이 파란 풍선을 들고 나타났다. “속상하다”, “분통 터진다”는 이들을 임 전 실장 사람들이 달래고 있었다. 경북 구미에서 왔다는 80대 할머니는 “임종석이 되고 말고가 궁금한 게 아니라 이 당이 어디로 굴러갈지가 궁금해서 왔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사실상 성동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한강 벨트의 또 다른 민주당 아성 서울 마포갑을 찾았다. 노웅래 의원이 4선 했고 선친(노승환)까지 하면 9번 민주당이 승리한 곳이다. 노 의원이 뇌물수수 혐의로 컷오프되자 무소속 출마까지 거론하는 상황이 혼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 정권이 하는 행태가 너무 막 나가는 것 같아 의석수로라도 제재가 필요해 보인다”(김주영·33·대학원생)와, “당내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노웅래가 점점 비호감이 되고 있다. 원래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지금 모습을 보면 답이 없어 국민의힘으로 전향할까 생각 중이다”(정인환·30대·식당업), “경험도 많고 인맥도 탄탄한 노웅래를 쳐내고 앉힌게  경찰 내부에서 ‘총질’하던 사람이냐”(최의성·53·회사원)란 목소리가 엇갈렸다.

민주당의 분열은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60%대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성대전통시장에서 15년 넘게 의류매장을 운영해온 조모씨 부부는 “줄곧 민주당을 뽑아온 지지자고 정권심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번엔 장진영 국민의힘 후보를 뽑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야당 지지자로서 속이 터진다. 공천 때문에 당이 시끄러우면 이 대표가 결단을 내려 사퇴하든 정리하든 해야 하는데…. 이번 선거는 대표 리스크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야당 우위를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30년 넘게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순태(78)씨는 “민주당 텃밭(동작갑)이라 이번에도 무난하게 야당 의원이 뽑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부동산 이슈에 반응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 35년째 왕십리동에 거주하며 성동의 변화 과정을 지켜본 안모(75)씨는 “내 입장에선 성수만큼 여기를 개발해줄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며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던 성수동이 잘 나가는 거 보면 배가 아프다. 성동구 집값이 서울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던데 우리 동네는 그대로”라고 말했다.

개발 이슈는 국민의힘에 유리하게 작동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회사원 이지원(36)씨는 “간신히 집을 샀는데 민주당이 되면 집값이 내려가지 않을까 은근 걱정이 된다”며 “결국 나한테 유리한 정책 기조를 가진 정당을 본다면 그래도 국민의힘이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정당 지지도도 국민의힘이 강세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서울의 국민의힘 지지도는 43%로, 민주당(26%)을 17%포인트 앞섰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이후 조사에선 민주당(36%)이 10%포인트 앞섰다. 이게 후보들의 우열로 직결될지 미지수다. 후보 자체의 경쟁력도 중요 변수여서다. 더욱이 한강 벨트 9곳 중 8곳의 현역 의원이 민주당 소속이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문구점을 하는 류모씨는 “(국민의힘에서) 하태경·이영·이혜훈이 이름값은 있지만 왜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 인제 와서 지역구를 잘 안다고 하면 누가 믿어주나”라고 했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은 “현재 추세는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에 유리하다”면서도 “대진표가 확정되고 본선이 시작되면 그때 다시 평가하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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