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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인구 보너스’ 누리는 아세안에서 답을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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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정인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전 아세안 대사

서정인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전 아세안 대사

1989년 한국과 아세안이 대화 관계를 수립한 지 올해로 35주년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의 아세안 버전인 ‘한-아세안 연대 구상(KASI)’의 3년 차 되는 해여서 의미가 각별하다.

필자는 ‘왜 아세안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정치와 외교·안보, 경제·사회 측면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선, 정치 및 외교·안보 분야의 외교 전략 파트너로서 아세안의 중요성을 고려해야 한다. 미·중 디리스킹(위험 완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정학·지경학적 글로벌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한-아세안 정상회의’ 35주년
베트남 등과 인구·이민 협력 필요
대통령, 아세안 압축 순방 검토를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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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측면에서는 한국의 중국 교역 의존도 축소, 글로벌 공급망 재편, 국제 무역의 분절화 등 국제 경제·통상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아세안이 준비된 경제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반도체·전기차가 경제를 이끄는 시대에 희토류 등 전략 광물의 공급망 파트너로서도 아세안은 중요하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니켈과 코발트가 각각 세계 1, 2위다. 베트남은 희토류 매장량이 세계 2위다. 이 분야에서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은 한국 입장에서 말 그대로 ‘VIP 국가’여서 긴밀한 협력이 절실하다. 사회 분야에서 인구 절벽 위기에 직면한 한국은 ‘인구 보너스’를 누리는 동남아 국가들과의 이민 및 노동 협력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동남아 정책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는다. 역대 정부는 정권이 바뀌어도 아세안을 중시하려고 노력해 왔다. 동아시아 외교(김대중 정부), 서울에 한-아세안 센터 설립(2009년, 이명박 정부), 부산에 아세안문화원 설립(2017년, 문재인 정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윤석열 정부도 맞춤식 아세안 외교 정책인 ‘한-아세안 연대 구상’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 두 차례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아세안 중시 정책을 발표했다. 아세안의 핵심 국가인 인도네시아·베트남과는 양자 정상 방문을 조기에 진행할 정도로 공을 많이 들였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조기에 방한했고, 베트남 국가주석은 첫 국빈 방한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윤석열 정부에서 동남아에 대한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고, 한국이 워싱턴만 바라보며 동남아는 워싱턴 렌즈를 통해서 본다는 시각이 아세안 일부에 존재한다. 지난해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주요 대화 상대국 중에서 아세안 내 전략적·경제적 영향력, 미·중 경쟁 시 위험을 낮출 헤징 파트너 등 여러 항목에서 순위가 낮았다.

그동안 ‘중국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베트남에 집중하던 한국 기업들이 이제는 ‘제2의 베트남’으로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시점에 한국 정부가 과거보다 동남아를 덜 중시한다는 현지의 일부 오해와 우려를 우리 정부가 불식시켜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지속가능한 중장기 아세안 전략을 수립하고 초당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 전략은 일관성, 특정 분야에 편중되지 않는 종합성, 상호 실질 이익에 부합하는 구체성, 양자·소다자·다자를 아우르는 입체성이 중장기 전략의 방향성이 될 수 있다.

둘째, 역대 일본의 신임 총리가 그랬듯이 한국 정상도 아세안 지역을 한번 방문할 때 여러 국가를 동시에 압축 방문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아세안 정상들의 한국 방문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아세안 외교에선 정상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

셋째, ‘아세안+3(한·중·일)’뿐 아니라 미국도 참여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 중심의 동심원적 협의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해양 안보, 사이버 안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변화, 디지털 경제, 에너지 등 한-아세안 서로에게 실질적 이익이 되는 협력 분야 및 의제를 발굴해 공동으로 추진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국과 아세안은 진심 어린 친구가 될 수 있다. 한국도 아세안도 복합위기 속에서 마음을 나눌 진정한 파트너를 찾고 있는 올해가 바로 적기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정인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전 아세안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