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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서울 용산이 도쿄처럼 국제경쟁력 갖추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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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수정 서울시 도시건축 공동위원

이수정 서울시 도시건축 공동위원

살다 보면 ‘그때 안 하길 다행이다’ 싶은 것들이 있다. 서울시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추진 발표를 보며 든 생각이다. 2006년 코레일은 민간사업자로 삼성물산 컨소시엄을 선정했지만, 사업은 진행되지 못했다. 개발계획에 대해 코레일, 민간사업자, 서울시의 견해차가 컸던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지 못해서다.

2013년 도시개발구역지정이 해제된 이후부터 서울시와 코레일이 머리를 맞댔다. 먼저 용산 미래 비전을 수립하고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서울시는 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소통을 130회나 했다. 서울을 ‘글로벌 톱5 도시’로 만든다는 비전을 제시했고 융복합 국제업무 도시, 입체보행 녹지 도시, 스마트 에코 도시, 동행 감성 도시라는 전략도 추가됐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안 주목
도쿄의 개발 성공 방식 참고해
토지임대사업 방식 검토해볼 만

그러나 여기에는 사업방식이 빠져 있다. 개발계획은 공간계획이다. 그 공간을 구현하는 방법이 사업방식이다. SH공사가 도시개발사업의 기반시설을 조성하면 코레일이 70%, SH공사가 30%의 소유권을 갖는다고 한다. 이후 조성된 토지공급은 최고가 입찰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는 모리빌딩이 개발한 ‘아자부다이힐스’(사진)가 준공됐다. 쓰지 모리빌딩 CEO는 “일본은 미국을 못 이겨도 도쿄는 뉴욕을 누를 수 있다”고 자부했다. 아자부다이힐스는 용산의 5분의 1가량 되는 작은 땅에 빌딩 10개 동을 지었다. 여기에 에르메스 명품 매장, 브리티시 스쿨, 게이오대 예방의학센터까지 들어선 진정한 복합단지다. 이런 건물이 모여서 도쿄의 도시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비결은 무엇일까. 모리빌딩은 1989년부터 아자부다이힐스를 개발하기 시작해 5조6000억원의 건설비를 투입해 34년 만에 완공했다. 집념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부동산 개발사업자(디벨로퍼)는 분양 사업으로 쉽게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까.

도쿄의 비결은 땅값에 있다. 모리빌딩이 개발한 롯본기힐스나 아자부다이힐스 모두 지주(地主) 공동사업이다. 땅값이 안 들어가니 시간을 쓸 수 있다. 반대로 자기 땅이 없으면 땅값 상승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없다. 디벨로퍼의 본질인 ‘땅의 가치를 건물로 구현’하기 위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야만 하는 것이다.

높은 땅값에 눌리다 보면 계획은 성급해지고 공익을 생각할 여유도 없다. 처분도 빨라져야만 한다. 그렇다고 용산 땅을 싸게 넘길 수도 없다. 해답은 토지임대 사업방식이다. 좋은 사례가 한국에도 있다. 여의도 IFC는 서울시의 부지를 빌려 개발한 사업이다. 여의도 파크원은 종교 부지를 임대해 개발한 사업이다. 이 두 건물이 지금의 여의도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땅을 사서 하는 개발이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IFC사업에 투자한 AIG는 안정화 이후 이익을 실현했다.

여기서 리츠(REITs) 제도에 주목한다. 리츠는 국민이 우량 부동산에 소액으로 투자해 배당을 받는 제도다. LH가 판교 알파돔 6-4블록 토지를 공급할 때 리츠 방식을 적용했다. 이를 기반으로 만든 신한알파리츠가 지금 리츠 주식 중 대장주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리츠로 연계한다면 여기에 투자한 국민은 용산 랜드마크를 보면서 ‘내 건물’이라고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토지를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돈은 천천히 돌아온다. 처음에는 기대보다 수익이 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도시경쟁력을 올릴 수 있다면 매각수입이나 임대수입에 견주기 어려운 큰 가치임을 서울시와 코레일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

버나드 쇼는 『쇼에게 세상을 묻다』에서 ‘문제는 토지’라고 일갈했다. 땅을 가진 자가 결국 부를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디벨로퍼의 아이디어가 꽃피운 건물이 외국기업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공간이 된다. 건물은 리츠로 상장돼 일반 국민이 투자한다. 외국기업들이 낸 임대료가 배당으로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하면 용산은 대한민국의 물자가 모이던 곳에서 세계의 자본이 모이는 곳으로 탈바꿈할 수 있고, 서울 용산의 도시경쟁력이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100년 후에도 공공의 소유권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이 도약할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수정 서울시 도시건축 공동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