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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의사란 어떤 직업인지 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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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국가교육위원회 위원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국가교육위원회 위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어떤 직업인가. 20세기 미국의 의료 교육 개혁에 기여한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교수는 “의학 교육은 대학에 거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직업들과 비교해 의사의 주된 가치관으로 이타주의를 역설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공의 사태’를 접하면서 의사란 직업에 대해 곱씹어 본다. 일부의 일탈이라고 믿고 싶지만, ‘전공의 사직 매뉴얼’에 처방전 등 의료 자료를 삭제하고 비밀번호를 바꾸고 나오라는 행동 지침까지 등장한 것은 충격적이다. 대체 인력의 접근을 막고 돌보던 환자의 치료를 방해하려는 행태가 선을 넘었다.

스타는 개인능력 발휘해 고소득
의사는 희소성 덕분에 큰돈 벌어
첨단 과학기술 분야도 인재 가길

지대(Rent)는 토지를 사용한 대가인데, 토지와 노동 모두 생산요소이니 노동에 대해서도 지대라 부른다. 노동을 공급한 근로자도 지대를 받을 수 있는데 이 경우는 ‘경제적 지대’라 표현한다. 필자가 교수로 일하면서 월 1000원을 버는데 만일 다른 일(직업)을 했다면 300원밖에 벌지 못한다고 가정해보자. 두 금액의 차이, 즉 700원이 필자가 추구한 지대이자 교수 직업을 하면서 받는 일종의 웃돈인 셈이다.

개인의 전체 소득에서 경제적 지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직업마다 다르다. 직업의 희소성이 클수록 경제적 지대가 커져 소득이 높아진다. 인기 연예인과 프로 선수, 의사·변호사 같은 직업이 그렇다. 스타 연예인이나 프로 선수는 탁월한 기량으로 유명인이 되고 고소득자가 된다.

하지만 의사나 변호사의 경우는 경로가 좀 다르다. 정부가 의대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입학 정원을 규제하고 희소성을 높여준 덕분에 지금까지 높은 경제적 지대를 추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표적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나 변호사는 공급을 늘리려는 정부의 증원 정책에 완강하게 저항해왔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의료업 종사자의 연평균 소득은 2021년 기준 2억6900만원이었다.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4년 1억7300만원과 비교하면 7년 동안 55.5% 증가했다. 반면 변호사업 종사자의 연평균 소득은 같은 기간 1억200만원에서 1억1500만원으로 올라 12.7% 증가에 그쳤다. 의사와 변호사의 연간 소득 격차는 7년 사이 1억5000만원(의사가 변호사의 2.5배)까지 벌어졌다.

한국 의사의 소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병·의원 봉직의의 연간 임금 소득은 2020년 19만2749달러(약 2억6200만원)로 회원국 가운데 1위였다. 한국 개업 전문의의 연봉 수준은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6.8배 높았다. OECD 회원국 중 격차가 가장 컸다.

이처럼 한국 의사들의 소득이 높은 것은 의사 수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에서 한국은 2.6명인데, 이는 OECD 평균치(3.7명)에 크게 못 미친다.

변호사의 소득 증가 속도가 둔화한 것은 2009년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때문으로 보인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합격자는 연간 1500명(기존 사시 합격생은 1000명 수준)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1700명대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 수는 2010년 무렵 1만명 남짓에서 지금은 3만명을 넘었다. 변호사 단체들도 합격자 수를 1200명 이하로 줄여 달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법무부는 매년 로스쿨 입학 정원(2000명) 대비 75% 이상 범위에서 합격자를 결정한다.

대한의사협회 간부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한 말은 정부 위에 의사 집단이 군림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과거 의약분업과 비대면 진료 논란, 그리고 코로나19 시기에 의대 증원 문제가 일어났을 때 환자를 볼모로 한 위협이 먹혔던 학습효과일 것이다.

필자는 이번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으로 의사의 희소성이 누그러져 의대 인기가 좀 떨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최고의 두뇌 집단이 의대에만 쏠리지 않고 국가 발전을 위한 첨단 과학기술 산업 분야에도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최고의 위상을 누리는 의사라는 직업이 지대를 챙기는 수준을 넘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국가교육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