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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동독의 ‘두 국가론’ 거부한 서독의 경험 배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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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인호 한동대 법학부 교수·한동통일평화연구원장

송인호 한동대 법학부 교수·한동통일평화연구원장

북한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대남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를 드러내자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북한은 이미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경제난 심화로 인한 내부 체제 결속 도모 의도, 4대 세습을 위한 기반 조성, 국제질서 변화 와중에 한반도 주도권 강화, 핵 무력 사용의 정당성 확보 등으로 분석할 수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과거 동서독 분단 시기의 동독이 취한 입장과 유사하다. 동독은 1972년 체결한 ‘동서독기본조약’을 항구적인 분단 조약으로 해석하고,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통일 조항을 삭제했다. 독일인이 ‘사회주의 민족’과 ‘자본주의 민족’으로 분리됐다고 선언하는 등 서독과 구별된 독자적인 국가 지위를 주장했다.

북한 두 국가론은 과거 동독 닮아
헌법 고수한 서독이 통일 앞당겨
국가 관계로 전환 논의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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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당시 서독은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에도 동독을 국제법상 국가로 승인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비록 동서독기본조약 제6조에서 내정불간섭을 규정하고 있으나, 서독기본법에 따라 동독 주민에 대한 서독의 헌법상 보호 의무는 지속한다고 해석했다. 이처럼 서독의 확고한 입장이 독일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의 경우 1948년 제헌헌법 때부터 존재했던 영토 조항(제3조)에 따라 헌법의 규범적 효력은 북한 전역에도 미치게 돼 있다. 헌법 제4조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통일의 가치적 지향점, ‘평화’라는 방법적 한계를 각각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 조항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대법원은 남북 관계는 국가 관계가 아니며, 북한의 법적 지위는 ‘반국가 단체’와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는 이중적 지위에 있다고 판단해왔다.

그런데 국내 일각에서도 남북 관계를 ‘국가 관계’로 취급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한의 평화 증진을 위한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과연 ‘두 국가론’이 현시점에서 한반도 평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두 국가론은 헌법상 영토 조항의 폐기 또는 축소를 전제로 하고, 나아가 통일 조항의 폐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영구 분단론과 맥락을 같이 하게 된다. 북한이탈주민 보호에 법리적 지장을 초래하고, 북한 급변사태 등 북한 이슈에 있어서 한국이 관여할 수 있는 중요한 헌법적 근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남북한은 국가 관계가 아니라 언젠가 통일할 상대방이라는 특수 관계론이 그동안 남북주민의 상호 포용성을 높여주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에 기여하는 긍정적 기능을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3년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개정으로 세습 체제를 공식화하고, 2022년에 ‘핵 무력 정책법’을 도입한 북한 당국이 남북 특수 관계론을 포기한다고 한국도 포기한다면 자칫 북한의 이중적 지위 중 ‘평화 통일을 위한 동반자 관계’는 사라지고 북한 주장처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만으로 전환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북한의 정책 변화는 북한 주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국가 관계 전환 논의는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 남북 관계를 국가 관계로 전환하는 것은 북한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체제로 변한 경우에 논의하면 될 문제다.

대북 정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두 국가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남북합의서의 규범력 부여 요건은 아니다. 규범력 부여는 여야 합의를 통한 이행 법률 형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일을 비롯한 남북 관계 이슈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 존중, 자유와 인권 증진이라는 인류 보편의 문명사 발전이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한 헌법적 책무로서 북한 주민도 원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자세는 북한의 정책 변화 의도와 여파를 주시하면서 우리의 통일과 대북 정책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일이다. 남북한이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반도 가치 공동체’에 대한 꿈을 미래 세대에 심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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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호 한동대 법학부 교수·한동통일평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