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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깨워준 냉혹한 국제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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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동찬 변호사·전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

신동찬 변호사·전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

오는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돈바스에서 내전을 조장했다. 8년간 저강도 전쟁을 이어가다 지난 2022년 2월 24일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개시했다.

당초 러시아는 볼로디미르 젤린스키(사진) 대통령이 이끄는 반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정부를 손쉽게 무너뜨리고 ‘친러 괴뢰 정권’을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푸틴의 야심은 일치단결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수포가 됐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 2주년 맞아
애매한 중립으론 안보 못 지켜
동맹 강화하고 자주국방 노력도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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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민은 핵을 보유한 세계 2위 군사대국인 러시아의 침략을 막아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럽연합(EU)의 군사적 지원과 대러 경제제재 등의 도움으로 버텨왔다.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은 가뜩이나 코로나19 등으로 취약성을 노출했던 전 세계 공급망에 큰 타격을 줬다.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세계적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 흑토지대가 전쟁 와중에 전장으로 돌변했다.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길이 전쟁으로 큰 지장을 받게 되자 많은 개발도상국이 큰 고통을 겪었다. 한국도 밀가루 가격 폭등과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강 건너 불이 아니었던 셈이다.

기업들의 타격도 컸다. 탈냉전기에 추진한 ‘북방 외교’에 따라 러시아와 수교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러시아 시장에 진출해 자동차·가전·휴대전화 업종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러시아가 이에 보복하는 과정에서 큰 타격을 봤다. 공들여 구축한 러시아 공장 등을 헐값에 넘기고 철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전쟁으로 지정학이 요동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잘 대처해 왔을까. 문재인 정부 말기에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미국 주도의 대러 수출 통제에 동참을 늦췄다.

그 때문에 주요 국가 중에서 한국만 미국의 ‘해외직접생산품 규칙(FDPR)’에 따른 30여개 예외국에 포함되지 못해 기업들이 한동안 큰 낭패를 겪었다.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 구도로 급속히 재편되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대러 제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폴란드 등의 동유럽 방산 시장에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는 계기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 안보에도 암운을 드리웠다. 전세가 불리해진 러시아가 북한의 재래식 포탄과 미사일 지원을 요청하자 김정은이 호응했다.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을 전후해 위험한 무기 거래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땅에 북한산 탄도미사일이 떨어졌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무기의 실전 테스트에 이용하고, 러시아가 첨단 군사 기술을 북한에 몰래 이전한다면 대한민국 안보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정적 나발니 의문사 이후 치러지는 다음 달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은 무난히 당선될 것이다. 문제는 11월로 다가온 미국 대선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패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 또 한 번 우크라이나 전쟁 판도가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라시아의 ‘거대한 체스판’에서 벌어진 지정학적 지진이다. 우크라이나는 냉전 종식 과정에서 핵을 포기하는 대신 영토와 주권을 보장받았지만, 러시아의 침략으로 안보 보증서는 휴지가 됐다. 6·25전쟁 경험을 생각하면 뼈저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주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은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계기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중 갈등은 조만간 또 불거질 공산이 크다. 결국 애매한 중립 노선은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전쟁이 생생하게 보여줬다.

동맹을 튼튼히 하고, 우방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자주국방 역량을 키우는 길만이 안보를 지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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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찬 변호사·전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