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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이 오스카 작품상 후보…놀란도 "아름답다" 극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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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영화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 개봉(6일)에 맞춰 내한한 한국계 감독 셀린 송을 2월 2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CJ ENM

영화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 개봉(6일)에 맞춰 내한한 한국계 감독 셀린 송을 2월 2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CJ ENM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결혼은 전생에 8000겁 (만난) 인연의 결과다.”

오스카 작품‧각본상 후보작 #‘패스트 라이브즈’ 6일 개봉 #한국계 셀린 송 감독 데뷔작 #한국말 ‘인연’…美 “아름답다”

한국계 셀린 송(36‧한국명 송하영) 감독의 영화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말 ‘인연’(Inyeon)의 개념을 이런 대사로 설명한다. 영화에선 미국 뉴욕의 극작가 노라(그레타 리)가 12살에 한국에서 가족과 이민을 떠나며, 헤어진 첫사랑 해성(유태오)과 24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한다. 작가인 백인 남편 아서(존 마가로)와 함께다. 자신을 한국이름 ‘나영’으로 부르는 해성의 한국말을 남편에게 통역하며 노라는 새삼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및 각본상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사진 CJ ENM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및 각본상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사진 CJ ENM

각본을 겸한 송 감독의 반자전적 이야기로, 미국 영화사 A24와 한국의 CJ ENM이 합작했다. 지난해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 첫 공개 후, 미국감독조합상 신인감독상,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작품상 등 세계 유수 영화상 75관왕을 차지하며 호평받았다. 오는 3월 10일(현지시간) 개최될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각본상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아시아계 여성 감독이 데뷔작으로 작품상 후보에 오른건 96년 오스카 역사상 최초다.
“영혼과 영혼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에 대한 탐구”(뉴욕타임스) “미묘하게 아름다운 영화”(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현지 찬사에 대해 송 감독은 “어느 나라 관객이든 이 영화를 보면 ‘인연’의 의미를 알게 된다. 누구나 느꼈지만 이름이 없었던 그 감정을 단숨에 이해했다더라”고 말했다.

한국말 '인연' 담자, 놀런 "미묘하게 아름답다"

그는 영화 ‘넘버3’ ‘세기말’을 만든 송능한 감독의 딸로, 서울에서 태어나 12살에 캐나다로 이민 후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해왔다. 아마존 시리즈 ‘시간의 수레바퀴’, 한국 만재도 해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직접 미국 무대에 올린 연극 ‘엔들링스’ 등 이민 1.5세대로서 정체성 고민을 작가로서 다뤄왔다.
“연극을 10년 넘게 해보니 언제나 개인적인 지점에서 쓰기 시작한, 나만의 이야기가 (관객한테) 닿더군요.” 전날 간담회에서 이렇게 밝힌 그를 2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단짝친구로 자란 12살의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계속되어온 두사람의 관계를 되새기는 이틀을 담았다. 사진 CJ ENM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단짝친구로 자란 12살의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계속되어온 두사람의 관계를 되새기는 이틀을 담았다. 사진 CJ ENM

-영화를 착안한 계기는.  

“어느 날, 한국에서 놀러 온 어린 시절 친구와 남편과 함께 뉴욕의 바에서 술을 먹는데 둘의 대화를 통역해주다 보니 제가 살아온 정체성‧역사의 두 부분을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과거‧현재‧미래가 같이 술을 먹는 느낌이 들었다.”

-‘인연’을 한국말로 등장시켰는데.  

“주인공들의 관계를 인연이란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인연은 작은 관계에도 깊이를 더해준다. 인생을 더 깊게 보게 해주는 파워풀한 단어다. 이 영화를 만든 후 정말 많은 첫사랑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전 세계에서 만난 관객들이 각 나라 억양으로 ‘인연’을 발음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제목은 왜 ‘패스트 라이브즈’(전생)로 달았나.

“한 번의 인생에도 전생이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간다면, 부산 시절이 전생 같을 수 있다. 다중우주나 판타지가 아니어도, 보통 사람들이 많은 시공간을 지나면서 특별한 인연, 신기한 상황을 겪는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3분의 1은 서울, 나머지는 미국 뉴욕에서 찍었다. 대부분 동네 토박이들의 장소를 위주로 촬영했지만, 뉴욕과 이민자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은 관광객 신분의 해성과 이민자로 살아가는 노라의 관계를 드러내는 장소로 등장시켰다. 사진 CJ ENM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3분의 1은 서울, 나머지는 미국 뉴욕에서 찍었다. 대부분 동네 토박이들의 장소를 위주로 촬영했지만, 뉴욕과 이민자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은 관광객 신분의 해성과 이민자로 살아가는 노라의 관계를 드러내는 장소로 등장시켰다. 사진 CJ ENM

-왜 연극이 아닌 영화로 만들었나.  

“이 영화의 빌런(악당)은 24년이고, 태평양이다. (웃음) 해성과 나영이 함께할 수 없게 만든 장소와 시간이 중요했다. 서울과 뉴욕 자체가 주인공이다. 두 도시가 얼마나 다른지 시각적으로 제대로 보여줘야 했다. 마흔이 다 된 어른 안에 12살짜리 어린애가 공존하는 모순을 표현하기에 영화가 더 맞는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영화의 30%가량을 촬영했는데.  

“진짜 좋았다. 한국 스태프들과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며 ‘홈커밍’한 느낌이었다.”

-관광지보다 오래된 동네 골목, 고깃집 등을 찍었다.  

“뉴요커만 느낄 수 있는 뉴욕, 서울사람만 느낄 수 있는 서울을 담고 싶었다. 살아본 사람에게 진짜 아름답고 의미 있고 소중한 곳. 소주 마시는 고깃집도 처음 로케이션 매니저가 찾아준 곳은 느낌이 안 와서, 매니저님이 촬영 끝난 뒤 가고 싶은 고깃집을 알려달라고 해서 찍게 됐다. 뉴욕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에서 촬영한 건, 관광객(해성)과 이민자(노라)의 스토리에 의미있는 공간이어서다.”

"너무 한국적이다" 의미? "한국 사람끼리 아는 비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주인공 해성(유태오)과 그가 '나영'이란 어릴적 이름으로 부르는 노라(그레타 리), 노라의 남편 아서(존 마가로)가 뉴욕의 바에서 술잔을 나누는 장면이다. 두 남자는 한국말, 영어로 나눈 대화를 통해 각각 '노라'와 '나영'이란 이름으로만 알던 한 사람의 삶의 나머지 부분에 눈떠간다. 사진 CJ ENM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주인공 해성(유태오)과 그가 '나영'이란 어릴적 이름으로 부르는 노라(그레타 리), 노라의 남편 아서(존 마가로)가 뉴욕의 바에서 술잔을 나누는 장면이다. 두 남자는 한국말, 영어로 나눈 대화를 통해 각각 '노라'와 '나영'이란 이름으로만 알던 한 사람의 삶의 나머지 부분에 눈떠간다. 사진 CJ ENM

한국 영화‧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해온 독일 태생 유태오, 한국계 미국 배우 그레타 리 등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다. 유태오는 이 영화로 한국 배우 최초로 제7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뮤지션 장기하도 서울 장면에 출연한다. 해성 역 오디션에 응시한 그를 해성의 친구로 출연시켰다.
영화엔 ‘너무도 한국적이다(So Korean)’라는 대사도 나온다. 노라는 부모와 함께 살며 직장생활을 하는 해성을 “평범한 한국 남자”라며 이렇게 말한다. 20여년전 한국을 떠나 이민자로 살아온 노라의 시선이 담긴 표현으로 보인다. 송 감독은 “한국 사람끼리 공유하는 비밀, 아는 사람끼리 웃을 수 있는 대사로 넣어봤다”고 했다.
송 감독에게 ‘패스트 라이브즈’는 “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같은 작품”이었다. “이민자의 이야기지만, 새로운 곳에 이주해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진 지금의 보편적 감정을 그렸다”면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만난 관객은 영화를 보고 아일랜드 더블린에 두고 온 여자친구가 기억난다더라. 이민자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이민자들만의 것이 아닌 글로벌한 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이민자로 살아온 셀린 송 감독에게 "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같은 작품"이었다. 사진 CJ ENM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이민자로 살아온 셀린 송 감독에게 "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같은 작품"이었다.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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