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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테러 관리 능력 왜 중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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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3년도는 한.미관계 50주년을 회고하고 기념할 수 있는 상징적인 해이지만 동시에 1983년에 발생한 아웅산 참사의 20주기를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국 이후 가장 비참한 테러 공격으로 기록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논의와 관심없이 스쳐 지나가 버렸다. 어떠한 이유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과 정부도 아웅산 참사를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가에 대해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불행했던 과거 아무도 책임 안져

83년 10월 9일, 미얀마의 수도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소 참배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 일행은 북한의 공작원들이 설치한 원격조종 폭탄으로 천인공노할 테러 공격을 당했다. 한국의 부총리.장관 등 수행원 17명이 순국했고 14명이 부상했다. 미얀마 정부의 수사 결과 이 사건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친필 지령을 받은 북한 인민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팀들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에서는 20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고 특히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단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비록 북한이 강행한 테러였지만 보다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위해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극히 제한된 견해이기는 하나 아웅산 사건과 87년의 KAL기 폭파사건이 모두 한국 정부에 의해 조작됐다는 시각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웅산 사건은 20세기의 수많은 테러 중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아웅산 사건의 대표적인 교훈은 진리를 아무리 피한다 하더라도 역사적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북한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아웅산 사건과 KAL기 폭파 사건, 북한의 인권 실태, 그리고 국군포로 문제 등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회피할 경우 후세들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불과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합의 차원에서 제주도의 4.3사태에 대해 국가원수로서 사과했고 盧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찬반론도 분명히 있으나 왜곡된 역사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반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20년 전에 희생당한 아웅산 사건의 유가족들에게는 누가 사과할 것이며 누가 그 역사적 책임을 진단 말인가.

불행한 과거를 발판으로 거듭나고 더 나아가서 보다 발전적인 모습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최소한 아웅산 사건의 또 다른 대표적인 교훈인 정보실패에 대한 총괄적인 후속조치들을 과연 얼마만큼 실천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웅산 사건은 핵심적인 정보실패였고 특히 허술한 위기관리 체제에 의해 발생한 강도 높은 테러 공격이었다.

정보실패 사례로 아웅산 사건만 거론할 수는 없으나 지난 20년 동안 우리 정부의 대(對) 테러 관리 능력이 얼마만큼 강화되고 체계화됐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물론 2001년 9월 11일 테러와 2002년 10월 16일의 발리 테러 사건이 입증하고 있듯 완벽하게 계획된 테러를 1백% 예방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기 경보능력 강화, 위기관리 체제의 현대화, 유기적이고 신속하게 보유할 수 있는 우방과 관련국들과의 정보 교류, 그리고 초국가적 혹은 다국적 테러 집단들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 획득 등의 예방조치들을 실행할 경우 테러 공격을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어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특히 부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 국회서 결정할 對테러대책회의

테러방지 강화의 일환으로 정부는 2001년 11월에 제1차 테러방지법안을 제출했고 인권침해 소지가 많았던 관계로 현재 수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국회정보위원회에서는 공청회를 포함, 현재 제출된 법안을 심의 중이며 관련 부처 간의 의견도 조율하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국무총리를 의장으로 한 '국가 대 테러대책회의' 신설과 국가정보원장 소속으로 '대 테러센터'를 두는 것이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 국회의 최종적인 결정을 앞두고 있다. 테러법에 대한 반대 의견도 분명히 있는 만큼 신중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으나 테러법을 심의하고 있는 국회에서 20년 전에 발생한 아웅산 테러에 대해 보다 진솔하게 회고했으면 한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아웅산에서 순국한 분들과 그들의 유가족을 진심으로 기리는 방안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정민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