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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클래식 불모지? "어둑어둑한 아름다움 저평가됐다”

중앙일보

입력

결성 17년째인 노부스 현악4중주단. 왼쪽부터 바이올린 김영욱ㆍ김재영, 비올라 김규현, 첼로 이원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결성 17년째인 노부스 현악4중주단. 왼쪽부터 바이올린 김영욱ㆍ김재영, 비올라 김규현, 첼로 이원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클래식 음악에서 영국의 위치는 독특하다. 런던은 역사적으로 활발한 클래식 시장이었다. 17세기의 독일 작곡가 헨델도 탐내던 활동 무대였고, 하이든부터 라흐마니노프까지 많은 작곡가가 런던에서 명성을 얻었다. 악보 출판, 음악가 매니지먼트 뿐 아니라 음반 산업도 영국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브리티시 나이트'로 공연 여는 노부스 콰르텟 #저평가된 영국 작곡가들의 음악 되살려내

그런데 작곡가는? 우선 1600년대의 헨리 퍼셀을 떠올릴 수 있지만 대중에겐 익숙하지 않고, 귀화한 헨델을 영국 음악으로 끌어올 수는 있겠다. 이로부터 ‘위풍당당 행진곡’이나 ‘사랑의 인사’로 인기가 많은 에드워드 엘가(1857~1934)까지는 공백이 길다. 독주곡, 실내악, 오케스트라 작품, 오페라에서 영국 작곡가의 음악을 만날 일이 흔치 않다.

한국의 대표적인 현악4중주단인 노부스 콰르텟이 여기에 반문한다. “영국 음악에 좋은 것이 정말 많다. 저평가됐다.” 이들은 ‘브리티시 나이트(British Night)’라는 제목으로 영국 작곡가들의 현악4중주 곡을 모아 공연을 연다. “얼마나 매혹적인 음악이냐면, 차에서 흘러나오는 곡 하나를 듣고 바로 연주하자고 결정했을 정도”라고 했다. 26일 만난 노부스 콰르텟은 영국 음악에 대한 열띤 변론을 펼쳤다.

우연히 함께 들었던 곡은 윌리엄 월튼이 1947년 발표한 현악4중주. 서정적으로 시작하는 이 음악에 대해 김재영(바이올린)은 “1900년대 영국이 배경인 것 같은 어둑어둑한 선율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아마도 런던의 택시 안에서 같이 들었던 것 같은데 2악장에 접어들어 신나는 리듬, 또 영국 특유의 민속적인 요소들이 많아 재미있었다.”(김규현ㆍ비올라) 영국의 음악만 모아 하룻밤 공연을 채우자는 아이디어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엘가의 음악이 빠질 수는 없었다.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색채를 만들어내는 이 작곡가는 20파운드 지폐 모델이었을 정도로 영국을 대표한다. 노부스 콰르텟은 엘가의 현악4중주 또한 포함했다. 가장 유명한 팝 클래식인 ‘사랑의 인사’ 등의 작품에 가려진 엘가의 진짜 음악에 대한 애정이다.

엘가는 세련되고 짜임새 있는 음악으로 독일과는 다른 고유의 지문을 남겼다.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이 영국의 것으로 보일까. “엘가의 현악4중주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이 나오기보다 한 색깔로 이어져서 간다. 듣는 입장에서는 그 흐름이 다소 길거나 너무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구석이 많다.”(김영욱·바이올린) 자극적인 멜로디나 화음을 기대한다면 밋밋할 수 있지만 세부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된다는 설명이다.

결성 17년째인 노부스 현악4중주단. 왼쪽부터 바이올린 김영욱ㆍ김재영, 비올라 김규현, 첼로 이원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결성 17년째인 노부스 현악4중주단. 왼쪽부터 바이올린 김영욱ㆍ김재영, 비올라 김규현, 첼로 이원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재영이 그 설명을 거들었다. “무엇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다. 아내에 대한, 또 자신의 나라에 대한 사랑이 음악에 가득 있다.” 아내 앨리스는 엘가의 음악에 대한 든든한 지원자이자 그의 평생의 사랑이었다. 사별 이후 엘가의 음악도 시들었다. 현악4중주에서는 어떤 부분이 그런 사랑을 담고 있을까. 이원해(첼로)는 “엘가 현악4중주의 2악장이 그의 아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악이었다. 아마 음악에서 사랑을 느끼지 않았을까”라며 “아내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됐던 곡”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이 이토록 사랑하는 영국의 음악은 왜 연주되고 들어볼 기회가 적은 걸까. 김재영은 “과소평가 됐다고 본다”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엘가ㆍ월튼ㆍ브리튼의 협주곡을 정말 좋아한다. 독특한 색채가 있는 작품들인데 하나의 유행처럼 독일권의 작품들만 많이 연주됐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영국의 작곡가 중에도 독특한 천재, 벤자민 브리튼(1913~1976)의 ‘3개의 디베르티멘토’와 현악4중주 2번으로 공연을 마친다. 브리튼은 현악4중주 2번에 영국 음악의 뿌리인 헨리 퍼셀에 대한 오마주를 넣었다. 이들은 “앙코르곡으로는 더욱 확실하게 영국적인 음악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노부스 콰르텟은 2007년 결성해 올해로 17년 된 팀이다. 뮌헨의 ARD 국제 콩쿠르 2위,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우승으로 한국 현악4중주단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후 뮌헨 헤라클레스 홀, 빈 무직페라인, 런던 위그모어홀 등에서 연주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위그모어홀의 상주 음악가로 선정돼 3회의 프로그램을 기획해 연주했다. 이들은 “서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위그모어의 무대에 지금까지 10회 넘게 서게 돼 기뻤다”고 했다.

이들은 또 전곡 연주의 기록을 세우는 팀이다. 2020년 멘델스존 6곡,  2021년 쇼스타코비치 15곡, 같은 해 브람스 3곡, 2022~2023년 베토벤 16곡의 현악4중주 전곡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김영욱은 “할 때마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음악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팀의 리더인 김재영은 “사실 프로젝트로 할 수 있는 작품은 아직도 많지만, 당분간은 더 내실을 다지고 배우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노부스 콰르텟은 한 해 30~40회 정도의 국내외 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이번 ‘브리티시 나이트’를 서울 예술의전당(3월 2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6일)에 끝내면 또다시 유럽으로 간다. 함부르크 엘프 필하모니에 데뷔하고 위그모어홀,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 무대에 다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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