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술술 읽는 삼국지](118) 관구검의 반란이 실패하고, 사마사는 눈알이 빠져 죽다

중앙일보

입력

술술 읽는 삼국지’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조모를 황제에 세운 사마사는 최고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황월(黃鉞)을 가지고 조정에 들어와서도 빨리 걷지 않았으며, 일을 아뢸 때도 이름을 대지 않았고, 칼을 차고 어전(御殿)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조조가 헌제 앞에서 행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사마사의 권력이 하늘을 치솟을 때, 진동장군 관구검과 양주자사 문흠이 조방의 복위(復位)를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관구검은 6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항성(項城)으로 나가 주둔하고, 문흠은 2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밖에서 유격전술을 펴며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여러 군으로 격문을 보내 각각 군사를 일으켜 돕도록 했습니다.

사마사.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사.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사는 왼쪽 눈에 난 혹이 수시로 가렵고 쑤셨습니다. 의관이 그의 혹을 떼어내어 집에서 요양하던 중에 급보를 받았습니다. 태위 왕숙과 중서시랑 종회를 불러 상의했습니다. 왕숙이 먼저 의견을 냈습니다.

지난날 관우가 온 중국에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 손권은 여몽을 시켜 형주를 빼앗게 하면서 적장과 장병들의 가족을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관우의 군세가 와해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회남에 있는 장수와 군사의 가족은 모두 중원에 있습니다. 한시바삐 그들에게 물건을 주어 다독이고 다시 군사를 보내 그들의 귀로를 끊는다면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공의 말씀이 지극히 옳소. 다만 내가 막 눈에 난 혹을 떼어 내고 치료 중이라 직접 갈 수가 없는데 막상 남을 보내자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려.

회초(淮楚)지방의 군사는 강하고 사기가 매우 높습니다. 만일 남에게 물리치라고 보냈다가는 패하기 십상입니다.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국가 대사가 틀어질 것입니다.

중서시랑 말이 맞소.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적을 무찌를 수 없을 게야.

사마사는 아우 사마소에게 낙양에서 국정을 총괄하게 하고 자신은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였습니다. 진남장군 제갈탄에게는 수춘을 공격하게 하고, 정동장군 호준에게는 반란군의 귀로를 막도록 하였으며, 형주자사 감군 왕기에게는 선발대를 거느리고 반군을 막을 수 있는 곳을 선점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사마사는 왕기의 의견을 받아들여 속전속결을 택했습니다. 요충지인 남돈(南頓)을 먼저 차지했습니다. 관구검은 한발 늦게 남돈을 차지하려다가 수춘성까지 공격당하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할 수 없이 항성에서 전황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등애가 항성 근처의 낙가성을 공격하자 관구검은 적이 곧 쳐들어올 것이 무서웠습니다. 이에 문흠이 말했습니다.

도독! 걱정하지 마소서. 나와 내 자식 문앙이 5천 군사만 가지면 낙가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관구검은 크게 기뻐하며 군사를 주었습니다. 문흠의 아들인 문앙은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의 장수였습니다. 그는 18세의 팔척장신으로 그가 휘두르는 강편(鋼片)은 아무도 막아내질 못했습니다. 문앙은 부친과 군사를 나누어 삼경에 각각 위군의 영채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문앙이 먼저 위군을 공격했습니다.

한 무리의 군사가 영채 북쪽을 부수고 들어왔는데 앞장선 장수가 어찌나 용맹한지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뒤쫓는 위군을 홀로 무찌르는 문앙. 출처=예슝(葉雄) 화백

뒤쫓는 위군을 홀로 무찌르는 문앙. 출처=예슝(葉雄) 화백

보고를 받은 사마사는 크게 놀라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급기야 떼어낸 혹 자리로 눈알이 쑥 빠져나왔습니다. 피도 흥건하게 흘러 통증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사마사는 군사들이 자신의 모습을 알면 혼란을 빚을 것을 걱정해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이불자락을 물고 참았습니다.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이불이 못 쓰게 되었습니다.

문앙은 좌충우돌하며 닥치는 대로 강편을 휘두르고 창으로 찔렀습니다. 막는 자는 모두 죽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원하기로 한 부친의 군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앙은 날이 밝을 때까지 싸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등애의 군사에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문앙은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다가 쫓아오는 위군의 장수들을 거침없이 사살했습니다. 좇는 위군과 쫓기는 문앙의 처지가 네댓 번을 바뀌었지만 그때마다 위군은 문앙을 당해내지 못하고 번번이 되쫓겨 도망갔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문앙의 용맹한 모습을 시를 지어 칭송했습니다.

장판파에서 혼자 조조군을 막아내던     長坂當年獨拒曹
자룡의 영웅호걸 그대로 드날리니        子龍從此顯英豪
사생결단의 낙가성 전쟁터에서           樂嘉城內爭鋒處
또다시 담력 뽐내는 문앙을 보네         又見文鴦膽氣高

문흠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날이 밝았습니다. 아들을 돕기는커녕 위군을 보고 퇴각하다가 군사만 잃었습니다. 결국 문흠은 전세가 위태로움을 알고 동오의 손준에게 의탁했습니다. 관구검은 위군이 수춘을 함락시키고 문흠도 격파한 채, 자신이 있는 항성까지 쳐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즉시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와 영채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관구검도 등애군의 공격에 대패하여 겨우 10여 기만 이끌고 신성의 현령인 송백에게 갔습니다. 송백이 술자리를 베풀어 관구검을 안심시킨 후 참수하여 등애에게 바쳤습니다. 관구검의 반란은 이렇게 평정되었습니다.

사마사는 눈의 통증이 그치지 않자 더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낙양으로 사람을 보내 사마소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인수를 넘겨주며 유언했습니다.

내가 지금 맡은 권한이 너무 무거워 사직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네가 나의 직책을 이어받아라. 큰일은 절대 함부로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멸족의 화를 스스로 부르게 될 것이다.

사마소.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소.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소가 눈물을 흘리며 물어보려고 할 때, 사마사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눈알이 모두 빠져나와 죽었습니다. 모종강은 이 장면을 읽으며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위가 한을 핍박하자 사마씨가 위를 핍박하여 앙갚음했다. 그러나 위를 핍박한 사마씨라고 어찌 앙갚음을 당하지 않겠는가? 혜제(惠帝)가 조왕(趙王) 윤(倫)에게 황제 자리를 빼앗기고 금용성에 갇힘으로써 앙갚음을 당했고, 회제(懷帝)가 유총(劉聰)에게 포로로 잡혀 청의(靑衣)를 입고 술시중을 드는 치욕을 당함으로써 앙갚음을 당했으며, 원제(元帝)의 어미가 사마씨가 아닌 우금(牛禁)과 간통해 낳은 아들이 제위를 이음으로써 앙갚음을 당했고, 남조 송 유유(劉裕)의 찬역으로 앙갚음을 당했다. 사마소는 자손이 있었지만 사마사는 자손이 없었다. 자손이 있으면 자손에게 앙갚음하고 자손이 없으면 당대에 자신에게 앙갚음했다. 사마사가 병들어 죽으면서 어떻게 되었는가? 눈알이 모두 빠져나왔으니 역시 육시(戮尸)를 당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마소가 사마사의 권력을 이어받자 황제 조모는 사자에게 조서를 내려 사마소가 있는 허창으로 보냈습니다. 조서의 내용은 ‘잠시 군사를 허창에 주둔시키고 동오를 방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마소가 조서를 받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종회가 말했습니다.

지금 대장군께서 돌아가셔서 인심이 들떠있습니다. 장군께서 만약 이곳에 머물러 지키시다가 만일 조정에서 변이라도 생긴다면 후회해도 늦을 것입니다.

사마소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낙수(洛水) 남쪽으로 돌아와 둔쳤습니다. 조모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태위 왕숙이 대권을 장악한 사마소에게 관작(官爵)을 봉해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 좋다고 아뢰었습니다. 조모는 즉시 사마소를 대장군 겸 녹상서사에 임명했습니다. 이후로 중앙과 지방의 모든 일은 사마소의 재가를 받아야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마사에 이어 사마소의 세상이 된 것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