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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 대표 손에 피 칠갑…” 내전으로 치닫는 민주당 내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임종석 공천 배제로 친명과 비명 갈라설 위기

이 대표, 친명 핵심 불출마 등 자기희생은 없어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갈등이 이제는 내전 수준으로 접어들었다. 대표적인 친문 인사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서울 중-성동갑 공천에서 배제하자 같은 친문 고민정 최고위원이 사퇴했다. 어제 열린 의원총회에선 비명 중진 홍영표 의원이 “이재명 대표가 ‘혁신은 가죽을 벗기는 것’이라 하더니 자기 가죽이 아닌 남의 가죽을 벗기고 있다. 자기 손에 피칠갑을 했다”며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친명-친문이 전면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민주당의 지금 공천 파동은 근본적으로 이재명 대표가 여러 정파를 껴안고 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자신의 당권, 대선후보로서의 입지를 미리 굳히려는, 당내 계파 정리용 공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명 세력은 잠재적으로 이 대표의 당권과 대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이들에 대해선 평가 하위 10%, 컷오프 등으로 철저히 배제하고 이 대표 주변의 호위무사들을 대거 발탁했다. 어제 당 원로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임 전 실장에게 공천을 주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임 전 실장을 왜 공천에서 제외했느냐 따지자는 게 아니다. 임 전 실장 또한 문재인 정부 시절의 온갖 잘못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물이다. 문제는 이 대표가 여론조사에서 경쟁자인 국민의힘 윤희숙 후보에게 밀리지 않았던 임 전 실장을 공천 탈락시킨 이유가 과연 ‘총선 승리’를 위한 진정성으로만 결정한 것이냐는 의문에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으로 박용진, 노웅래, 홍영표 의원 등이 보인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으로 박용진, 노웅래, 홍영표 의원 등이 보인다. 연합뉴스

게다가 이 대표는 공천 보복을 당한 당사자들이 이의를 제기해도 근거를 투명하게 제시하기는커녕 “0점을 맞은 분도 있다고 하더라”며 조롱 섞인 웃음을 보였다. 당의 통합을 이루려는 자세로는 볼 수 없다. 제1당 지도자로는 매우 부적절한 자세였다.

총선 때마다 공천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잡음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4년 전 총선에선 민주당에 이런 ‘사당화’ 논란은 없었다. 당시도 하위 20% 통보가 있었지만, 이해찬 당시 대표는 불출마를 선언하고 사심을 스스로 제거했다. 그래서 반발의 강도가 크지 않았다. 반면에 지금 많은 이가 ‘이재명 사천’이라 혹평하는 결정적 이유는 이 대표의 헌신·희생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 중인 노웅래 의원이 “왜 이 대표는 놔두고 나만 문제 삼느냐”고 주장할 때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다.

당이 둘로 쪼개질 현 위기를 극복하려면 ‘비명’에만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이 대표는 물론 친명 핵심들도 대거 불출마를 선언해 스스로 희생하고 당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나도 허위보고에 속았다”는 전직 당 선거관리위원장의 폭로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 급격히 돌아서는 민심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붙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