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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료계와 정부, 파국 피하려면 무조건 마주 앉아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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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증원 규모 포함 모든 의제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의사 의견도 단일화하고 정부도 위협 자제 필요

정부가 제시한 의사들의 현장 복귀 시한이 내일로 다가왔다. 하지만 사표를 내고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다. 이대로라면 파국이 불가피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29일까지 복귀할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3월부터는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처분과 사법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이미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엄포에도 현장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전국 100곳의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수는 1만 명을 넘어섰고, 26일에도 사직서 제출 비율은 하루 전보다 소폭 늘었다. 인턴과 전임의들도 2월 말, 3월 초에 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현장을 떠날 조짐을 보인다.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박 차관은 26일 “(의대) 정원을 포함한 모든 의제가 대화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루 뒤인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국가의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적 조치”라고 못 박으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져버렸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정부뿐 아니라 의사 단체 등과도 대화하며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은 500명 증원에 찬성하는 교수가 가장 많았다는 자체 설문조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협은 “교수 비대위가 무슨 대표성이 있어 협상을 하느냐”며 외면하는 상황이다.

사태에 진전이 없으면 정부는 정책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공언한 대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공의에 대한 처벌이 현실화할 경우 현재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전임의와 교수들까지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의료 현장은 파국을 넘어 붕괴 수순에 접어들 것이 자명하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을 시작한 지 8일째인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휠체어를 탄 한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을 시작한 지 8일째인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휠체어를 탄 한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일방적인 증원 정책을 멈추고, 의사 단체는 가두시위를 중단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교수들의 고언처럼, 파국을 막으려면 협상을 시작하는 게 첫걸음이다. 그러기 위해선 증원 규모를 포함해 모든 사안을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서로 절대 안 되는 영역을 고집한다면 협상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환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나 의사 모두 상대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는 게 목표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와 함께 의사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지적대로 현재 전공의와 의협, 병원과 의대 교수, 의대와 학생들의 요구가 모두 달라 협상 창구를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도 면허 취소나 사법처리 같은 위협성 발언으로 분위기를 깨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