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기대 못 미친 밸류업 프로그램…경영권 방어 대책도 세워줘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기업 자율에 방점 찍은 대책에 시장은 실망감

차등의결권 등 허용하고 상속세 개편도 필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어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발표된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 자율에 방점을 찍었다. 상장사는 매년 기업 가치 개선 계획을 자율 공시하고,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 등 각종 투자 지표도 일정 기간에 맞춰 공표해야 한다. 우수한 상장사를 모아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만들고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로 투자를 유도한다. 기업 가치 개선 우수 기업에는 세제 지원도 검토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금융위원회 민생 토론회에서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국내 증시에 호재였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확대 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대통령 테마주’로 불린 ‘저(低) PBR주’를 중심으로 테마 장세가 형성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의심의 눈초리에도 시장은 증시 체질 개선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공교롭게도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이날 코스피가 전 거래일보다 0.77% 하락 마감하는 등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첫 단추를 끼운 것으로도 의미는 있다. 그동안 많은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돈(자본)을 조달해 투자 등에 나선 상장사임에도 일반주주가 아닌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기업 가치 제고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 가치 제고와 증시 체질 개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말대로 중장기 과제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대책에 강력한 조치가 없는 것도 오히려 긍정 평가할 일이다. 주가 부양을 위해 공매도 금지나 주식 양도세 완화처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제도를 쏟아내며 ‘관치’로 치우치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서다.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주주 친화 정책을 확대할 여력은 마련됐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은 116.2%로 주식시장이 실물 경제를 웃도는 수준까지 성장했기 때문이다. 기업 자율을 강조한 만큼 이제 필요한 것은 기업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각종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다. 기업은 자사주 외에 뾰족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자사주 소각에 나설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만큼 주요 선진국에서 폭넓게 허용하는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도입 등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과도한 주주 환원을 요구하며 성장동력을 훼손하고 ‘먹튀’하는 것을 막을 보호책도 있어야 한다. 경영권 약화나 승계 불안을 줄일 상속세 개편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업이 실적 개선을 통해 몸값을 높이고 제값을 받을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해 줘 기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