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最古)의 오케스트라가 서울에 온다. 하버드 래드클리프 오케스트라(HRO)가 주인공. 선망의 대상인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로 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다. 다음 달 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 무대를 올리는 이 오케스트라의 창단은 18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에선 조선 시대, 정조 다음 순조가 통치하던 때다. 래드클리프는 하버드가 남학교로 개교했을 당시 함께 있던 여학교 이름이다.
19세기 초부터 음악의 향연을 펼쳐온 HRO와 인연을 함께 한 인물의 면면은 전설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39년 졸업)부터 첼리스트 요요 마(76년 졸업) 등 화려함 그 자체다. 현재 단원은 약 120명으로, 그중 6명인 한국 출신이다. 쟁쟁한 HRO 단원들을 통솔하는 지휘자는 누구일까. 마에스트로 페데리코 코르테제를 최근 줌으로 만났다. 그는 지난달 6일 별세한 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의 수제자이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 HRO의 해외 무대 공연 장소로 서울을 선정한 배경은.
- "HRO는 4년에 1회 해외 공연을 여는 데, 단원들이 직접 투표로 결정을 한다. 한국 학생들의 열정과 한국이 가진 역사적 배경 및 분단의 상처 등을 딛고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 등에 단원들이 감복해 서울 공연을 결정하게 됐다. 이번이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내한인데, 2015년에는 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다. 당시 한국 관객의 뜨거운 열기에 크게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과 하버드대 사이엔 특별한 유대감도 있고, 한국계 단원들도 훌륭해서 여러모로 기대가 크다."
- 오자와 세이지와의 인연도 들려달라.
- "지난해 말,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가족의 전언을 받고 인사를 드렸다. 가슴이 아프다. 지휘자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엄격하면서도 따스하고, 여러모로 특별했다. 항상 미소를 띠면서 선문답처럼 말씀을 툭 던지시는 데,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질문을 하면 '알게 될 걸세'라고 답했다. 막상 무대에 서면 '아, 이 뜻이었구나' 했다. 한때 내가 이탈리아 오페라 작품을 다 안다고 자부했던 때가 있었는데,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아니라고 바로 깨달았다."
- HRO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했나.
- "한 번은 유스(youth,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적이 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후 인연이 닿아 HRO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자기들의 지휘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내 얘기를 했다고 한다. 오디션 과정도 긴장감이 넘친다기 보다는 편안한 모임 같았다."
- 프로 연주자들이 아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는 것은 다를 텐데.
- "맞다. 사실, 나는 꽤나 직설적이고, 항상 달콤하지만은 사람이다(웃음). 학생들을 혼내게 될 때도 많다. 학생들에겐 더 요구사항이 많아야 하고, 우리가 향해야 할 목표를 제시해줘야 한다.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휘자가 포기를 해 버리면 학생들도 바로 포기한다. 그렇기에 애정을 더 갖게 되는 거 같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나도 성장한다는 거다. 지휘라는 건 단지 지휘봉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단원들 모두와 함께 하나의 곡에 대한 이해를 해나가는 여정이다."
- 선택에 후회는 없나.
- "전혀. 프로 지휘자가 된다면 사실 지구 곳곳을 바쁘게 비행하며 다양한 무대를 갖게 된다. 그런 삶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런 친구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내겐 그런 삶은 피곤하고 스트레스다. 학생들과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이 삶을 사랑한다."
- HRO의 목표는.
- "학생들을 프로 연주자로서 다음 단계로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개성이 강한 각각의 학생들의 능력을 끌어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다. 음악의 정수는 인생이니까. 그 열정을 나누는 이들이 꼭 프로이거나, 전공자일 필요는 없다."
이번 공연에서 HRO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과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과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의 무대 등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