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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당국, 나발니 시신 모친에 인계…장례식 공개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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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연방보안국(FSB, 소련 KGB 후신) 건물 근처에 있는 한 기념비에서 여성들이 알렉세이 나발니를 기리기 위해 꽃을 놓고 있다. 이 기념비는 굴라그 정치범 수용소의 첫 번째 수용소가 세워진 솔로베츠키 섬의 큰 바위다.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 16일 사망한 후 전국에서 수백 명의 러시아인이 꽃과 촛불을 들고 추모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연방보안국(FSB, 소련 KGB 후신) 건물 근처에 있는 한 기념비에서 여성들이 알렉세이 나발니를 기리기 위해 꽃을 놓고 있다. 이 기념비는 굴라그 정치범 수용소의 첫 번째 수용소가 세워진 솔로베츠키 섬의 큰 바위다.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 16일 사망한 후 전국에서 수백 명의 러시아인이 꽃과 촛불을 들고 추모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옥중 의문사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시신이 숨진 지 9일 만에 가족에 인계됐다. 러시아 당국이 시신 인도 요구를 받아들인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장례식을 계기로 러시아 대선(다음달 15~17일) 전 반정부 운동이 확산될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나발니측 대변인 키라 야르미시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알렉세이의 시신이 그의 어머니(류드밀라 나발나야)에게 전달됐다”며 “우리와 함께 이것(시신 인계)을 요구해주신 모든 분께 대단히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류드밀라는 (나발니가 사망한 감옥 근처 시베리아 마을인) 살레하르트에 있고 장례식은 열리지 않았다”며 “가족이 원하고 나발니가 마땅히 대우받아야 하는 방식의 장례식을 당국이 방해할지는 알지 못한다. 정보가 나오는 대로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전날 류드밀라 나발나야는 러시아 당국이 ‘비밀 장례식’을 강요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들의 시신에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폭로했다. 나발니가 설립한 반부패재단의 이반 즈다노프 대표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의 시신 인도 조건에는 ‘군중이 모이지 않도록 가족끼리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지정된 비행기로 모스크바로 이송해 지정된 묘지에 묻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 야당 지도자 고 알렉세이 나발니의 어머니 류드밀라 나발나야가 지난 19일 변호사 알렉세이 츠베코프와 함께 러시아 살레하르트에 있는 조사위원회 지역 부서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야당 지도자 고 알렉세이 나발니의 어머니 류드밀라 나발나야가 지난 19일 변호사 알렉세이 츠베코프와 함께 러시아 살레하르트에 있는 조사위원회 지역 부서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립적 부검 실시할까

시신을 인도 받은 나발니의 가족이 장례식을 어떤 형태로 치를지, 장례식 전에 독립적인 부검을 실시할 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나발니 측 대변인은 사망진단서에 ‘자연사’라고 적혀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외신들은 당국의 시신 인도 결정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뉴욕타임스(NYT)는 “나발니의 팀이 며칠 동안 소셜미디어 캠페인을 벌인 끝에 러시아 당국이 한발 물러섰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평했다.

앞서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발니의 어머니에게 비밀 장례식을 강요해 푸틴이 고백하는 정교회 기독교 가치를 훼손했다고 비난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간 푸틴은 스스로 서구 가치관의 침투로부터 신앙과 국가를 보호하는 독실한 정교회 기독교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월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에서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 작전 중 사망한 군인 가족들과 함께 '손으로 만든 우리 구주 교회'의 정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성호를 긋고 있다. 러시아 야당 지도자였던 고 알렉세이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푸틴 대통령이 나발니의 어머니에게 비밀 장례식에 동의하도록 강요해 기독교를 조롱했다고 비난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월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에서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 작전 중 사망한 군인 가족들과 함께 '손으로 만든 우리 구주 교회'의 정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성호를 긋고 있다. 러시아 야당 지도자였던 고 알렉세이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푸틴 대통령이 나발니의 어머니에게 비밀 장례식에 동의하도록 강요해 기독교를 조롱했다고 비난했다. AP=연합뉴스

“푸틴, 기독교 가치 훼손” 공격 효과?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나발니가 사망한 지 9일 되는 날은 정교회 기독교 전통에 따라 고인을 위한 기도를 하는 날이다. 앞서 나발니의 모친은 러시아 전통에 따라 모스크바로 가서 공개 고별 예배를 드리고 야당 인사를 포함한 저명한 러시아인들이 안장된 트로예쿠로프스코예 공동묘지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자신의 소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시신 인도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까지 러시아 전역에선 정교회에 모여 나발니를 기리고 공공 기념물에 꽃을 남기거나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목격됐다. 8만2000여 명은 시신 인도 청원서에 서명했다.

외신들은 나발니의 모친이 일주일 넘게 시베리아 지역에 머무르며 시신 인도를 주장하고, 발레 스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 저명한 러시아인들이 당국에 시신 인도를 촉구하는 동영상을 공개하고, 서방 국가들이 나발니의 죽음과 우크라이나 침공 2주년을 맞아 러시아에 더 많은 제재를 가한 것도 배경으로 꼽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시신 인도 결정은) 러시아 관료집단에 맞서 개인이 드물게 승리한 것”이라며 “공개적인 대치 상황이 크렘린궁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는지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중심가에서 알렉세이 나발니의 포스터 옆에 꽃들이 놓여 있다. 포스터에는 '나발니는 죽지 않았다'고 쓰여 있다. AF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중심가에서 알렉세이 나발니의 포스터 옆에 꽃들이 놓여 있다. 포스터에는 '나발니는 죽지 않았다'고 쓰여 있다. AFP=연합뉴스

프리고진 장례식은 비공개, 나발니?

이젠 나발니의 장례식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시선이 모인다. NYT는 “나발니의 시신을 둘러싼 분쟁은 모스크바에서의 공개 장례식이 (반정부) 시위 중심이 될 것에 대한 크렘린의 두려움을 반영한다”며 지난 8월 반란을 주도하고 모스크바로 진격하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용병 지도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장례가 비공개로 치러진 것을 거론했다. 이어 “나발니의 가족과 보좌진은 조용한 장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며 “야당 지도자의 장례식을, 러시아 내에서 드문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으로 바꾸려 노력하겠다는 신호”라고 했다.

가디언도 “크렘린궁은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나발니의 장례식이 야당 지도자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의 표시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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