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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지 마" "부담 갖지 마"…샌프란시스코의 '귀한 몸' 이정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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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하던 것보다 잘할 필요 없다. 한국에서 하던 만큼만 해주면 된다."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스프링캠프 첫 라이브배팅에 나선 이정후. 사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스프링캠프 첫 라이브배팅에 나선 이정후. 사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한국인 외야수 이정후(25)를 영입하기 위해 6년 1억1300만 달러(약 1506억원)를 썼다. 역대 KBO리그 출신 선수 중 최고액 계약이다. 밥 멜빈 감독은 이정후와 첫 훈련을 함께한 뒤 "그가 정규시즌 개막전 1번 타자로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정후는 이미 샌프란시스코가 애지중지하는 '귀한 몸'이다.

이정후는 25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시범경기 개막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주전 야수 대부분이 선발 출장했는데, 이정후는 라인업에서 빠졌다. 26일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원정 경기에도 결장한다. 경미한 옆구리 통증을 보고했다가 "당분간 경기에 나가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멜빈 감독은 이날 "이정후가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 처음으로 나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7일 LA 에인절스와의 홈 경기까지 건너뛰고 네 번째 시범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를 것 같다는 얘기다.

부상은 절대 심하지 않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의 몸 상태를 두고 "아주아주 작은 문제"라며 "캠프 초반에 이 정도 통증은 흔하다. 다만 작은 부상을 크게 키울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정후도 "한국식 표현으로는 그냥 '알이 박인' 거라 부항 치료만 받았다. 한국에선 아무 문제도 안 되는 정도다. 정규시즌 경기였다면 무조건 뛰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구단은 조심했다. 이정후는 "작은 부상이라도 치료는 받아야 하니 (트레이닝 파트에) 얘기했는데, 감독님이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부위가 (민감한) 옆구리인지라, 그만큼 더 몸관리를 해주시려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스프링캠프에 한창인 샌프란시스코 이정후. 사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스프링캠프에 한창인 샌프란시스코 이정후. 사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수 자신은 "신인의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벌써 간판스타다. 이정후는 빨리 MLB 투수의 공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데, 팀은 "무리하면 안 된다"며 라이브 배팅(투수가 마운드에서 던지는 공을 치는 것)도 프리 배팅으로 대체했다. 이정후는 타석 대신 불펜 옆에서 소속팀 투수들의 피칭을 지켜보며 그 갈증을 달랬다.

이정후가 실전 테스트를 서두를 이유는 없다. MLB는 한국보다 빨리 시범경기에 돌입하고, 기간도 더 길다. 샌프란시스코 선수단 전체 합동 훈련이 지난 20일 시작했는데, 5일 만에 첫 시범경기가 열렸다. 샌프란시스코의 시범경기 일정은 정규시즌 개막 이틀 전인 다음 달 27일까지 한 달 넘게 이어진다.

이정후는 "시범경기가 캠프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고, 경기 수가 아직 한참 남아서 문제없다"며 "미국에선 미국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 나는 그냥 정해지는 스케줄에 따라 열심히 하겠다"고 웃어 보였다. 이정후와 절친한 선배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지금은 캠프 기간이라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안 뛰는 게 맞다. 멜빈 감독님이 잘 케어해주시는 것 같다"며 "이정후는 팀에서 정말 중요한 선수라 구단이 더 관리할 거다. 앞으로는 정후 의견도 많이 반영해서 결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지지했다.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스프링캠프에 한창인 샌프란시스코 이정후. 사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스프링캠프에 한창인 샌프란시스코 이정후. 사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는 지난 24일 이도 자이디 사장, 피트 퍼텔러 단장, 멜빈 감독 등과 개별 면담을 했다. 이정후를 포함한 일부 주축 선수에게만 허락된 자리였다. 이정후는 "팀 합류 후 이런저런 미팅이 많았지만, 이렇게 따로 (구단 수뇌부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며 "앞으로의 계획, 팀이 내게 원하는 것, 지금까지의 과정과 향후 방향성 등을 얘기했다"고 귀띔했다.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이정후에게 전폭적인 믿음을 보내되 과도한 부담은 주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이정후는 최근 구단 관계자로부터 "네가 한국에서보다 더 잘하기를 바란 게 아니다. 한국에서 하던 만큼만 해주면 좋겠다는 의미로 너에게 (큰돈을) 투자한 거다"라는 말을 들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요즘 하루가 아주 길다. 앞으로 시범경기에 나가기 시작하면 시간이 조금 더 빠르게 지나갈 것 같다"며 "지금이 내게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최대한 팀과 이곳 문화에 빠르게 적응해 좋은 활약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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