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ADHD 진단에 "오히려 좋아"…중국 청년들 안도하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요즘 중국 인터넷에서 ‘성인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라는 단어가 화제다. 그런데 중국에는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아이러니하게도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자신이 ADHD임을 커밍아웃하는 등 인증 글이 올라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성인 ADHD 확진' 검색 시 나오는 게시물. 왼쪽부터 'ENFP가 공유하는 나의 ADHD 경험', ‘ADHD 기억삭제/간헐적 기억 상실’, ‘성인도 산만증?! 6가지 성인 ADHD 증상’, ‘성인 ADHD 확진 공유: ENTP의 자기구제편’, 오른쪽 하단 연관 검색어에는 'adhd 발병률', '성인 adhd 확진', 'adhd 정서 문제'가 있다.

'성인 ADHD 확진' 검색 시 나오는 게시물. 왼쪽부터 'ENFP가 공유하는 나의 ADHD 경험', ‘ADHD 기억삭제/간헐적 기억 상실’, ‘성인도 산만증?! 6가지 성인 ADHD 증상’, ‘성인 ADHD 확진 공유: ENTP의 자기구제편’, 오른쪽 하단 연관 검색어에는 'adhd 발병률', '성인 adhd 확진', 'adhd 정서 문제'가 있다.

ADHD 진단을 받고 나니 제 인생 전부가 설명되는 것 같았어요. 

제 잘못이 아니라 ADHD여서 그런 거였어요. 

10월은 ADHD 인식의 달(ADHD Awareness Month)이다. 2004년 미국에서 시작된 ADHD 인식의 달 캠페인이 북미를 넘어 이제 아시아에서도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베이징대학교 제6 병원, 세계 ADHD 연맹 및 몇몇 기관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외래 환자를 무료로 진료해 주며 ADHD와 ‘세계 ADHD 인식의 달’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한 젊은이는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고 나니 오히려 마음의 짐이 줄었다고 말했다. 중국 젊은이들이 성인 ADHD로 진단받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서 독특한 진단 판정 ‘붐’까지 일고 있다. ‘나는 원래 ADHD였어’라는 검색어는 주요 소셜 플랫폼에서 16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ADHD가 인터넷에서 화두로 떠오르며, 침묵하며 은신하던 성인 ADHD 환자들이 작지만, 긴밀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샤오훙수(小紅書·중국판 인스타그램), 더우반(豆瓣·중국의 대표적인 리뷰 사이트) 등의 플랫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증상과 치료 경험, 주의력 결핍 개선 방법, 새로운 ADHD 연구 결과 등을 공유한다. 동시에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해시태그 '나는 원래 ADHD였어' 검색 시 나오는 게시물, 왼쪽부터 '갑자기 내가 성인 ADHD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DHD 여성의 일상: 참을 수 없는 호기심'.

해시태그 '나는 원래 ADHD였어' 검색 시 나오는 게시물, 왼쪽부터 '갑자기 내가 성인 ADHD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DHD 여성의 일상: 참을 수 없는 호기심'.

ADHD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산만한 어린이’ 정도는 금방 떠올릴 것이다. ADHD가 주로 어린아이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맞지만 성인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성인 ADHD 비율도 낮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 증상이 있어도 주변 어른들이 관련 지식이 부족하고 적절한 의료 자원이 없으면 제때 진단받고 제대로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기 쉽다. 이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ADHD를 앓고 있는 성인이 많다.

아동 심리 건강 전문가 왕위펑(王玉鳳)은 중국 내 성인 ADHD 환자 수가 2000만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더 무서운 사실은 그다음이다. 미국 의학 협회 저널(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서 발표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ADHD를 앓고 있는 성인이 일반인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약 3배 더 높다고 한다. 자기 삶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치매는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현대 사회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다. 치매 환자를 부양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더 나아가 한 국가의 경제마저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ADHD 진단을 반기는 어른들 

-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있지 못한다.
- 쉽게 주의가 산만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 미루는 버릇이 심하며 난독증이 있다.

위 증상이 아이에게 나타난다면 많은 경우 ‘철이 없다’,‘장난이 심하다’ 등으로 잘 포장된 뒤 ‘어린이는 에너지가 왕성하니’,‘앞으로 주의하라’라는 말로 대충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성인은 다르다. 높은 효율과 자율 그리고 감정 조절이 요구되는 직장에서 해당 증상은 ‘철이 없다’고 귀엽게 봐주기 힘들다. ‘태도 불량’, ‘능력 부족’, ‘무책임’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비판과 비난의 화살이 향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은 자신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할 것이다. 이때 알게 된 ADHD 확진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겐 한 줄기 빛이다.

진단은 끝이 아닌 시작 

저와 달리 가만히 서서 음료를 기다리는 친구를 보니 제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작년 초 처음으로 자신의 다름을 직시하게 되었다는 옌밍(閆銘)이 한 말이다. 지난 8월 말 아이엘츠(IELTS) 시험 중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어 당장 진료받아야겠다고 결심한 옌밍은 그렇게 성인 ADHD 판정을 받았다.

ADHD 환자의 경우 과잉행동, 불안, 미루기, 기억력 저하 등 일반적인 특징 외에도 특정 순간에 ‘대단하다’라고 여겨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DHD는 보통 주의력 결핍 장애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어떤 시점에서는 비범한 집중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옌밍은 ‘그림을 그릴 때’ 그랬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면 밥 먹는 것도 잊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몇 시간이고 그림에만 몰두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녀는 예술 관련 일이 적합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ADHD를 이용하면 특정 분야에 남들보다 더 몰입할 수 있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등 인물도 ADHD 환자였다고 한다. ADHD를 병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선물일 수도 있다고 옌밍은 말한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중국 온라인상에서 ADHD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ADHD 증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거나 ‘셀프 진단’을 내리는 사람도 자주 보인다. 정신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한 번쯤은 스스로를 충동적이거나 산만하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청년 세대의 웃지 못할 이런 현상을 일시적인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중국 내 ADHD에 대한 사회 인식과 제도, 더 깊은 논의가 촉구되어야 할 것이다.

박지후 차이나랩 에디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