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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물고 세상에 펀치…50kg 감량 女배우가 일으킨 '갓생'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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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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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국 설 연휴(춘제·春節) 박스오피스 승자는 ‘러라군탕(热辣滚烫·YOLO)’이다. 박스오피스 데이터 제공업체 마오옌(猫眼)에 따르면 22일 오전8시 기준 영화 러라군탕은 30억 6700만 위안(약 5664억 원)이상의 흥행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춘제 기간인 10일 개봉한 영화는 관객들의 높은 평점과 선플로 개봉 이후 관객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22일 기준 중국 본토 영화 역사상 박스오피스(수입 기준) 20위에 진입했다.

치열했던 설 연휴 중국 박스오피스 왕좌를 거머쥘 수 있었던 데는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자링(贾玲)의 역할이 주효했다.

영화 '러라군탕'의 한 장면. 바이두

영화 '러라군탕'의 한 장면. 바이두

일본 영화 〈백엔의 사랑(百円の恋)〉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한 여성이 자아존중감, 자애심(自愛心)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는다. 대학 졸업 후 몇 년간 백수 생활을 이어오던 러잉(樂莹, 자링 분)은 직장 내 괴롭힘, 남자친구와 절친의 배신, 가족과의 부동산 갈등 등 온갖 풍파를 겪다 복싱을 접하게 된다. 습관적으로 남의 비위를 맞추고 상처만 받던 러잉은 복싱을 통해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재건(再建)되며 관객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실제로 주연배우인 자링은 영화를 위해 20kg을 중량했다가 50kg를 감량했다.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자링의 모습은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하며 화제가 됐다.

영화 촬영 기간 중 다이어트, 복싱 훈련, 연출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고, 결국 해내고야 만 영화 밖 자링의 모습은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자링이 연기한 러잉이 스쿼트를 할 때, 펀치를 날릴 때, 땀을 비처럼 흘릴 때, 이를 악물고 버틸 때, 눈물을 흘릴 때의 그 모든 장면은 달리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러잉이 근육 라인을 뽐내며 문을 열고 나가는 미장센은 영화의 메시지를 극대화했다.

영화 '러라군탕'의 한 장면. 바이두

영화 '러라군탕'의 한 장면. 바이두

무엇보다 현 시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 주효했다. 역대 최악이라는 중국 청년실업률, 회복되지 않는 경제 상황 등으로 ‘고생 끝 행복이 아닌, 고생 끝에 또 고생’인 중국 청년 세대의 어려움이 러잉의 고난과 맞닿아 있었던 것. 해피엔딩, 화해와 같은 진부한 설정없이 어려움이 닥치면 상처받고 쓰러지면서 그저 내일을 향해 걸어가는 서사 역시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청년 관객들은 영화를 본 후 극중 대사와 OST 가사 속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소셜미디어(SNS)상에 공유하고 있다.

일부는 '날씬한 여성만 아름다운가? 세속적인 미의 기준이 또 등장했다'며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겼다고 비판했지만,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의 메시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건강에서 시작된다", "자존감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온다"는 것에 더 호응하는 분위기다.

영화가 남긴 여운은 SNS 바이럴로 끝나지 않고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갓생(God+生)'살기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자신이 세운 계획, 자기계발을 수행하며 나를 지켜내고, 내 삶을 사랑하겠다는 움직임이다. 95년생 장씨는 중국둥팡망과의 인터뷰에서 “러라군탕을 보고 자링의 끈기와 '인생에서 한 번은 승리해보겠다'는 결심에 감동했다”며 “극장을 나온 후 바로 복싱 강습에 등록했다”고 덧붙였다.

메이퇀 데이터에 따르면 영화 개봉 이후 '복싱' 관련 키워드 검색량이 지난해 춘제 동기 대비 388.4% 증가했고, 댓글 수는 전년 대비 337.53% 증가했다. '성인 복싱', '복싱 체험 교실', '복싱 월 멤버십', '여자 복싱' 등의 키워드 검색량은 모두 지난해 춘제 기간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또 영화 개봉 이후 텐진, 베이징, 상하이, 충칭의 복싱 클래스 공동 구매 매출은 지난 춘제 기간에 비해 각각 292.59%, 164.34%, 149.86%, 89.7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현지 매체인 치루완바오(齐鲁晚报)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 지난(濟南)과 린이(臨沂)의 여러 복싱장과 피트니스 센터에 대한 문의가 크게 증가했으며, 일부 헬스장의 상담 건수는 영화 개봉 전주와 비교했을 때 63%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복싱장의 경우 영화 개봉 이후 여성 회원 등록이 전년대비 20%가량 증가했으며, 지우우허우(95後, 95년 이후 출생자)와 링링허우(00後, 2000년 이후 출생자)가 대부분이라고 보도했다.

러라군탕을 내세워 수강생을 모으고 있는 중국의 한 휘트니스 센터의 배너. 인민일보(왼)/ 복싱장에서 복싱을 배우는 수강생. 순왕

러라군탕을 내세워 수강생을 모으고 있는 중국의 한 휘트니스 센터의 배너. 인민일보(왼)/ 복싱장에서 복싱을 배우는 수강생. 순왕

아웃도어용품과 스포츠웨어 소비도 증가했다. 티몰 데이터에 따르면 피트니스화와 의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증가했고, 복싱 장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런닝복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케틀벨(프리웨이트 기구의 일종)매출은 전년 대비 930% 급증했고, 복싱 샌드백 및 글러브 매출도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라군탕은 반나절만 지나도 관심도가 떨어지는 온라인상에서 2주가량 '러라군탕(핫하고 매우 뜨겁다는 뜻)' 중이다. 관객들의 갓생살기 노력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결과로 나타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설령 또 실패할지라도 영화를 보고 나선 관객의 마음에 ‘의지의 횃불’을 켠 것만으로도 그 영향력은 충분했다는 평가다.

차이나랩 임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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