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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푸바오는 패닉 없을까"…하루 7500명 눈물의 오픈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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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푸바오, 엄마 아이바오가 보내는 편지

요즘 용인 에버랜드 내 판다월드 앞에선 매일 ‘오픈런’이 펼쳐진다. 4월 초 중국 귀환이 확정되어 3월 3일까지만 공개되는 푸바오를 보려고 새벽부터 수천 명이 줄을 선다. 관람시간 5분 제한이라 온라인엔 ‘연속 5번 줄서기 꿀팁 대방출’ 같은 콘텐트가 넘쳐난다. 중고마켓에 에버랜드 큐패스 프리미엄 재판매까지 등장했다. 우리 역사상 동물이 이런 신드롬급 인기를 끈 적도 없고, 수퍼스타와 강제 이별을 당하는 것도 처음이다. 늘 그 자리에서 죽순과 워토우를 먹고 있을 것만 같은 푸바오를 이제 볼 수 없다니. ‘푸덕이’들은 귀한 딸을 멀리 떠나보내는 심정이다. 푸바오 출생 당시부터 엄마처럼 돌보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송영관 사육사 인터뷰를 바탕으로, ‘전지적 아이바오 시점’에서 푸바오와의 이별 준비를 기사로 꾸몄다. “판다들과 눈빛만으로 이심전심”이라는 송 사육사는 “푸바오와의 이별을 아이바오에게 배우고 있지만, 푸바오가 나를 보며 반짝이던 눈빛이 계속 어른거릴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월 19일의 푸바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월 19일의 푸바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 아이바오. ‘판다계의 이영애’라 불리지. 동그란 얼굴에 그윽한 눈빛, 풍만한 몸매는 우아함의 극치로, 세계 정상급 미모를 인정받고 있어. 2013년 ‘판다들의 고향’ 중국 쓰촨성에서 태어나 2016년 이곳 에버랜드로 이주했어. 함께 온 정혼자 러바오와는 한동안 만날 수 없었고 바뀐 환경도 낯설었지만, ‘아빠’를 자처하는 강철원 사육사(이하 강바오)와 ‘작은 아빠’ 송영관 사육사(이하 송바오)의 도움으로 적응하다 보니 어느덧 세 아이의 엄마가 됐네.

나와 러바오는 중국 판다보호연구센터와 에버랜드의 임대계약 상 2031년까지 한국에 머물 예정이야. 그런데 ‘금쪽이’ 푸바오가 곧 영영 떠나. 1984년부터 워싱턴조약에 따라 멸종위기종 보호를 명목으로 중국만 판다 소유권을 갖게 된 거야. 그 바람에 우리 커플은 연간 대여료 100만 달러의 귀한 몸이 됐고, 아기가 태어나면 보호기금 50만 달러를 내고 만 4세 이전에 번식을 위해 보내야 하지.

널 보러 지금도 하루 7500명이 온단다

2월 19일의 푸바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월 19일의 푸바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푸바오는 2020년 7월, 코로나로 온세상이 암흑같던 시절 태어난 희망의 아이콘이야. 한국 출생 1호 판다라 엄청난 뉴스였고, 지난해 쌍둥이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까지 태어나 우리 가족은 요즘 인기 절정이지. 일본 NHK는 2017년 우에노 동물원에서 아기 판다 샹샹 탄생으로 인한 경제효과가 연간 약 267억엔이라고 보도했는데, 여기도 만만치 않아. 겨울에 하루 3000명 정도였던 판다월드 관람객이 7500명으로 2.5배 늘었고, 매일 오는 사람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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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보러 대전에서 용인으로 이사왔다는 감성 유튜버 ‘헤이초이’도 그중 하나야. 엊그제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푸바오를 곧 볼 수 없다는 소식에 입원을 포기했대. 한 기자에게 “아이바오가 푸바오를 번쩍 안아 비행기 태워주는 모습에 매료된 이후 내 삶이 180도 달라졌다. 바오가족을 보기만 해도 따뜻해서 많은 치유를 받았고, 이 고마움을 갚고 싶은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슬프다”며 울먹이더군.

독립 전 방사장에서 함께 놀던 아이바오(왼쪽)와 푸바오. [사진류정훈]

독립 전 방사장에서 함께 놀던 아이바오(왼쪽)와 푸바오. [사진류정훈]

사람들은 우릴 보며 세상 근심 잊는다지만, 우리도 스트레스가 있어. 푸바오도 요즘 사춘기 티를 낸다네. 사실 우린 이미 한 차례 이별을 했어. 2022년 8월 31일, 독립 훈련을 마치고 헤어진 후 다시 만난 적은 없어. 내가 잠시 고생 좀 했지. 식음을 전폐하고 푸바오를 찾아다녔어. 하지만 곧 적응했고, 지금은 엉덩이 편지 ‘마킹’(분비물로 영역을 표시하는 행동)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있어. 푸바오는 지금도 늘 내가 낮잠을 자던 ‘엄마나무’ 위에서만 낮잠을 잔다고 하네.

‘외롭지 않겠냐, 떼어놓는 게 잔인하다’는 건 인간의 시선일 뿐, 우린 쿨하게 홀로 살아가는 종족이거든. 종의 속성을 지켜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어. 야생에서도 아기가 두 살쯤 되면 엄마가 짝을 찾아 먼저 떠나. 아기는 나무 위에서 멀어지는 엄마를 지켜보며 ‘판생’의 고독을 깨닫게 되지.

송영관 사육사는 17㎏가 넘는 쌍둥이 동생(왼쪽 후이, 오른쪽 루이)들을 한번에 안아서 퇴근시키기 위해 체력관리를 따로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송영관 사육사는 17㎏가 넘는 쌍둥이 동생(왼쪽 후이, 오른쪽 루이)들을 한번에 안아서 퇴근시키기 위해 체력관리를 따로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푸바오는 할부지들과도 일찌감치 거리를 둬 왔어. 우린 세상 무해해 보이지만 맹수의 이빨을 갖고 있거든. 육식에서 초식으로 진화의 딜레마에 빠진 신비로운 동물이라 식성도 공격성도 찰랑찰랑 선에 걸쳐 있기에, 곁을 내줄 수 있는 순간과 없는 순간이 있어. 그래서 인간이 때론 접근해서 교감할 수 있지만, 지금도 송바오는 루이, 후이에게 깨물려 피멍이 들곤 해.

동물원은 지금 중국에서 펼쳐질 푸바오의 ‘판생 2막’을 준비하고 있어. 3월 4일부터 푸덕이들은 푸바오를 볼 수 없고, 우리 편지도 끊기게 되겠지. 내실에 격리되어 검역과 이동 훈련을 받아야 하니까. 3월말 중국 수의사도 파견 온다네. 좀 답답하겠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야. 송바오가 푸바오 심심하지 않게 내실용 인리치먼트(행동풍부화 도구)를 여럿 구상하고 있대. 송바오는 푸바오가 ‘라이언 킹’의 심바처럼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라며 대나무 기타, 대나무 칫솔 같은 인리치먼트를 선물했었지. 매년 발렌타인데이에 선물한 ‘츄파죽스’처럼 5월이면 방사장을 뒤덮는 클로바 꽃으로 엮어주던 화관을 올해는 못 씌워주게 돼서 무척 아쉽대.

송영관 / 에버랜드 사육사 / 용인 에버랜드. 권혁재 기자

송영관 / 에버랜드 사육사 / 용인 에버랜드. 권혁재 기자

엄마·아빠도 2031년 중국에 갈 예정이야

푸바오는 쓰촨성의 4개 보호기지 중 하나로 가는데, 어디든 좋은 환경이야. 첫 비행이지만 강바오가 동승한다니 안심도 되고. 지금 중국 측에서 전세항공기를 섭외 중이고, 공항 이동 때는 무진동차량으로 모신다고 해. 1년 전 샹샹의 귀환 때는 일본 사육사 두명이 동행했고, 기체 결함에 대비해 한 대가 더 대기하는 에어포스원 급 대우였다는군. 특별 주문제작한 수송박스에 실려 기내 가장 안전한 위치에 자리 잡고, 죽순과 사과를 먹고 잠들어 15시간을 무사히 비행했다지. 현지 적응은 힘들었대. 도시에 살다가 야생에 가까운 환경에 풀어놓으니 처음엔 거의 패닉 상태였다는군. 대나무 향이 달라 죽순만 먹었고, 소리에 극도로 민감해 새소리에도 벌벌 떨었대. 4개월 만에 생일 케이크로 유인해 간신히 야외로 나왔고, 통상 한 달이면 끝내는 격리를 6개월 넘게 지속하다 11월에야 일반 공개를 시작했어.

아이바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이바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지만 호기심 많고 똑똑한 ‘용인푸씨’ 푸바오는 한 달 내에 충분히 적응할 거야. 할부지들이 꾸준히 만들어준 인리치먼트 덕분에 푸바오는 상황파악·환경인지 능력이 뛰어나거든.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의 강바오와 다가오게 하는 송바오의 미묘한 태도 차이에 맞춰 다르게 행동할 정도로 영특하단 말이지. 독립 때도 엄마보다 의젓하게 이겨냈다니, 이번에도 잘 해낼거야.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죽순 먹방을 사시사철 할 수 있는 건 좀 부럽네. 여기선 제철 죽순은 딱 한 달, 냉동도 고작 4개월 맛보는데, 고향에선 일년 내내 죽순이 올라오니까.

혹시 야생으로 보내지는 건 아닐까? 중국에선 2003년 야생복귀사업이 시작돼 지금까지 9마리가 성공했다는데, 반야생 상태에서 태어나 사람 손을 안 탄 판다만 보낸다니 푸바오가 그럴 일은 없겠지.

러바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러바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푸바오, 요즘 할부지들 눈가가 자주 촉촉해지는 걸 보니 이별이 가까워 왔나 보다. 송바오는 너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자기 딸처럼 여겼다는데, 네가 어릴 때 높은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받아주지 못한 게 두고두고 미안하단다. 요즘도 꿈에서 늘 못 받으면서 깬다지. 하지만 그렇게 ‘쿵’ 한 뒤 품으로 파고드는 너에게 되레 큰 위안을 받았다고 해. 푸덕이들도 너의 존재 자체가 치유였대. 다들 고맙다고 하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람들을 위로하고 행복을 주는 판다가 되자.

송영관 / 에버랜드 사육사 / 용인 에버랜드. 권혁재 기자

송영관 / 에버랜드 사육사 / 용인 에버랜드. 권혁재 기자

엄마는 푸바오를 오래오래 기억할 거야. 우리 야생동물들은 기억력이 좋거든. 하지만 너나 나나 뒤돌아보지 않고 각자의 삶에 집중하게 되겠지. 송바오가 아빠에게도 네가 곧 떠난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고 대나무 먹기에 열중했다는군. 그렇게 계속 나아가는 게 우리의 숙명이야. 아빠와 내가 귀국 예정인 2031년엔 각각 19세와 18세인데, 최장수 판다가 37세까지 살았다고 하니 어쩌면 먼발치에서 볼 수도 있겠지.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독고다이’로 멋지게 살아갈 너의 ‘판생’을 응원하며 마지막 편지를 부친다. 안녕, 푸바오. p.s. 할부지들과 푸덕이들은 잊지 마.

[TMI] 판다의 모성

미숙아로 태어나 ‘초유’ 중요…엄마가 핥으면 분홍털 된대요

2022년 8월 31일, 독립 전날 마지막으로 젖을 먹는 푸바오. [사진류정훈]

2022년 8월 31일, 독립 전날 마지막으로 젖을 먹는 푸바오. [사진류정훈]

판다의 생존엔 엄마 사랑이 필수다. 1990년 이전 태어난 판다의 생존률은 33% 이하였는데, 50% 확률로 태어나는 쌍둥이 중 하나를 포기해서다. 1960년대부터 인공포육이 시작됐지만 성공률이 낮았다. 초유를 못 먹어서다. 판다는 다른 포유류보다 미숙아(150g내외)로 태어나기 때문에 초유에서만 얻어지는 면역글로불린의 종류와 양이 많다. 이 사실이 알려진 1990년 엄마와 사육사가 쌍둥이를 며칠씩 교대로 돌보는 ‘공동육아’가 시작됐고, 생존률은 80~90%로 껑충 뛰었다. 1990년 100마리에 불과하던 사육 판다가 현재 728마리로 늘어난 이유다. 판다를 대여한 전세계 20여개국 동물원이 함께 올린 실적이다. 일본 와카야마현 어드벤처월드에선 2000년부터 총 17마리의 판다가 태어나 대가족을 이뤘다. 10마리를 낳은 암컷 라우힌은 ‘그레이트 마더’ 로 통한다. 중국에선 개체수를 늘리려고 3~4개월 만에 떼어놓고 엄마를 곧바로 번식에 투입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렇게 자란 새끼들은 번식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3~4개월은 엄마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시기라서다.

판다도 육아는 힘들다. 일반 곰은 에너지를 비축한 동면 중 출산을 하니 동굴에서 아기만 돌보지만, 동면을 하지 않는 판다는 자기 영양도 챙기면서 미숙아를 키우느라 바쁘다. 아이바오는 며칠동안 꼼짝 않고 푸바오를 돌보느라 등에 욕창이 생기기도 했다. 가끔 아이바오가 과격하게 아기들을 ‘패대기’ 치는 건 분노 발산이 아니라 생존 기술 전수라는 게 정설이다. 판다의 모성은 아기 판다 털 색깔에도 숨어 있다. 후이바오보다 루이바오가 조금 더 핑크색인 건 침 성분 때문인데, 출산 당시 먼저 태어난 루이를 아이바오가 더 많이 핥아줘서다. 엄마의 핑크빛 사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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