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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 20위도 안심 못해, 엘리트 스포츠 분수령 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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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호 28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만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이제 체육은 단순한 경기나 대회 차원이 아니라 국민 삶 과 직결된 국가적 아젠다가 됐다. ‘스포츠로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모토로 유아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만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이제 체육은 단순한 경기나 대회 차원이 아니라 국민 삶 과 직결된 국가적 아젠다가 됐다. ‘스포츠로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모토로 유아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오는 7월에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거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종합 순위 20위 밑으로 떨어질 지도 모릅니다. 올림픽을 비롯한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성적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쾌거에서 보듯 엘리트 스포츠가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꿈나무 선수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는 건 분명합니다. 대한민국 체육의 수장으로서 전략 종목을 집중 지원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올림픽이 문화와 스포츠가 어우러지는 지구촌 축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6년부터 9년째 대한체육회를 이끌고 있는 이기흥 회장은 요즘 마음이 바쁘다. 파리 올림픽 개막이 5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양궁·펜싱·태권도 등 몇 개 효자종목을 빼고는 메달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전략 종목과 메달 유망주를 추리고, 대표 선수들의 기량과 컨디션을 최고조로 올리기 위해 장재근 진천선수촌장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동시에 학교체육부터 노인체육에 이르기까지 생활체육의 활성화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도 짜고 있다. 이 회장을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 있는 대한체육회 집무실에서 만났다.

파리 올림픽이 다가옵니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프랑스 파리는 영국 런던에 이어서 하계올림픽을 세 번째(1900, 1924) 개최하는 도시가 됐습니다. 정확히 100년 만에 다시 올림픽이 열리게 됩니다. 파리 올림픽은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전 올림픽에 비해 탄소배출량을 5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일회용 플라스틱 및 에어컨 사용을 제한하고 있죠. 따라서 선수촌에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으며 IOC위원인 저에게도 전용 차량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번 대회는 스포츠계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성평등(Gender-Equal) 대회가 될 것입니다. 남녀 참가 종목 선수의 비율이 50 대 50이 되는 최초의 올림픽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메달권 선수들 대상 심리·영양 직접 챙겨

경기장도 특별한 곳에 지어진다고 하죠.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파리의 유산인 랜드마크 시설들을 이용합니다. 그랑팔레(태권도·펜싱), 앵발리드(양궁), 에펠탑 마르스광장(비치발리볼), 베르사유궁전(승마·근대5종), 샹젤리제 거리(사이클) 등에서 경기가 열려 자연스럽게 ‘문화와 어우러지는 올림픽’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특히 개회식을 센강 유역에서 진행함에 따라 일반 시민과 관광객도 함께하는 ‘참여형 올림픽’이 될 겁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앞으로의 올림픽은 레거시(유산)를 활용한 친환경 올림픽을 지향할 것입니다. 지난 2월 1일 막을 내린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레거시를 활용한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죠.”
황선우와 김우민(아래 사진)이 카타르 도하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1위로 골인한 뒤 환호하고 있다. 황선우는 남자 자유형 200m, 김우민은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AP=연합뉴스]

황선우와 김우민(아래 사진)이 카타르 도하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1위로 골인한 뒤 환호하고 있다. 황선우는 남자 자유형 200m, 김우민은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AP=연합뉴스]

지난 19일 카타르 도하에서 막을 내린 2024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선수단은 사상 최고 성적을 올렸다. ‘수영의 꽃’이라 불리는 남자 자유형에서 두 개의 금메달(400m 김우민, 200m 황선우)을 건져 올린 것을 포함해 모두 5개 메달(금2, 은1, 동2)을 따냈다. 특히 양재훈-김우민-이호준-황선우가 힘을 모은 남자 계영 800m 은메달은 금메달 못지않은 값진 수확이었다. 지난해까지 세계수영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는 박태환이 유일했다.

한국 수영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비결을 뭐라고 보십니까.
“수영 대표팀은 한 명의 특출한 선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대표선수 모두가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들은 박태환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보며 꿈을 키운 ‘박태환 키즈’입니다. 이처럼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 엘리트 대회의 성과는 꿈나무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 부여가 됩니다. 대한체육회는 ‘국가대표 스페셜 케어’프로그램을 통해  금메달 유력종목 선수를 대상으로 심리·영양·컨디셔닝 등을 직접 챙기고 훈련비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파리 올림픽에서 종합 20위도 어렵다”고 하셨는데요.
“양궁·펜싱 등 특정 종목을 빼고는 뛰어난 선수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인구는 줄어드는 데다 힘든 것 안 하려는 세태가 됐죠. 거기다 스포츠 하는 아이들을 ‘공부는 안 하고 운동만 하는 집단’으로 쳐다보는 시선도 문제입니다. 농구나 배구 같은 단체종목은 출전 선수를 채우지 못해 실격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황선우(위 사진)와 김우민이 카타르 도하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1위로 골인한 뒤 환호하고 있다. 황선우는 남자 자유형 200m, 김우민은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AP=연합뉴스]

황선우(위 사진)와 김우민이 카타르 도하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1위로 골인한 뒤 환호하고 있다. 황선우는 남자 자유형 200m, 김우민은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AP=연합뉴스]

“메달 색깔보다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중요하다” “경기를 즐기는 게 진정한 승리다”는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올림픽 출전하는 선수들한테 물어보세요. 자기 인생을 걸고 치열하게 준비를 합니다. 의대 가려고 밤새워 공부하는 학생한테 ‘뭘 그렇게까지 하나. 의대 못 가도 괜찮으니 최선을 다하면 돼’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어떤 분야가 됐든 인생의 가장 높은 목표를 세우고 준비하는 사람은 존중해 줘야죠. 그래야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살아날 겁니다. 그리고 만약 올림픽에서 성적이 나쁘면 ‘대한체육회는 도대체 뭘 했나’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해병대 캠프 입소’를 지시한 게 “시대착오적이다”는 비판을 받았는데요.
“오해가 좀 있네요. 영하의 날씨에 상륙보트 들고 바다에 뛰어드는 그런 해병대 훈련을 한 게 아닙니다. 병영 체험을 통해 팀워크를 강화하고 나라사랑의 정신과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을 일깨우기 위한 교육을 한 거죠. 우리는 해병대 측과 두 달간 의논하면서 프로그램을 짰어요. 일정이 끝난 뒤 무기명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93%가 ‘즐겁고 유익했다’고 답했어요. 제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은 매년 할 겁니다.”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학교 운동장 개방’ 사업을 추진하시는데요.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전국에 초·중·고를 합치면 1만1000개입니다. 학교 운동장을 열어놓으면 가족과 이웃이 함께 땀을 흘리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고, 운동장이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이 돼 갈등 해소에도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관리 주체와 비용일 텐데요. 대한체육회는 전국 228개 자치단체에 사단법인이 조직돼 있습니다. 그걸 활용하면 됩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강남구체육회에서 운영하고, 거기에 스포츠 강사 하나씩만 배치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죠. 실제로 코로나 이전에 대한체육회가 8000여 명의 스포츠 강사를 각 지역에 파견한 적이 있습니다. 정부가 조금만 재정 지원을 해 주면 충분히 가능한 프로그램입니다.”

충남 논산 출신인 이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이다. 대한카누연맹 회장을 맡으면서 체육계에 입문했고, 대한수영연맹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을 거치며 체육행정 경험을 쌓았다. 2016년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시 정권이 미는 후보를 꺾고 당선됐고, 2021년 연임에 성공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신도회장 출신인 이 회장은 ‘대한민국 최고 마당발’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친화력이 뛰어나고 정치·종교계 등에 인맥이 두텁다.

대한민국 대표 마당발 된 비결은 중용

대한민국 대표 마당발이 된 비결이 뭔가요.
“저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중용 얘기하면 양변(兩邊)을 버리고 가운데를 취하는 걸로 생각해요. 진짜 중용은 양변을 포용하는 겁니다. 차별 없이 똑같이 대하는 게 진정한 중도지요. 저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교회를 다니든 성당을 다니든 이슬람이든 가리지 않아요. 고관대작에게도, 우리 집 청소를 하는 아줌마한테도 정성을 다합니다.”
건강을 위해 무슨 운동을 하십니까.
“알려진 것처럼 술은 꾸준히 장복하고(웃음) 매주 등산을 합니다. 봄에는 개화하는 꽃 따라 올라가고, 가을에는 단풍 따라 내려오죠. 등산은 돈도 적게 들고 자연과 마주하면서 좋은 공기 마시고, 나를 내려놓고 내 속도에 맞춰서 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최근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 등 체육계 현안을 놓고 상위단체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다. 이 회장은 “문체부와 싸우려는 게 아니라 그 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 체육행정의 전문성을 인정해 달라는 뜻”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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