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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바라보는 미국 시각, 이해 넘어 함께하도록 만들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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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호 28면

강경화 아시아소사이어티 신임 회장

강경화 아시아소사이어티 신임 회장 겸 최고경영자가 연대 특임교수 연구실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최영재 기자

강경화 아시아소사이어티 신임 회장 겸 최고경영자가 연대 특임교수 연구실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최영재 기자

미국과 아시아의 이해 증진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국제기구이자 싱크탱크인 아시아소사이어티(Asia Society) 신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에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선임됐다. 1956년 록펠러 3세가 창립한 아시아소사이어티는 뉴욕에 본부를 두고 한국 등 전 세계 16개 지부와 협업하며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강 회장은 지난 1월 24일(현지시간) 전체 이사회에서 전임 회장이던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의 뒤를 잇는 9대 회장에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회장 겸 CEO 자리에 오른 강 회장은 이달 중 뉴욕으로 건너간 뒤 앞으로 3년간 아시아 각국과 미국의 협력 강화에 전념할 예정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강 회장은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백발을 오른쪽으로 넘긴 특유의 헤어스타일도 여전했다. 내년이면 만 70세가 되는 그는 “요즘은 화장도 잘 안하고 편하게 다녔는데, 뜻하지 않게 막중한 자리를 맡게 돼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지난해 9월부터 연대 특임교수로 재직 중인 그를 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작년 10월 제안, 이사들과 끊임없이 인터뷰”

언제, 어떻게 제안을 받게 됐나요. 원래 아시아소사이어티와 인연이 좀 있었나요.
“인연이요? 전혀요. 영어로 ‘out of the blue’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지난해 10월 말쯤 연락이 왔어요. 7명의 인선위원 한 분 한 분과 줌으로 수차례 인터뷰를 했죠. 그랬더니 지난해 12월 중순쯤 뉴욕으로 한번 오라고 하더라고요. 뉴욕에선 인선위원 외에 미국의 주요 이사들과도 직접 만났습니다. 동북아 정세 등 두루두루 폭넓게 물었어요, 저도 솔직하게 답했고요. 그런데 65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인준을 받아야 하니 다른 이사들에게도 저를 소개하고 싶다고 해서 또 끊임없이 줌 인터뷰를 했습니다. 굉장히 꼼꼼하게 프로세스를 진행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미국과 아시아 각국에서 100여 명을 추천받아 출발했더라고요.”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통역을 맡았던 강경화 회장. [중앙포토]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통역을 맡았던 강경화 회장. [중앙포토]

강 회장은 외교부 장관이 되기 전 세 명의 유엔 사무총장 아래에서 유엔의 주요 보직을 잇따라 지내 뉴욕 현지에서 인맥이 두텁다. 인선 발표 직후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도 “유엔의 좋은 친구가 다시 돌아오게 돼 기쁘다”며 반겼다.

어떻게 조직을 이끌어가고 싶으신지요.
“원래는 비영리 교육기관으로 출발했는데 중국통인 러드 전 회장 재임 시절 중국 연구 기능을 대폭 키웠어요. 현재 미국의 그 어느 싱크탱크보다 중국 연구 역량은 가장 두텁다고 평가받을 정도죠. 미국 내 기업들도 미·중 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보니 지원을 크게 늘려 왔고요. 다만 그 과정에서 아시아 전체를 보는 데는 좀 소홀해진 것 같아요. 앞으로는 한반도를 비롯해 아세안과 중앙아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 연구에도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교육도 단지 학습이란 개념을 넘어 미국인과 아시아인이 서로를 더욱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진 미국이 아시아를 이해하는 게 주였고, 아시아가 미국을 알아가는 쌍방성은 조금 결여돼 있었거든요. 아시아를 주제로 한 포럼 패널이 전부 미국인 학자였을 정도죠. 이사회도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 또한 인터뷰 때 ‘about Asia’를 넘어 ‘with Asia’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고요.”

문화예술도 주요 사업 중 하나던데요.
“맞습니다. 특히 앞으론 컨템퍼러리 문화 교류를 늘려갈 생각입니다. K컬처도 그중 하나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데는 분명 뭔가가 있지 않겠어요. 뉴욕 본부에 좋은 공간이 있는데 K컬처를 선도하는 제작자 등을 초대해 여러 프로그램도 진행해볼까 궁리 중입니다. 인도에도 고유의 팝컬처가 있잖아요. 현재 아시아엔 미국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무궁무진한 소재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소통을 통해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도 자연스레 가까워지지 않겠어요.”
회장뿐 아니라 CEO도 맡게 됐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의미죠. 조직의 대표로서 펀드 레이징도 해야 하고, 직원들 관리도 해야 하고. 조직 경영에 권리와 책임이 함께 따른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시아소사이어티는 5년마다 전략 계획을 수립하는데 마침 올해가 그때여서 머리를 맞대고 총의를 모아볼 생각입니다. 세계사의 무게중심이 아시아로 옳겨오고 있잖아요. 그런 아시아를 다루면서도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에 자리한 기관이란 점에서 아시아소사이어티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2018년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백악관에서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왼쪽) 등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2018년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백악관에서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왼쪽) 등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정부 초·중반 외교부 장관을 지낸 강 회장은 한·미 관계 등 달라진 외교 정책과 국제 환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북·미 대화와 미·중 갈등의 향후 전망 등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견해를 밝혔다.

최근 한·미 관계를 진단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더 긴밀해졌죠. 그 배경엔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이 있고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극복되는 것 같고요. 다만 전통적 수준을 넘어 좀 더 포괄적 협력 관계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은 너무 동맹, 안보 위주의 관계에 치중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지속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이것만으론 부족하지 않을까요. 기후변화나 인도주의적 위기와 관련해서도 얼마든지 협력을 강화할 여지가 있고요. 또 아무리 동맹이라 해도 내놓고 말하기 힘든 얘기가 있기 마련인데, 아시아소사이어티가 중간에서 촉진자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미 대선이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은.
“신임 회장 입장에서 선거에 대해서는 얘길 안 하는 게…. 어쨌든 전 세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잖아요. 특히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여러 불확실성이 존재했던 터라 다들 고민이 깊겠지만 결과를 직시하고 헤쳐나가야겠죠. 다만 한·미 관계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 특정 사안에선 이견이 있더라도 전반적인 동맹 관계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작다고 봅니다. 초당적 지지가 탄탄하거든요.”
북·미 관계 또한 관심사인데요.
“북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겠지만 미 대선 후에도 대화가 진전되긴 훨씬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북한이 그새 레버리지를 워낙 높여놨고, 러시아라는 카드도 추가됐고요. 한반도 전쟁 위기설은 지나친 확대해석 같고요, 국지적 도발이나 물리적 충돌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엔 정말 압도적으로 대응해야죠. 중요한 건 전쟁으로 가지 않게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미·중 갈등이 핫이슈입니다.
“지난 1월 방콕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외교부장이 아주 유용한 대화를 나눈 것 같아요. 중국에서 나온 평가를 보니 ‘constructive& fruitful(건설적이고 내실 있는)’이란 표현을 썼던데 ‘fruitful’은 중국 정부가 좀처럼 쓰지 않는 단어거든요. 겉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실질적인 대화가 오갔다는 얘기죠. 이는 아시아소사이어티가 제안한 ‘관리된 전략적 경쟁(managed strategic competition)’과도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경쟁은 하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며 상황을 관리하자는 거죠. 올해 미·중 관계는 5월 대만 총통 취임식과 11월 미 대선이란 변수가 있긴 하지만 양쪽 다 레드라인은 넘지 않은 채 숨 고르기하며 관리 모드로 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또 그러길 바라고요.”

“프리다이빙도 도전, 총선 오퍼는 늘 사양”

장관 퇴임 후엔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프리다이빙이었어요. 숨 참고 고요한 물속 깊숙이 들어가기. 2021년 장관 그만두고 거제도로 내려가 해녀 스쿨 등록해 수료까지 했죠. 세계 기록이 몇m게요? 무려 120m예요. 저는 16m까지 찍었고 목표가 20m인데 뉴욕에 가게 돼 당분간 기록 경신은 힘들 것 같아요.”

이후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된 그는 지난해 2월 졸업식 축사를 맡은 자리에서 프리다이빙 얘기를 했다. “사회로 나가는 젊은 여성들을 무슨 말로 격려해야 하나 싶던 차에 그동안 쑥스러워서 비밀로 해온 프리다이빙 도전 얘길 용기를 내어 꺼냈죠. 이 나이에 나도 이런 시도를 하는데 여러분도 못할 게 없다고. 엄청 박수받았어요(웃음).”

곧 총선인데, 영입 제안은 없었나요.
“전혀요. 1996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여야를 떠나 여러 번 오퍼를 받았는데, 여의도 정치가 저와는 안 맞는 것 같아 모두 사양했습니다. 선거에 나갈 배짱이 제겐 없더라고요. 지금 하는 일이 늘 재밌고 중요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향후 계획은.
“다른 저명한 정책연구소도 많지만 특히 저희는 각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참고해 즉각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대안을 많이 내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싱크탱크를 넘어 ‘think&do tank’를 지향하고 있는 셈이죠. 이 같은 장점을 잘 살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생각입니다.” 

☞아시아소사이어티=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교류 및 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1956년 창립됐다. 정책·경제·문화예술·교육 등 네 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으며 2015년엔 정책연구소를 설립해 아·태 지역 현안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웬디 커틀러 전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연구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지부도 2007년 설립된 뒤 젊은 세대 교류 등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현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다.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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