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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로비(정치와 돈:3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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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없이 선심성 나눠먹기/칼자루 쥔 여야 예결위원 거의 「한 건」 챙겨/10억 공사에 천만∼2천만원 “떡고물” 통설
지난 18일 활동을 끝낸 국회 예산결산위원회가 26조9천억원으로 내년 예산규모를 확정하면서 막판에 자기 지역구 사업비 「끼워넣기」에 몰두,낙제 예산심의의 면모를 더욱 실감시켰다.
여야 예결위원들간의 예산 나눠먹기는 늘 두들겨 맞는 대목이지만 염치불구하고 서로 달라붙는 것은 놓칠 수 없는 명분과 실리가 있기 때문.
자기 지역의 도로·공장·운동장 건설비를 예산에 반영하면 『공약을 이행했다』고 주민들에게 큰소리치고 또 관련기관·업체로부터 『화끈하게 봐줬다』는 인사치레를 받을 수 있어 그 과정에서 유·무형의 「이권」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산심의의 끝내기인 계수조정작업에 들어가면 농어촌 지원·서민복지비 확대·안기부 예산·방위비 삭감 등으로 여야가 줄다리기를 요란스럽게 한바탕하면서 고민하는 장면을 보여준 뒤 뒤에선 「자기몫 나누기」에 정신이 팔리게 마련이다.
이번의 경우 다른 예산을 잘라내고 새로 들어간 증액분은 1천1백17억원으로 이 중 농업구조조정자금·페르시아만 지원경비 등을 뺀 선심성 사업비가 무려 50개 항목 4백50억원이나 된다. 나눠먹기의 절정을 이뤘다는 작년 여소야대 시절보다 액수는 줄었지만 양상은 그대로다.
예결위원들은 챙겨야 할 사업내용을 간사들에게 넘겨 기획원과 담판,우선순위를 매겨 나눠 갖는데 최종 윤곽을 정하는 계수조정위원이 되면 동료 의원·부처관계자들의 각종 로비에 시달리는 「즐거운 홍역」을 치른다.
이런 막판 나눠먹기엔 칼자루를 쥔 야당이 재미를 많이 보게 마련이어서 이번엔 평민당 예결위원들은 모두 「한 건」씩 챙겼다.
당초 평민 의원들은 전북 부안의 「새만금(만경강을 막은 둑) 간척지」 사업비(1백억원)가 김대중 총재의 관심사업임을 염두에 두고 밀어붙였으나 기획원측에서 『경제성이 없고 완성되기까지에 수천억 원의 예산이 든다』고 버티는 바람에 포기했다.
대신 김 총재가 작년부터 신경을 써온 광주첨단단지의 건설비에 80억원을 더 타내 2년 연속 지역구사업 최다증액을 기록.
다음 전주권 개발(15억원) 전주권 광역상수도사업(8억원) 전북대 도서관 확장(5억원) 사업비가 증액됐는데 전주와 관련있는 김태식 의원의 상당한 공로가 있었다는 것이다.
계수조정소위에 낀 김영진 의원은 자기 지역구인 강진의 운동장(2억원)·고려청자 도요지 개발(2억원)과 완도의 청해진 개발비(2억원)를 따냈고 다른 예결위원인 이협(이리농공전문대 보조 5억원) 조찬형(남원국악원 2억원) 정균환(고창읍성 복원 2억5천만원) 의원 등도 하나씩 챙겼다.
예결위원은 아니지만 평민당 중진들은 예산 따내기 실력을 보였는데 신순범 사무총장(여천 거문도해상공원 7억원) 김원기 문교체육위원장(정읍공단 7억원·내장산국립공원 5억원) 유준상 의원(보성체육관 2억원) 등이 그 케이스.
이런 예산 나눠먹기 경쟁에 민자당이 뒷짐질 리 만무하다. 예결위원인 김일동(삼보학생체육관 1억5천만원) 임무웅(부천종합운동장 2억5천만원) 김길홍(안동대 회관 3억원) 이기빈(제주박물관 1억원) 의원은 지역구사업에 한몫했으며 인천의 경우 항만부두 건설에 58억원이나 책정됐는데 민자당 의원인 이승윤 부총리의 지역구 쪽인 인천항 북항에 이 중 7억원이 책정돼 설왕설래.
예산 따내는 과정에서 「이권」이 거래될 소지에 대해 여야 의원들은 『예산을 얻은 뒤 공개경쟁입찰에 부치는 것인데 특정 회사의 사전청탁이 있을 수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자기가 딴 예산에 기득권을 행사하듯 「한마디」 하는 가운데 「모종의 인사치레」가 뒤따른다는 것이 통설이다.
작년의 경우 3야당의 막판 끼워넣기로 1천8백억원이 늘었으며,대부분 선심공약 이행분인 이 액수의 얼마만큼 비율이 「대가」로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말자금 마련의 중요한 돈줄의 하나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야당측이 계수조정소위에서 요란스럽게 자기 몫을 챙길 수밖에 없는 데 반해 여당 의원들은 입김이 클수록 정부와 예산협의 과정에서 선심사업비를 미리 집어넣고 조용히 방어에 치중한다. 사실 막판 계수조정소위에서 짜낼 수 있는 규모는 한정돼 있어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을 짤 때부터 로비하는 것이 당연하다.
예산 로비는 여당의 경우 관련부처→경제기획원→당정협의 때부터 하며 야당은 주로 국회 예결위에서 한다.
로비 단가는 사안에 따라 다르고 신규사업이냐,계속사업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계속사업비 책정 때보다 조사용역비로 예산에 발을 걸칠 때 의원들의 끗발이 더 세다.
로비 비용은 워낙 직거래의 극비로 이뤄지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지만,예를 들어 10억원짜리 공사를 한다면 의원들 쪽엔 보통 1∼2%인 1천만∼2천만원 정도가 떨어진다는 얘기이며 중진급은 보장성이 높아 단가가 올라간다는 게 통설이다.
물론 지역연고가 있다고 무턱대고 부탁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예결위에 들어 있거나 들어간 경험이 있어야만 적정수준의 몫을 챙길 수 있다고 한다.
지역사업의 명분과 떡고물의 실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추는 게 『진짜 국회의원으로 탄생하는 것』이라는 것이 예결위원을 지낸 의원들의 대체적 경험담이다.<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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