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학살, 굴복하지 않겠다" 친문∙비명계 집단행동 예고

4·10 총선이 4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내 의원 평가 통보에 대한 반발이 잇따르면서 공천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의원 평가 결과는 오는 23일까지 순차적으로 통보될 예정이어서 갈등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비명계 박용진 의원은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하위 10%에 포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공개하고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치욕을 공개하는 이유는 민주당이 어떤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는가를 드러내고 당을 사랑하는 많은 분이 경각심을 가지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2021년 대선 후보 경선, 그리고 2년 전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와 거칠게 맞붙으며 대표적 비명계로 분류됐다. 그는 “저는 단 한 번도 권력에 줄서지 않았고, 계파정치·패거리 정치에 몸을 맡기지 않았다”며 “오늘의 이 모욕적인 일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영찬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하위 10%로 통보받은 사실을 전하며 “작년 말 의원 평가에 정량평가 항목들은 모두 초과 달성해 제출했다”며 “받아들이기 어렵다. 굴복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초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나온 표현에 빗대어 “공천 과정은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전날엔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하위 20%에 속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밝히며 탈당을 선언했다. 하위 20%는 사실상 공천 배제 대상이다.

과거에는 하위 20% 통보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는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평가 결과가 공개될 경우 이후 권리당원투표(50%)·일반국민여론조사(50%)로 진행되는 경선에서 “일을 못 한다”는 비방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재선 의원은 “하위 평가 결과를 스스로 공개한 건 대놓고 싸우겠다는 뜻”이라며 “동시에 당내 공천시스템이 신뢰성이나 권위를 상실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당내 “분당 가까운 내전 겪을 것” 우려 나와

윤영찬

의원 평가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 대표는 페이스북에 직접 입장문을 올려 “선출직 평가에 사감이나 친소관계가 작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또 “누군가는 하위평가를 받아야 하고, 하위평가를 받은 분들은 불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러나 이를 두고 친명, 반명을 나누는 것은 갈라치기”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스템으로 공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많이 알려 나가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비명계는 사실상 집단행동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친문계 홍영표 의원은 전해철·송갑석·윤영찬·박영순 의원 등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회의를 가졌고, 설훈 의원과는 오찬을 하며 상황을 논의했다. 전해철·윤영찬 의원 등 문재인 정부 장관 및 청와대 출신 의원들도 전날 밤 따로 모였다. 이들은 “이 대표가 사실상 ‘비명계 학살’에 나섰다”는 우려를 공유했다고 한다.

당장 21일 국회 본회의 직후 의원총회에서부터 양측은 충돌할 전망이다. 홍 의원은 “함께 모은 의견을 의원총회에서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친문계 입장에선 임종석·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공천 뇌관이 남아있는 상태여서, 일각에선 향후 민주당이 분당에 가까운 내전을 겪을 거란 우려마저 제기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왜 박용진(의원)이 10%에 들어가고, 김영주(부의장)가 20%에 들어가느냐”며 “이재명 대표는 (단식·재판으로 의정활동을 제대로 못해) 1%에 들어갈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편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서울·부산의 경선 지역을 논의했으나 발표는 21일로 미뤘다. 친명계 원외 인사의 ‘자객 출마’로 논란이 된 서울 강북을(박용진·정봉주), 서울 은평을(강병원·김우영) 등의 경선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공관위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당이 분열 양상을 보인다는 말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잘 중심을 잡고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강보현·김정재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