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도 가라오케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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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동남아시아를 거쳐 유럽대륙으로 우회 진출했던 일본산 가라오케가 마침내 「죽의 장막」을 뚫고 중국에까지 상륙,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중국의 국제 외교 무대 복귀, 개혁·개방정책의 부활 등 중국내부에 일고 있는 해빙무드를 업고 급속하게 중국사회에 뿌리내린 가라오케 문화는 정치와 생활에 지쳐있는 중국인들에게 시원한 청량제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이크만 잡으면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가라오케 선전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라오케는 억눌린 중국인들의 「가려운 곳」을 교묘하게 자극,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북경·상해·광주 등의 대도시에서는 어디서나「잡납OK」(가라오케)라고 쓰인 간판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다.
상해시 동호로에 위치한 동호 잡납OK주점에는 매주 토·일요일 밤만 되면 수많은 젊은 부부들과 젊은이들이 쌍쌍으로 몰려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다.
마이크를 잡은 손님들은 화면에 비치는 노랫말을 보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열창하는가 하면 여럿이 몰려나와 합창을 하기도 하면서 즐거운 표정들이다.
너도나도 노래를 부르려고 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려면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지루해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동호잡납OK주점을 찾는 고객들은 회사원·공장노동자·개인영업자 등 주로 서민층.
노래를 부르려면 중국인 평균 월급 10분의1에 해당하는 한잔에 30원(약 5천4백원)짜리 주스류나 맥주를 마셔야하고 여기에 노래부를 때마다 3원씩 내야한다.
상해시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이 3백원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금액임에 틀림없지만 손님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다.
상해시에는 이와 같은 가라오케 전문 술집이 무려 1백여 개소에 이른다.
이밖에도 광주에 50개소, 경제 특구인 심수에 70개소, 비교적 조용한 천진에도 30개소의 가라오케 업소가 등장하는 등 가라오케문화는 중국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와 같이 가라오케문화가 중국인들 사이에서 쉽게 인기를 모으게 된 배경에는 TV나 영화 이외에는 서민들이 저녁에 뚜렷이 즐길만한 놀이문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인민들의 수입은 늘어났으나「밤 생활」은 빈한을 면치 못해 왔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가위 「가라오케 태풍」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가라오케가 전국을 휩쓸게 되자 중국 당국은 바짝 긴장,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문화부는 최근 『반동적이고 저속한 내용은 부를 수 없다』는 명령을 발하는 한편 경제특구인 황동성 주해내의 가라오케 주점과 댄스홀 등의 문제를 다룰 「관리공작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문화부는 전국의 문화국 담당관과·기업인들을 소집, 『오락의 건전한 번영과 발전을 위해 「관리」를 한층 강화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화전양면작전」에 능한 중국당국은 규제·검열 일변도정책에서 탈피, 국민들이 즐겨 부를 수 있는 건전 가요와 영화음악 등 1백여곡을 담은 레이저디스크도 발매했다.
그러나 중국국민들은 당국의 규제와 간섭이 심해지자 가정용 가라오케를 들여놓고 일본의 엔카나 홍콩의 팝송을 감상하고 있어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중국의 전통을 실감케 하고 있다.<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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