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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시신은 어디에? '푸틴 정적' 나발니 의문사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비판에 앞장서온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7)의 의문사가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서방에서 푸틴 대통령이 배후에 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는 가운데 나발니의 사망 시점과 사인 등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16일 독일에서 나발니를 추모하며 사진 옆에 촛불이 놓여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6일 독일에서 나발니를 추모하며 사진 옆에 촛불이 놓여 있다. AFP=연합뉴스

왜 지금 사망했나  

서방의 의심처럼 푸틴 대통령이 나발니 죽음에 연루됐다면 '시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나발니는 러시아 대선(3월 15~17일)을 한 달가량 앞둔 지난 16일 돌연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킹스칼리지런던 러시아연구소의 막심 알류코프 연구원은 17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에 "나발니의 죽음은 3월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살인"이라고 짚었다. 그는 "푸틴 정권에 의해 이번 선거가 철저히 통제되더라도, 나발니는 잠재적으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반대 목소리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며 "반체제 인사들에게 저항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나발니가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나발니는 2021년 1월 극단주의 활동 등의 혐의로 수감된 후에도 변호사를 통해 외부에 자신의 메시지를 활발하게 전해왔다. 가디언의 일요판 옵서버도 "나발니의 죽음은 대선을 앞둔 푸틴 정권이 반대파의 의지를 꺾는 '내부 단속용'"이라고 짚었다.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나발니를 추모하는 촛불과 꽃들. 로이터=연합뉴스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나발니를 추모하는 촛불과 꽃들. 로이터=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발니의 죽음으로 러시아에 실질적으로 남아있던 푸틴의 마지막 정적이 제거됐다"며 "푸틴 대통령의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전체주의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심화한 상황에서 나발니까지 의문사하며 반체제 활동이 더 위축될 것이란 얘기다. 나발니는 2011년 반부패재단을 창설한 이후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반정부 운동을 이끌어왔다.

러시아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주변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전쟁 초기와 달리 약화했고, 재집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방위비 문제 등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옵서버는 "여러 요소들이 결합돼 푸틴은 지금을 나발니 제거의 적기라고 봤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양구 한국·우크라이나 뉴빌딩협회 회장은 "(정적을 제거하는) 강력한 면모를 보여 내부 반전 여론을 잠재우고, 향후 서방과의 전쟁 협상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발니 시신은 어디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나발니 시신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BBC 등에 따르면 나발니 측근들은 "그는 살해됐으며 러시아 당국이 그 흔적을 숨기기 위해 시신을 의도적으로 넘겨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나발니의 모친도 아들의 시신 소재는 알지 못한 채 당국으로부터 사인이 '돌연사 증후군'이란 말만 들었다.

러시아 연방교도소 당국은 나발니의 정확한 사인 조사를 위해 시신을 검시 중이란 입장이다. 앞서 지난 16일 나발니가 복역 중이던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 교도소는 "나발니가 산책 후 쓰려져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나발니의 사망 당시 구체적인 정황도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그가 사망하기 이틀 전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당국자들이 그가 복역 중이던 교도소를 찾아 일부 보안 카메라 등의 연결을 끊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반정부 활동가들은 "러시아 연방교정국(FSIN) 지부 보고서에 이런 언급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 당국이 모스크바로부터 1930㎞나 떨어진 외딴 교도소에서 발생한 나발니의 죽음을 마치 준비돼 있던 것처럼 빠르게 발표한 것도 의문이 가는 대목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나발니의 사망 책임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는 정면 충돌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나발니의 죽음이 푸틴과 그의 깡패들이 한 어떤 행동에 따른 결과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런 광기에 가까운 주장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는 나발니가 사망한 16일 서부 도시 첼랴빈스크의 한 기계공장을 방문했다. 그는 공장 내 노동자들과 학생들 앞에서 미소를 띤 채 연설했고 기술 진보에 만족감을 드러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자신에게 존경을 표한 한 젊은 노동자를 향해 "앞으로! 성공! 새 국경으로!"라고 말하기도 했다. WP는 "교정당국이 나발니의 사망을 발표했을 때 푸틴은 환희로 넘친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공장에서 나발니 사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에 평소 우호적이었던 트럼프 전 대통령도 나발니 사망과 관련해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유럽 전역 추모 열기 

러시아와 유럽 전역에선 나발니 추모 열기가 번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32개 도시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으며 지금까지 400명 이상이 당국에 의해 구금됐다. 이들은 나발니를 기리는 기념비에 꽃과 촛불을 놓고 추모하다가 연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러시아 야권과 해외 망명 중인 반정부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푸틴을 배후로 지목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17일 나발니를 추모하는 모스크바 시민이 연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7일 나발니를 추모하는 모스크바 시민이 연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날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대사관 앞에선 500~600명이 나발니를 추모했다. 이 자리에선 "푸틴은 살인자"란 격앙된 반응도 나왔다.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도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 의해 서서히 살해당했다"고 말했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나발니는 용기의 대가를 목숨으로 치렀다"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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