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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적대국 한국’ 손잡은 쿠바의 선택과 실용, 북한도 성찰하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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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16년 6월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사상 처음 쿠바를 방문한 윤병세 장관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아바나 외교부 공동취재단]

2016년 6월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사상 처음 쿠바를 방문한 윤병세 장관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아바나 외교부 공동취재단]

한국, ‘북한의 형제국’ 쿠바와 전격 수교 선언

시대 흐름 따라 개방한 ‘쿠바의 길’이 사는 길

대한민국과 쿠바공화국이 그제 미국 뉴욕에서 양국 유엔대표부가 외교 문서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쿠바는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을 비교적 이른 시점인 1949년에 승인했으나, 쿠바 공산혁명(1959년)이 터진 이듬해 북한과 수교하면서 한국과의 관계는 단절됐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한류가 쿠바 국민의 호감을 얻었고, 2005년 KOTRA의 아바나 무역관 개설로 경제 교류가 진행되면서 수교에 긍정적 흐름으로 작용했다. 탈냉전 이후 역대 한국 정부의 끈질긴 수교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되면서 앞으로 여러 방면의 활발한 교류협력이 가능해졌으니 진정 환영할 일이다.

한국-쿠바 수교는 외교사의 이정표가 될 사건으로 평가된다. 탈냉전을 맞아 1989년 헝가리와의 수교를 시작으로 당시 노태우 정부는 동유럽 등 사회주의권을 상대로 북방외교를 야심차게 추진했는데, 이번에 쿠바를 마지막으로 모든 사회주의 국가(북한 제외)와의 수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북방외교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은 셈이다.

쿠바와 수교하면서 이제 한국의 수교 국가는 모두 193개국으로 늘어났다. 북한의 159개국을 크게 앞선다. 국제정치적 의미를 고려하면 쿠바는 단지 수교국 하나가 늘어난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쿠바는 냉전시대에 북한의 긴밀한 동맹이자 ‘형제국’이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방북한 쿠바 지도자를 ‘전우’라 부를 정도로 밀착해 왔다.

이런 특수관계 때문에 북한을 의식한 쿠바 측이 수교 협상 과정에서 극도의 보안을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한국은 쿠바 측을 배려해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수교 안건을 비공개로 의결했고,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때 촬영하는 사진도 이번엔 공개하지 않았다.

쿠바가 한국을 선택한 것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 용기 있는 결단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 형제에 이어 집권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주석은 2019년 헌법 개정에 이어 실용주의 개혁을 추진해 왔다. 2015년에는 미국과도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과 쿠바의 전격적인 수교 소식을 접한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는지가 주목받게 됐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북한은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면서 ‘두 개의 국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교전 중인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한 바로 그 한국을 쿠바가 파트너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핵·미사일로 무장한다고 세습 독재정권의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시대 변화를 과감히 받아들이고 개방·개혁하는 것만이 살길이란 사실을 쿠바가 생생하게 보여줬다. 역사 발전의 거대한 흐름을 이제는 북한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쿠바 지도자의 현명한 선택을 북한도 성찰해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