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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미제라블' 신인배우 반전…서울대 나온 일본인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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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미제라블' 신인배우 루미나를 지난해 12월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했다. 전민규 기자

뮤지컬 '레미제라블' 신인배우 루미나를 지난해 12월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했다. 전민규 기자

“제가 외국인이란 게 관람에 장벽이 될 수 있고, 무대 위 제 모습을 어색하게 느끼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신인배우 #800명 중 최종 2인 발탁 루미나 #인도·일본계인데 한국말 유창 #중학교 때 한국 뮤지컬 반해 #서울대 성악과 유학, 한국 데뷔 #여관집 딸 에포닌 짝사랑 그려 #솔로곡 '나 홀로' 절절한 음색

최근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에포닌 역할로 주목받는 신인 배우 루미나(23)가 유창한 한국말로 소감을 밝혔다. 아버지가 인도인, 어머니가 일본인인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일본 국적 배우다. 그런데 뮤지컬 데뷔는 한국에서 했다. 지난해 말 부산에서 개막해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레미제라블’ 한국어판 세 번째 시즌에서 에포닌을 맡고 있다. 약 800명이 지원한 오디션에서 2015년 영국 웨스트엔드 한국 배우 최초 뮤지컬 ‘미스사이공’ 배역을 따낸 김수하와 더블 캐스팅됐다. 그를 최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인도·일본계 신인배우, 한국서 데뷔한 이유

뮤지컬 '레미제라블' 에포닌 역에 더블캐스팅된 배우 루미나(오른쪽)와 김수하.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에포닌 역에 더블캐스팅된 배우 루미나(오른쪽)와 김수하.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세계 4대 뮤지컬에 꼽히는 ‘레미제라블’에서 에포닌은 19세기 프랑스 청년 혁명가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가난한 여관집 딸이다. 출연 비중은 적지만 마리우스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노래한 넘버 ‘나 홀로(On My Own)’ ‘내일로(One Day More)’ 덕분에 마리우스에게 사랑받는 여주인공 코제트보다 주목받기도 한다. 부산 공연 때 그의 호소력 짙은 음색에 감명받아 서울에서 재관람하고 싶다는 관객이 나올 정도다. 루미나가 지난해 12월 SBS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해 부른 ‘나 홀로’ 영상은 유튜브에서 “디즈니 공주 같은 청량한 음색” “레미제라블 무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 등 호평 일색이다. 이런 댓글도 있다. “(노래를 듣고) 당연히 한국분인 줄 알았는데, 일본 국적이란 것에 놀라고 서울대 성악과란 데서 두 번 놀랐다.”

루미나가 뮤지컬 배우를 본격 꿈꾼 계기가 ‘레미제라블’이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서 2004년 처음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고 흠뻑 빠진 네 살배기는 이듬해 ‘레미제라블’를 본 뒤 ‘나 홀로’를 욀 만큼 부르며 언젠가 에포닌을 맡으리라 마음먹었다.

일본은 미국‧영국에 이어 세계 3대 뮤지컬 시장으로 꼽힌다. 2021년 기준, 연 매출 8000억원 규모다.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춤 등을 배우고 익힌 그가 일본의 절반 규모인 한국으로 뮤지컬 유학을 결심한 건 중학교 때 재밌게 본 뮤지컬 ‘셜록 홈즈’ ‘드라큘라’ ‘모차르트!’ ‘빨래’ 등이 한국 창작이란 걸 알게 되면서다. 이때부터 한국말 공부를 하고 한국에 드나들며 유학을 준비했다. 일본은 뮤지컬을 조용히 보는 문화라면 한국은 열정적인 관람 분위기도 색달랐다. “언어가 달라도 감정은 전달 된다”는 그는 “다양한 국적의 뮤지컬을 보며 자라선지, 다른 나라 문화,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다”고 했다.

"노래 잘하는 서울대생 좇다가 성대 결절 위기"

'레미제라블'에서 루미나는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혼란상 속에 범죄자 부모 밑에서 혁명가 청년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여관집 딸 에포닌의 절절한 심정을 연기했다. 전민규 기자

'레미제라블'에서 루미나는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혼란상 속에 범죄자 부모 밑에서 혁명가 청년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여관집 딸 에포닌의 절절한 심정을 연기했다. 전민규 기자

유학할 대학을 물색하던 중 서울대 연습실에서 들려온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를 사로잡았다. 2019년 서울대 성악과 외국인 전형으로 입학했다. “서울대에 정말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연습에 몰두하다 성대 결절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학교에서 1대1 성악 레슨을 받으면서 제 목소리를 살리면서도 정확한 발성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재학시절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오디션에 미끄러진 뒤 ‘레미제라블’로 데뷔 티켓을 따냈다.
2023년 8월 서울대 졸업 두 달 만에 꿈의 배역 에포닌 역으로 부산 무대에 처음 섰을 땐 “뛰어나가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순식간에 공연이 지나갔다”면서 “커튼콜 때 정신이 들었다. 박수 쳐주는 관객들을 보며 내가 해냈구나, 싶어 너무나도 행복했다”고 돌이켰다.

“어릴 적 소극적이고 누구한테 먼저 말을 못 거는 성격이었다”는 그는 “에포닌의 강한 의지, 확고한 생각을 표출하는 면모에 끌렸다”고 한다. 에포닌이 사기꾼 부모 밑에서도 순수하게 자란 비결은 바로 그를 고정관념 없이 다정하게 대한 마리우스 덕분이라 그는 해석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곡은 단연 ‘나 홀로’다. “마리우스를 향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분노와 슬픔 중 어느 감정이 더 클지를 많이 생각하며 불렀다”고 했다. 한국말 발음은 계속해서 신경 쓰고 있다. “한국말은 일본어보다 센 발음이 있어선지 몰라도 좀 더 강인하게 들리는 것 같아요. ‘여기’란 단어를 ‘요기’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어서 수시로 고치고 있죠.”

"디즈니 작품 꿈꿔…영어 공부 하고있죠"

뮤지컬 '레미제라블' 에포닌 역을 맡은 루미나 캐릭터 포스터.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에포닌 역을 맡은 루미나 캐릭터 포스터.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그의 꿈을 물심양면 응원해온 어머니는 한국에 와 ‘레미제라블’ 무대에 선 딸을 보고 “신기하다”며 감탄을 연발했단다. 루미나는 ‘렌트’ ‘위키드’ ‘레베카’ 등 뮤지컬에 더해 디즈니 뮤지컬 영화‧애니메이션도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차 웨스트엔드‧브로드웨이‧할리우드 활동을 꿈꾸며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
“‘레미제라블’을 하면서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너 자신을 보여주라는 조언이 많이 도움 됐습니다. 어떤 역할이든 저한테 어울린다면 뭐든지 열려있고 찾아가고 싶습니다.”
‘레미제라블’은 다음 달 10일 서울 무대를 마치고 21일부터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 'The Final Battle' 합창 장면.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 'The Final Battle' 합창 장면.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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