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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당조차 침묵하고 동요케 한 대통령의 ‘명품백’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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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사과 없는 대통령의 미흡한 언급에 논평조차 못 내

한동훈 비대위가 리스크 관리 시스템 적극 추진을

윤석열 대통령이 7일 KBS 특별대담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과 관련, 사과 대신 “아쉽다”는 언급으로 넘어간 데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입을 굳게 닫고 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는 8일 비대위 회의에서 관련 발언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당의 입인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입장을 묻는 질문에 “연탄 봉사 끝나고 백브리핑하겠다”며 넘어갔다. “대담 안 봤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이 같은 고백과 함께 “아쉽다”고 했다.

명품백 논란이 불거진 지 70여 일 만에 처음 나온 대통령 언급이 어정쩡한 해명에 그치면서 여당조차 동요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명품백 논란은 북한을 찬양하고 현 정부를 ‘괴뢰 역도’라 부른 목사가 김 여사 선친과의 인연을 앞세워 몰래카메라를 들고 접근한 악의적 공작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김 여사는 그런 사람이 주는 선물을 물리치지 않고 받았고, ‘남북통일’ 등 국정에 관여하려는 듯한 발언도 했다. 국민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치공작’만을 강조했을 뿐 김 여사의 처신에 대해선 명시적인 사과를 피했다. 대신 “(내미는 선물을) 물리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된다” “(목사와의) 만남을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높이와 대통령의 인식 간에 한참 거리가 있다. “국가적 논란을 필부가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모양새”란 지적이 지나치지 않다.

윤 대통령은 특별감찰관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선정해 보내는 것”이라고 했고, 제2부속실은 “검토는 하고 있다”는 말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분명하고 단호한 처신”을 다짐했지만, 영부인 관리는 대통령 내외의 개인적 처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적 감시와 관리가 필수다. 당장 제2부속실이 마련되면 영부인 관련 예산과 운영에 대해 국회가 책임자를 불러 따질 수 있고, 감사원 감사도 가능해진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이런 일(명품백 논란) 예방엔 별 도움이 안 된다”고만 했다.

이번 대담은 국민의 의문을 성실히 소명해 우려를 일소하게끔 준비됐어야 했지만, 대통령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측근을 사장으로 앉힌 KBS를 통해 전달한 셈이 됐다. 그제 대통령 지지율이 29%까지 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도 이렇게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소통이 단절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이 앞으로도 명품백 논란에 국민과 동떨어진 인식을 고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꺼린다면 한동훈 비대위가 나서서 영부인 리스크를 관리할 시스템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 총선까지 딱 두 달 남았다. 신속히 논란을 정리, 해소해야 당정이 총선 대책과 민생이란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계기를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