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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11) 위연을 위한 변론, 거듭 반역의 표상으로 낙인찍힌 장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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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은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량으로부터 두상(頭像)이 모반을 일으킬 반골을 가진 인물이라고 설정됩니다. 위연의 반골상은 제갈량의 유언대로 그가 죽자 곧바로 모반을 일으킵니다. 결국 제갈량의 계책에 의해 마대가 위연의 목을 벱니다. 이를 통해 소설은 뛰어난 예지력을 겸비한 제갈량을 맘껏 드높입니다. 위연이 모반을 일으킨 것은 제갈량 사후에 문신인 양의가 군을 통괄하는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위연과 양의는 앙숙 사이였습니다. 제갈량은 양의도 위연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읽은 소설(모종강본)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내용은 나관중본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대가 갑자기 위연의 예하 부대로 들어간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마대도 위연과 같이 군사를 통솔하는 장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용맹한 장수인 위연이 소설 속에서 모반을 일으키는 인물로 변모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위연의 등장부터 알아볼까요.

촉군의 용장 위연. 출처=예슝(葉雄) 화백

촉군의 용장 위연. 출처=예슝(葉雄) 화백

위연의 첫 등장은 신야에 있던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 양양으로 도망치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양양성의 유종이 유비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자 위연이 군사들을 베고 적교를 내려 유비를 맞아들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유비가 강릉으로 달아나자 위연은 장사태수 한현에게 투항합니다. 이후 등장은 관우가 장사에서 황충과 싸울 때입니다. 한현이 관우를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면서 황충을 죽이려고 할 때, 위연이 한현을 베고 황충과 함께 투항합니다. 관우가 황충과 위연을 유비에게 인사시킬 때, 함께 있던 제갈량이 위연은 모반할 상이라며 처형하라고 합니다. 유비가 공이 있는 장수는 죽일 수 없다고 하여 위연은 유비의 장수가 됩니다. 이상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제 소설에서 위연의 변모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완성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회자된 책이 〈삼국지평화〉입니다. 이곳에서 제갈량이 금릉군을 공격하자 태수 김족이 황충으로 하여금 막도록 합니다. 이때 제갈량이 출전시킨 장수가 위연이었습니다. 평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태수 김족이 한 장수를 출마시키자 군사는 깜짝 놀랐다. 방통이 말했다. 

이 사람은 악군 사람으로 황충이며 자는 한승이오.


군사가 위연을 내보내자 두 사람이 서로 이틀 동안 싸웠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하였다. 다시 장비를 보내 싸우게 하였는데, 황충과 10합을 싸웠지만 역시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이에 황충이 말했다. 

나는 관우밖에 모르는데, 장비와 위연을 어찌 알겠는가?’

이후 관우까지 와서 3 대 1로 싸워도 승부를 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제갈량이 김족을 죽이고 달변으로 황충을 설득하자 항복하여 유비의 장수가 됩니다. 〈삼국지평화〉의 소략한 이야기가 문학적인 재미가 더해져서 지금의 소설로 변모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황충의 뛰어난 무예는 가려지고 위연은 모반할 인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대신 관우와 제갈량의 뛰어남이 부각되었는데, 이는 당시 두 사람의 폭발적 인기도를 반영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105회에서 비의가 제갈량의 편지를 가지고 손권을 만났을 때 손권이 위연을 평가한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나관중본에는 이때 손권이 양의도 같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승상은 군사를 부리는 법을 잘 아는데 선봉은 누구를 쓰고 계시오?

위연입니다.

공로와 군량은 누가 관리를 하시오?

장사 양의입니다.

손권이 웃으며 말했다.

짐이 비록 두 사람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 행실을 들은 지는 오래요. 정말 소인배들이라 나라에 무슨 이익이 있겠소? 어느 날 공명이 없으면 반드시 두 사람 때문에 망할 것이오! 경은 어찌하여 임금 앞에서 깊이 의논하지 않으시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신이 돌아가서 엄하게 따지겠습니다.

참으로 총명한 주인이시오. 이 두 사람을 내가 모르는 게 아니라 그 슬기와 용맹을 아껴 차마 죽이지 못하는 것이오.

왕쌍을 유인해서 목을 베는 위연. 출처=예슝(葉雄) 화백

왕쌍을 유인해서 목을 베는 위연.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처럼 나관중본에서의 제갈량은 위연뿐만 아니라 양의도 같이 제거하려고 합니다. 제갈량이 호로곡으로 사마의 부자를 유인할 때 그 임무를 위연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사마의 부자를 화공으로 죽이려고 했지만 소낙비가 쏟아져 실패하지요. 이때 위연도 같이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내용을 소설 속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제갈량의 명으로 위연이 사마의를 호로곡으로 꾀어 골짜기로 들어가 보니 뒤쪽이 꽉 막혔다. 위연이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내가 오늘 끝장나는구나!


그런데 다행히 소나기가 내려 사마의 부자가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위연도 목숨을 건졌다. 전투가 끝난 뒤 위연이 제갈량에게 마대가 골짜기 출구를 막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제갈량은 크게 노하여 마대를 꾸짖었다.

위연은 나의 대장이다. 내가 처음에 너에게 계책을 줄 때 사마의만 태우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위연까지 골짜기에 가두었느냐? 조정의 복이 커서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으니 망정이지 잘못했다가는 내 오른팔을 잃을 뻔했다. 무사들은 이 자를 끌어내 당장 목을 베라!


장수들이 거듭 애타게 사정하자 제갈량은 대신 마대의 갑옷을 벗기고 40대를 때리게 했다. 그리고 평북장군과 진창후 작위를 빼앗고 하급병졸로 만들었다. 마대가 영채로 돌아가자 제갈량은 은밀하게 번건을 보내 마대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승상께서는 예전부터 장군이 충성스럽고 의로움을 아셔서 이 비밀 계책을 써서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하셨소. 뒷날 성공하면 장군의 공로가 으뜸이오. 그러니 양의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고 핑계를 대면서 위연과 화해하시오.


마대는 계책을 받고 기뻐 다음 날 위연을 찾아가 사죄하였다.

이 대가 감히 그런 짓을 한 게 아니라 실은 장사 양의의 계략이었습니다.


위연은 양의가 미워 즉시 제갈량에게 찾아가 마대를 부장으로 쓰고 싶다고 재삼 간청하였다. 그러자 제갈량이 허락하였다.’

위연을 척살한 마대. 출처=예슝(葉雄) 화백

위연을 척살한 마대. 출처=예슝(葉雄) 화백

어떻습니까? 여기까지 읽으면 소설 속에서 위연과 양의, 마대의 행동들이 확실하게 이해가 되지 않나요? 이처럼 나관중은 사건의 전개 과정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였건만, 모종강이 삭둑삭둑 잘라버리는 통에 줄거리는 알지만 읽는 재미는 쏠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종강이 이렇게 여러 내용을 삭제한 것은 신묘(神妙)한 제갈량을 구축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나관중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온다면 제갈량은 아군 장수들을 이간질해 죽이는 형편없는 군사라는 불명예를 쓸 것이 뻔하기 때문이지요.

모종강은 자신이 소설을 각색하면서 위연은 반골이 있어 모반을 일으킬 상으로 설정하고, 마대에게 ‘위나라로 투항하자’는 말을 하게 하여 제갈량의 예언대로 모반을 일으킨 역적으로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양의는 제갈량이 직접 죽이면 안 되었기에 장완을 후임자로 지목하여 양의가 부끄러움에 스스로 죽게끔 하였습니다. 제갈량을 드높이기 위한 소설적 설정이 모종강에 이르러 정점에 다다른 것입니다.

지난날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만약 전군을 이끌고 위에 투항했다고 해도 정녕 이렇게 적막하겠소?

양의는 이 말로 자결에 이르게 됩니다. 양의의 말을 곱씹어 보면 과연 위연과 양의 중에 누가 모반할 사람이었는가는 자명해집니다. 소설 삼국지는 역사에서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만을 중시하다 보니 위연이 반역자가 되었고, ‘반골상’, ‘모반의 대명사’로 낙인이 찍힌 채 1800여 년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소설 속 위연의 변모를 새롭게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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