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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결혼 전 얼굴 못봐"…눈만 드러낸 前총리 아내 14년형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파키스탄 전 총리인 임란 칸(71)과 아내 부쉬라 비비가 부패 혐의로 최근 징역형을 받으며 총선을 일주일 앞둔 파키스탄 정국이 들끓고 있다. 부부가 나란히 14년형을 받은 가운데, 수년째 베일에 싸인 비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다고 BBC가 1일 보도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부패 죄로 수감 중인 칸 전 총리는 이날 재판에서 아내와 함께 추가 부패 혐의로 징역 14년과 200만 달러(약 27억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총리 시절 외국 사절단에게 받은 고가 선물들을 매우 낮은 가격에 국고로부터 사들인 혐의로 기소됐다. 칸은 전날 외교전문 유출 혐의로 샤 메무르 쿠레시 전 외교장관과 함께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임란 칸(가운데) 전 파키스탄 총리가 아내 부쉬라 비비(왼쪽)와 함께 2023년 5월 15일 파키스탄 라호르 고등법원에 출석하기 위해 길을 나선 모습. 칸 전 총리와 아내 비비는 2024년 1월 31일 징역 14년형을 선고받았다. AFP=연합뉴스

임란 칸(가운데) 전 파키스탄 총리가 아내 부쉬라 비비(왼쪽)와 함께 2023년 5월 15일 파키스탄 라호르 고등법원에 출석하기 위해 길을 나선 모습. 칸 전 총리와 아내 비비는 2024년 1월 31일 징역 14년형을 선고받았다. AFP=연합뉴스

이틀 연속으로 나온 징역형 선고는 그가 총리 재임 시절 국고에 귀속되는 선물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지난해 8월 징역 3년에 처해 수감 중인 가운데 이뤄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칸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등에게 받은 보석·식기 세트·향수·시계 등을 개인적으로 보관·판매한 혐의를 받았다. 선물 가치를 환산하면 1억4000만 루피(약 6억6700만원)라고 통신은 전했다.

"결혼 전 아내 얼굴도 못 봐"…신앙치료사 자처

이런 가운데, 소문만 무성한 비비에 대한 파키스탄 국민의 관심이 지대하다고 BBC가 전했다. 매체는 "칸의 세 번째 아내에 대한 소문이 소용돌이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칸은 앞서 두 번의 결혼을 한 뒤, 2018년 비비를 세 번째 아내로 맞았다. 칸의 첫 번째 아내(영국의 사교계 명사 제미마 골드스미스)과 두 번째 아내(전 BBC 기상캐스터 레햄 칸)와 달리, 비비는 베일 뒤에 숨어 있었다.

40대 후반~50대 초반으로 알려진 비비는 눈썹·눈 정도만 드러낸 채 공식 석상에 등장하곤 한다. 칸조차도 과거 인터뷰에서 "결혼할 때까지 비비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BBC는 "칸은 비비의 지성과 성품에 사로잡혔다고 말했지만, 비비의 '신비로운 힘'에 이끌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비비(왼쪽)는 눈썹과 눈 정도만 드러낸 채 공식 석상에 등장하곤 한다. AFP=연합뉴스

비비(왼쪽)는 눈썹과 눈 정도만 드러낸 채 공식 석상에 등장하곤 한다. AFP=연합뉴스

비비는 수피교의 '신앙 치료사'다. 이슬람 신비주의로 묘사되는 수피교는 '내면에서 신을 찾고 세속적인 문제는 포기하라'는 신념을 전파하는 종교로 알려졌다. 영적 조언자를 자처하는 비비에게는 소수의 추종자가 있었다고 한다.

BBC는 "칸이 수피교 사원에서 비비를 만나 삶의 조언을 구하며 둘이 가까워졌다는 소문이 돌았다"면서 "칸은 30년 이상 수피교에 매료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비비는 첫 남편과 혼인 상태였고 자녀는 5명이었다고 한다.

BBC에 따르면 비비는 "칸이 총리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둘의 결혼뿐이다"는 속삭임을 꿈에서 들었다고 전해진다. 그 뒤 칸과 비비는 결혼을 했고 6개월 뒤, 칸은 총리가 됐다. 세계적인 크리켓 선수 출신인 칸은 2018년~2022년까지 파키스탄 총리를 지냈다.

비비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은 임란 칸의 리더십 아래서 곧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BBC는 "비비의 확신에 찬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칸의 재임 기간 경제는 붕괴했고, 생활비는 치솟았다"면서 "정치적 반대자 다수가 투옥되고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며 인권 침해와 언론인에 대한 공격이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칸은 2022년 4월 파키스탄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 불신임으로 총리직을 상실했다. 같은 해 11월엔 반정부 시위 도중 암살 시도로 다리에 총상을 입는 곡절을 겪었다.

전 남편 "비비, 이슬람 가족법 어기고 재혼" 소송 중

우여곡절은 아내 비비에게도 계속되고 있다. 비비의 전 남편인 카와르 마네카가 비비에게 소송을 걸면서다. 마네카는 공무원이자 유명 정치인의 아들이다.

부쉬라 비비(앞줄 왼쪽)와 임란 칸(앞줄 오른쪽)이 2023년 7월 17일 라호르 법원에 등장한 모습. AP=연합뉴스

부쉬라 비비(앞줄 왼쪽)와 임란 칸(앞줄 오른쪽)이 2023년 7월 17일 라호르 법원에 등장한 모습. AP=연합뉴스

현지 언론인 던(Dawn)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마네카는 "전처인 비비에게 사기 결혼 및 음행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며 고소장을 냈다. 그는 현지 매체인 지오뉴스에 "더는 참을 수 없어 전면에 나섰다"고 말했다.

음행 혐의는 기각됐지만, 사기 결혼 건과 관련된 소송은 진행 중이다. 이슬람 가족법에 따르면 여성은 남편의 사망 혹은 이혼 후 몇 달간은 재혼이 금지돼 있다. 마네카 측은 비비가 이혼 뒤 규정된 기간이 끝나기 전에 칸과 결혼했다고 주장했다.

"수감번호 804" 칸 대신해 AI 선거운동도 

한편 오는 8일 총선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나온 소식에, 칸의 지지자들은 군부의 정치적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당초 칸은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위해 이번 총선에 출마하려 했지만, 유죄선고를 받은 탓에 후보등록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가 창당한 파키스탄정의운동(PTI)도 당국에 의해 정당 상징물 사용을 금지당해 많은 PTI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칸 전 총리 측은 총리직에서 밀려난 뒤 170여개 소송에 휘말리고, 소속당이 정치적 탄압을 받는 배후에 군부가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2024년 1월 30일 파키스탄의 한 상인이 임란 칸 전 총리와 그가 세운 PTI 당의 로고가 적힌 깃발을 판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24년 1월 30일 파키스탄의 한 상인이 임란 칸 전 총리와 그가 세운 PTI 당의 로고가 적힌 깃발을 판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정 운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군부는 출범 당시에는 칸 정부를 도왔지만, 이후 외교 정책 등과 관련해 마찰을 빚으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군부는 현재 칸 전 총리와 PTI 당원·지지자를 탄압하고 있다고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가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PTI는 물리적으로 선거지원 유세를 할 수 없는 칸을 대신해, 인공지능(AI)과 틱톡 등을 활용한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감옥에 있는 칸이 변호사에게 메모를 전달하면 AI가 이를 청중에게 전하는 식이다. 지지자들은 칸의 수감번호인 804를 군부에 항의하는 신호로 쓰고 있다고 FT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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