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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49도, 15만원에 대여했더니…" '매너온도' 사기 주의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서울 성북구에 사는 A씨는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10만원 상당의 커피전문점 기프티콘(온라인 쿠폰)을 샀다. A씨는 판매자 B씨의 계좌로 돈을 입금하고, 바코드 캡쳐 사진을 받기로 했다. 판매자 B씨가 제3자와의 거래 내역을 보여주며 “이렇게 매너온도가 높은 사람도 나와 거래를 했다”고 했다. ‘매너온도’는 거래 횟수와 후기로 평가되는 만큼 A씨는 안심했다.

하지만 얼마 뒤 A씨가 커피전문점에 가서 사용하려고 보니, 기프티콘은 이미 사용된 것이었다. A씨는 “B씨 역시 매너온도가 높은 편이어서 사기꾼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A씨는 B씨를 사기 혐의로 서울 성북경찰서에 고소했다.

당근마켓에서 신뢰도의 상징으로 통하는 매너온도가 중고 거래 사기꾼의 눈속임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매너온도는 사람 평균 체온인 36.5도에서 시작해 평가 실적에 따라 최대 99도까지 올라간다. 사진 당근마켓 캡처

당근마켓에서 신뢰도의 상징으로 통하는 매너온도가 중고 거래 사기꾼의 눈속임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매너온도는 사람 평균 체온인 36.5도에서 시작해 평가 실적에 따라 최대 99도까지 올라간다. 사진 당근마켓 캡처

당근마켓의 매너온도처럼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거래 실적을 나타내는 여러 장치가 사기꾼의 눈속임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거래 횟수가 많거나 좋은 후기를 받으면 수치가 올라가는 매너온도는, 지난 2016년 도입됐다. 사람 평균 체온인 36.5도에서 시작해 평가 실적에 따라 최대 99도까지 올라간다.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사기에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후기가 좋은 계정을 사고 파는 일도 횡행하고 있다. 1일 당근마켓 계정을 판매하는 다섯 곳을 접촉해보니 매너온도 40도 이상인 계정은 평균 7~8만원대, 40도 이하 계정은 3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었다. 매너온도가 40도 이상인 계정을 14~16만원 선에 사겠다는 이도 있었다.

중고거래 플랫폼 계정을 사고파는 텔레그램 방에서 "당근마켓 온도가 높을수록 단가도 올라간다"는 내용의 공지가 올라와 있다. 사진 텔레그램 캡처

중고거래 플랫폼 계정을 사고파는 텔레그램 방에서 "당근마켓 온도가 높을수록 단가도 올라간다"는 내용의 공지가 올라와 있다. 사진 텔레그램 캡처

당근마켓 외에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도 활발히 거래되고 있었다. 번개장터의 경우 개설 100일이 지난 아이디는 5만원, 후기가 하나라도 있는 계정은 9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한 계정 매입방 운영자는 “요즘 사기치는 업자들이 판치다보니 계정 수급이 힘들다”며 “수량 잘 나오는 분(거래 후기 등 실적이 많은 계정 보유자)은 고정 단가로 잘 챙겨드리겠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계정 거래에서 나아가 매너온도 등 거래 실적을 조작하거나 대여하는 업자도 등장했다. X(옛 트위터)와 틱톡 등에서 ‘매너온도 작업’을 검색해보니 부계정을 만드는 법 등 여러 수법이 나왔다. 휴대폰 여러 개로 복수의 아이디를 만들고 서로 거래 성사를 시킨 것처럼 거래내역과 한줄평 등을 조작하는 식이었다. 아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엔 “이틀 동안 15만원 받고 당근 계정을 대여해줬는데, 49.1도였던 매너온도가 0도로 떨어지더니 계정을 정지당했다”, “13만원 받고 계정을 팔았는데 구매자가 내 계정으로 고액 상품권 사기를 친 것 같다” 같은 계정 대여 피해 사례도 올라왔다.

번개장터 계정은 거래 후기가 하나라도 있을 경우 가장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사진 텔레그램 캡처

번개장터 계정은 거래 후기가 하나라도 있을 경우 가장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사진 텔레그램 캡처

거래 후기를 활용한 사기가 횡행하면서 매너 온도 등이 지나치게 높은 계정은 오히려 거르는 경우도 많아졌다. 당근마켓 매너온도가 42.8도인 김모(31)씨는 “거래를 해도 되는지 판단할 때 매너온도나 거래 횟수 대신 후기를 주로 본다”고 했다.

모바일 기프티콘이나 백화점 상품권 같은 비대면 거래와 사기 피해가 잦은 상품은 특히 주의가 당부된다. 경찰 관계자는 “중고거래를 할 땐 대면 직거래를 원칙으로 해야 하되, 비대면 거래를 할 경우 선입금을 하지 않아야 사기를 최대한 예방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계정 거래는 정보 도용 및 사기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정책적으로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며 “내부 시스템을 통해 계정 도용 및 매너온도 조작이 확인될 경우 최대 영구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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