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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만난 뒤 명품으로 떴다…오바마·버핏 홀린 만년필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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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몽블랑은 어떻게 명품이 됐나

브랜드로 본 세계

세대를 초월해서 들어보셨을 겁니다. ‘몽블랑 만년필’. 컴퓨터 자판 시대가 수십년인데 “요새 누가 펜을 써?” 싶겠지만, 펜을 쥐고 ‘사인’ 하는 자의 권력은 세대 초월입니다. 몽블랑이 써낸 세계사를 들여다 봅니다. 알아두면 언젠가 쓸모있는 상식도 말이지요. 먼저 ‘몽블랑’은 프랑스 말인데, 그 만년필 회사가 원래는 독일 기업이었다는 것 아십니까. 왜일까요?

2019년 나온 하이 아티스트리 타지마할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1 검은 신화. 당시 210만 유로(현재 약 30억원)로 출시됐다. [사진 몽블랑]

2019년 나온 하이 아티스트리 타지마할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1 검은 신화. 당시 210만 유로(현재 약 30억원)로 출시됐다. [사진 몽블랑]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우주기지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책상 위에 몽블랑 엠블럼이 각인된 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2022년 즉위 선언문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책상 위 펜 통을 치우라고 손을 휘저으며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낸 만년필도 몽블랑이었다.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서부터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권력자·부호·명사의 사랑을 받은 몽블랑은 대체 무슨 재주가 있는 걸까.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 [사진 몽블랑]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 [사진 몽블랑]

몽블랑의 역사는 190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기술자 아우구스트 에버스타인, 기업가 알프레드 느헤미야와 클라우스 요하네스 포스가 함께 만든 필기구 회사에서 시작됐다. 원래 이름은 ‘심플로 필러 펜 코(Simplo Filler Pen Co)’였다. 첫 만년필은 검은색 몸통에 빨강 뚜껑이었고, 브랜드명도 ‘루즈 앤 느와(Rouge et Noir)’, 즉 ‘적과 흑’이었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의 소설 제목과 같았다.

몽블랑 반 고흐 에디션. [사진 몽블랑]

몽블랑 반 고흐 에디션. [사진 몽블랑]

알프스 산맥 최고봉 몽블랑의 눈 덮인 여섯 봉우리를 상징하는 하얀 별 엠블럼은 1913년 탄생했다. 회사 측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몽블랑 산에서 영감을 받아 최고의 만년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이름은 카드게임 중 결정됐다고 한다. 창업자 포스의 증손자 옌스 뢰슬러에 따르면, 포스가 카드게임을 함께 하던 처남에게 신제품 얘기를 하자 처남이 몽블랑을 제안했다는 것이다(박종진 만년필연구소장, 『만년필 탐심』).

몽블랑 대표작은 1924년 출시된 명작(名作)이라는 뜻의 마이스터스튁(Meisterstuck) 모델이다. 펜촉에 새겨진 숫자 4810은 몽블랑 산의 높이(m)를 뜻한다. 찰스 3세가 안주머니에서 꺼낸 만년필이 바로 ‘마이스터스튁146 솔리테어 르그랑’ 모델로 전해진다.

수작업으로 제작 중인 몽블랑 만년필. [사진 몽블랑]

수작업으로 제작 중인 몽블랑 만년필. [사진 몽블랑]

몽블랑이 처음부터 명품 대우를 받은 건 아니다. 1920년대 이후 세계 경기 침체로 저가형도 만들었다. 볼펜 보급으로 위기도 맞았고 1970년대 오랜 주주였던 영국 회사 알프레드 던힐에 팔렸다. 던힐은 인수 후 20달러 이하 상품의 제작을 전면 중단시켰다. 1983년 마이스터스튁 시리즈를 순금과 순은으로 장식한 제품 라인 ‘마이스터스튁 솔리테어 컬렉션’을 출시했다. 1994년엔 4810개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제품 ‘마이스터스튁 솔리테어 로열’도 내놨다.

이런 고가 제품 덕에 몽블랑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아이콘으로 재탄생했다. 고급화 정책 이후 세계 시장 점유율이 10% 이상 늘었다고 한다. 가장 높은 가격으로 알려졌던 몽블랑 펜은 2019년 나온 ‘하이 아티스트리 타지마할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1 검은 신화’다.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장식된 이 제품은 당시 210만 유로(약 30억원) 가격표가 붙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방문록을 작성하는 모습. 앞에 몽블랑 엠블럼이 각인된 케이스가 놓여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방문록을 작성하는 모습. 앞에 몽블랑 엠블럼이 각인된 케이스가 놓여 있다. [중앙포토]

독일에서 직접 생산하는 몽블랑 만년필은 닙(Nib·펜촉) 제작에서만 35단계를 거치고, 이후 조립하고 테스트하면서 70단계를 더 거친다고 한다. 양질의 필기감을 위해 모든 닙이 필기 테스트도 거친다. 종이에 스칠 때 긁히거나 걸리는 것 없이 연속음을 내는 닙만 통과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세계적 브랜드가 됐지만, 몽블랑 필기구의 미래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 몽블랑이 속한 리치먼드그룹 반기 실적 보고서를 보면 필기구 분야의 지난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6% 역성장했다. 스마트폰과 e메일, 전자문서가 확산하면서 만년필 사용 인구가 줄고 있는 영향인 듯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국내 만년필 인구는 15만~20만 명으로 추산된다. ‘펜후드’라는 이름의 ‘만년필과 필기구, 손글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데 회원 수 5만 명에 하루 방문자 수가 평균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박종진 만년필연구소장은 “전통적으로 남성이 만년필을 많이 사용했지만, 최근엔 2030 여성들이 만년필로 손글씨를 쓰고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게 트렌드가 됐다”고 전했다.

2024년은 최대 히트작인 마이스터스튁 출시 100주년을 맞은 해다. 몽블랑 관계자는 “새로운 디자인의 100주년 기념 제품이 올해 상반기 공개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마니아에겐 희소식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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