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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재판만 290차례 ‘헌정 사상 초유’…수사는 윤석열·한동훈 라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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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호 02면

양승태 사법농단 모두 무죄

7년 전 나라를 들썩였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사건 1심에서 양승태(76)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 전 대법원장 뿐 아니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2019년 2월 11일 서울중앙지법에 공소장을 접수하며 시작된 이번 사건은 1심 결과가 나오는 데만도 1810일,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약 290차례의 재판을 거쳤다. 한 때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며 사법행정권 남용 여부에 대한 첫 법적 판단으로 주목받던 재판은 어느새 ‘재판 지연의 교과서’란 비판을 받았다. 대법원의 자체 진상 조사, 문재인 정부 시절의 검찰 수사 기간까지 합치면 그 기간은 6년을 훌쩍 넘어간다.

‘사법농단’ 사건은 여러 대목에서 숱하게 ‘헌정 사상 초유’란 기록을 세웠다. 사건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인 이탄희 판사가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발령받은 뒤 사직서를 제출하며 시작됐다. 당시 인사를 앞두고 양 전 대법원장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라는 지시에 이 의원이 항의하자 발령이 번복됐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각급 법원 대표 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부 사상 최초로 소집돼 양 전 대법원장을 압박했다.

2017년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대법원은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광범위하게 남용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거래하려는 의도로 강제동원 손해배상 사건 등 각종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법 거래’란 조사 결과에 여론이 들끓자 김 전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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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검찰이 대법원을 수사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검찰 수사는 2018년 6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사건을 재배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고, 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인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가 수사팀장을 맡았다. 검찰은 수사 개시 3개월만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하고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을 소환조사했다. 이듬해 1월 11일에는 전직 사법부 수장 최초로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고 추가 조사 끝에 1월 24일 구속됐다. 사법부 수장이 피의자로 소환된 것,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 모두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수사는 2019년 3월 마무리됐다. 검찰은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등 전·현직 판사 10명을 추가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 수사와 기소까지는 전광석화였으나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재판은 거북이 걸음을 보이며 5년을 끌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판 초기만 해도 적시(適時)처리주요 사건으로 지정하고, 주 2회씩 재판을 진행하며 속도를 올렸다. 증인신문 때는 저녁 식사 시간을 넘기며 재판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구속기간(1심 최대 6개월) 내 선고가 힘들어 보이자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 직권 보석 결정하긴 했지만, 이때만 해도 5년 가깝게 재판이 진행될 줄은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했다. 검찰 역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취임 후 첫 지시에 따라 ‘특별공판팀’을 설치하며 공판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2020년 1월 양 전 대법원장 폐 절제 수술로 재판이 주춤하고 코로나19가 확산하는 등 돌발변수가 생기더니, 2021년 2월 법원 인사로 그간 재판을 담당하던 판사들이 모두 떠나면서 재판 지연 문제가 본격화했다. 재판갱신 절차에만 7개월을 보내면서 그 기간 동안 법정에선 과거 증인신문 녹음파일만 재생됐다. 검사들도 혐의를 헷갈리거나 엉뚱한 얘기를 해 재판부가 “착오한 것 같다”며 고쳐주는 일도 있었다. 검찰은 그해 6월 특별공판팀을 해체했다.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소송 지연을 초래하는 피고인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있다”, “이미 증언을 마친 증인을 검사가 다시 신청하거나 우리가 동의한 증거에 검찰이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 4개월 넘게 진행됐다”며 재판지연을 서로의 탓으로 돌렸다. 재판부를 교체한 사법부 역시도 지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들은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급심에서 일부라도 유죄가 선고된 것은 벌금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 뿐이다.

사법농단 재판의 핵심 쟁점은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는지였다. 윤석열-한동훈 검찰의 수사 결과와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명백하게 엇갈렸다. 검찰 입장에서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인 만큼 유무죄에 대한 최종 판단은 결국 대법원에서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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