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포기하면 전쟁 종료 선언 노·부시·김 함께 직접 서명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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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右)이 11월 18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국전 종전 협정문에 공동으로 서명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사진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악수를 하는 장면.[하노이=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1월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과 함께 한국전 종료 협정서에 공동 서명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얘기는 세 사람이 한 장소에서 만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새로운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겠다. 평화체제를 만들겠다"고 말하고 북한의 체제 변화를 시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29일 "부시 대통령의 태도가 이전과 분명히 달라졌다"며 당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 간에 오간 대화 내용을 이같이 소개했다.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전 종전 선언문에 공동 서명을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건 처음 공개된 사실이다. 또 토니 스노 미 백악관 대변인이 한.미 정상회담 직후의 브리핑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경우 미국은 일종의 '평화 세리머니(의식)'를 할 수 있다"고 말한 건 바로 부시 대통령의 공동 서명 발언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부시 대통령이 과거에는 북한이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주로 말했지만 18일 열린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에 줄 것을 얘기했다"며 "6자회담은 이제 북한 하기에 달렸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전 종료 선언을 위해 부시 대통령이 공동 서명을 할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사실상 협상 파트너로 인정했으며, 직접 만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부시 대통령이 과거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칭하고 김 위원장을 '폭군'으로 표현한 점 등에 비춰 볼 때 중간선거 패배를 계기로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부시의 자세가 전향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고 있다.

이뿐 아니라 부시 대통령은 당시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지칭하며 "북한과 (대화에)진전이 있도록 잘하라고 특별히 지시했다"는 말도 노 대통령에게 했다고 이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현재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되는 북.미 간 협상도 11월 18일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의 연장선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미국, 조건부 대북 중유 공급 용의"=힐 차관보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을 만나 북한이 5MWe급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을 받아들이면 중유 공급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평화체제 보장 등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간 얘기를 제안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승희 기자

◆ 평화협정=1953년 7월 27일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사령관과 팽덕회 중국의용군 사령관, 김일성 북한인민군 사령관이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한국전쟁을 끝낸다는 협정이 아니라 일시 중단하자는 것이었다. 이 협정 때문에 국제법상 한반도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평화협정은 전쟁 종료 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이 같은 상황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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