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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무기거래만큼 ‘비우호적’인 일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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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지혜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지혜 외교안보부장

유지혜 외교안보부장

그는 한국은 명확한 ‘비우호국’, 북한은 명확한 ‘우호국’으로 불렀다. 지난 19일 만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신임 주한 러시아 대사 이야기다.

비우호국의 기자로서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임한 인터뷰였다. 사실 준비해간 질문지 자체도 우호적일 수는 없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베테랑 외교관답게 자국의 입장을 충실히 전달하면서 예민한 질문에는 오히려 다른 논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가장 민감한 북·러 간 무기 거래에 대해 묻자 “우리는 국제적 의무를 고려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하면서 “(그런 의혹 제기는)러·한 관계에 추가적 어려움을 만들고, 한국 국민의 불안을 키우려는 목표 같다”고 지적하는 식이었다. “서방 언론만 보지 말아달라”고도 했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가 19일 서울 서소문로 러시아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가 19일 서울 서소문로 러시아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그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간접적으로 포탄을 가장 많이 지원한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우리는 보도가 아니라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고, 그런 보도를 양국 간 큰 문제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미심장했다.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취지이지만, 이는 ‘그러니 한국도 북·러 간 무기 거래에 대한 언론 보도 말고, 그게 아니라는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믿어달라’는 말로도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국 국민은 이 상황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를 것이고, 이를 존중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다.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미사일 잔해에서 한글이 써진 부품이 발견됐다는 외신 보도를 보면서 한국민은 ‘모의 공격’(simulated attack)의 두려움까지 느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틈만 나면 사거리를 가리지 않고 미사일을 쏘아대는 통에 상당수 국민이 둔감해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시험발사와 실제 전쟁에서 무기가 사용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김정은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우리를 노린 다양한 무기의 살상력을 실전에서 검증하고, 요격 회피 능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스스로 낙관주의자라며 “양국 관계를 발전시킬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러시아의 비우호국 중 우호국으로 되돌아가는 첫 사례가 되길 희망한다”면서다. 그의 말은 반갑긴 하지만, 한국민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먼 이야기다.

시간이 부족해 하지 못했지만,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미래 러시아의 번영에 더 도움이 될 파트너는 비우호국 한국인가, 우호국 북한인가. 물론 노련한 외교관인 그는 “가정적 상황에는 답할 수 없다”고 피해갔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