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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검찰총장은 왜 그랬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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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현준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현준 사회부 기자

박현준 사회부 기자

정치중립 의무 위반으로 김상민 대전 고검 검사와 박대범 광주고검 검사에 대해 대검찰청이 법무부에 중징계를 청구했다. 이는 비단 두 검사뿐만 아니라 검찰 구성원 전체에 내린 이원석 검찰총장의 불호령으로 봐야 한다. 김 검사는 현직 검사 신분으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고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는 이유로, 박 검사는 여권 인사를 부적절하게 접촉한 의혹으로 징계 대상에 올랐다.

“여의도에선 검사 출신만 모아도 당 하나를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개가 있다. 정치인 수사가 늘어나면서 검사 출신에 대한 정당의 수요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증가 추세다. 나중에 든든한 우군이 돼줄 것이란 기대 때문인지 검찰 조직 내에서도 검사들의 정계 진출을 너그럽게 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런 토양 때문일까. 검찰 내부에서는 두 검사에 대한 이 총장의 강경 대응을 두고 “굳이 왜 이 시점에…”하는 반응마저 없지 않다. 이 총장의 중징계 청구는 이런 분위기에 대한 경고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모습.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모습.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검찰이 몇 년간 정치에 출렁였다는 건 긴말이 필요하지 않다. 검찰 밉다고 나라의 근본 기능을 없애려는 정권이 들어서더니, 그 반작용으로 검사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러나 어느새 검찰 조직엔 “다음 정권에서 검찰이 공중분해 되는 거 아닌가”하는 위기감이 번지는 중이다. 검찰이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조직을 지키고 수사의 공정성을 수호하는 길임을 상식적으로 알아서다.

이 총장 역시 2022년 9월 취임사에서 “여러 해 동안 검찰 제도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과 함께, 검찰의 잣대가 굽었다 펴졌다를 거듭했다”고 검찰을 걱정했다. 총선 출마 검사들에 대한 이 총장의 강경 대응도 그런 우려의 연장선에서 보면 필연적 수순이다.

다만 “‘해야 할 일’을 성심을 다해 반듯하게 해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경계하고 삼가는 자세를 항상 마음에 새겨달라”는 이 총장 취임사 속 당부는 다소 추상적이다. 또 지금처럼 몇몇 검사에 대한 ‘일벌백계’식의 시범 케이스 손 보기로는 장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차라리 이참에 관련 윤리규범을 별도로 만드는 건 어떨까. 가령 검사가 정치에 진출하기 전 어느 만큼의 공백기를 보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도 검사윤리강령 등이 있지만 두루뭉술하다. 강제력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성문화된 규범을 만들어 두면 정치 희망 검사로서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본을 바로 세우면 길이 열릴 것”(이 총장 취임사)이라는 말대로, 그렇게 기초 작업을 튼튼히 하다 보면 어느새 검찰은 신뢰를 회복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