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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 충돌 이틀만에 ‘봉합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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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해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며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해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며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

전국에 냉동고 한파가 불어닥친 23일 오후 1시40분. 전날 대형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특화시장 일대도 영하 6.3도, 체감온도 영하 11.1도로 예외가 아니었다. 거센 눈발 속에 녹색 민방위 점퍼 차림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차량에서 내린 윤석열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알아보고 다가갔다. 한 위원장이 허리를 90도로 숙인 뒤 인사하며 웃자, 윤 대통령도 한 위원장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명품백·사천(私薦) 논란’으로 충돌하던 두 사람은 이틀 만에 이렇게 만났다. 〈중앙일보 1월 23일자 1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을 비롯한 당정 관계자들은 함께 소방당국으로부터 화재 발생 원인과 피해 현황 등을 보고받았다.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11시8분 서천특화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점포 227개가 불에 탔으며 두 시간여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윤 대통령은 뒤이어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특별재난지역 선포 가능 여부를 즉시 검토하고 혹시 어려울 경우에도 이에 준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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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가량 화재 현장을 둘러본 두 사람은 대통령 전용 열차로 함께 상경했다.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날씨가 안 좋은데 같이 타고 갑시다”라고 제안했고, 한 위원장은 “자리 있습니까”라고 호응했다. 둘은 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1시간가량을 마주 앉아서 왔다. 다만 대통령실 참모들과 당·정부 관계자들도 주변에 함께 있어 독대 자리는 없었다고 한다. 열차에 함께 탄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여사 이슈나 사천 논란 같은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며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 등에게 ‘민생 문제를 각별히 챙겨 달라’고 당부하고, 옆에 있던 장관들에게는 ‘당에 보고를 잘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말했다. 다른 동석자는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옛날 검사 시절 추억담을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동훈, 90도 폴더인사…윤 대통령 ‘어깨 툭’으로 답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23일 오후 눈을 맞으며 전날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특화시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보다 30분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23일 오후 눈을 맞으며 전날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특화시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보다 30분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뉴스1]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통화에서 “상경하는 열차 안에서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출발점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서울역에 도착한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여러 가지 민생 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갈등 봉합 여부를 묻는 기자들 질문엔 “저는 대통령님에 대해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변함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날 만남에 대해 여권에선 “갈등 봉합 국면으로 돌입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화재 현장에 함께 간 국민의힘 고위 인사는 통화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웃으며 악수하고, 거의 포옹하다시피 했다”며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장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도 “조만간 윤 대통령이 ‘한동훈 비대위’에 식사 대접을 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갈등 기류가 완전히 걷혔다고 보긴 섣부르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갈등의 발단이 된 ‘김경율 사천 논란’과 ‘김 여사 명품백 관련 윤 대통령의 사과 여부’ 등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이 지난 17일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언급하면서 ‘사천’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김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과 관련해 과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거론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이어 지난 21일 윤 대통령이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한 위원장이 이에 대한 거부 입장을 밝히면서 파장이 커졌다.

윤 대통령을 만난 한 위원장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 대통령을 만난 한 위원장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여권에선 갈등 봉합을 위한 여러 아이디어가 거론된다.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 사퇴’ 카드를 쓰고, 윤 대통령 역시 명품백 이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안 보이는 중이다. 명품백 이슈만 해도 대통령실 내부에서부터 “몰카 피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된다”(김 여사와 가까운 여권 인사), “총선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선 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대통령실 관계자) 등 백가쟁명이다.

한 위원장은 이날 상경 뒤 서울역에서 “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김 비대위원의 사퇴 관련 언급은 없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없었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어 김 여사의 명품백 논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답 없이 자리를 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화재 현장을 함께 방문한 것을 두고 현장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고 비판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윤석열-한동훈 브로맨스 화해쇼가 급했다지만,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된 서천특화시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을 어떻게 배경으로 삼을 생각을 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만나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한 장면을 두고 한 지도부 관계자는 “김건희 심기 경호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박성재

박성재

◆윤 대통령, 한동훈 후임에 박성재 지명=윤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박성재 전 서울고검장을 지명했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은 “공직 생활 내내 엄정한 성품과 강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원칙에 기반해 뚝심 있게 일을 처리한 것으로 정평이 난 분”이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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