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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페만 21세기 미 위상 판가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현 미 존스 홉킨스 대학 외교정책대학원 특별교수)은 최근 유엔의 한 모임에서 최근 동유럽 변화와 페르시아만 사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전후 45년간 지속된 냉전을 통해 승리자가 된 미국의 앞으로의 역할은 이 두「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장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브레진스키 교수는 강조하고 있다. 그의 연설문을 요약 소개한다.【편집자 주】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했다. 이 사실은 현재 진행중인 세계사의 두 사건, 즉 동유럽의 공산주의체제 붕괴 및 냉전이후시대의 첫 지역 분쟁인 페르시아만 사태를 다루는데 있어 미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수십 년간 미국의 세계적 위치가 달라질 것이다.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붕괴과정은 그들이 이미 민주국가의 건설단계에 들어섰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들은 사상유례가 없는 일들이다. 이들은 지금 엄청난 난관에 봉착해있다. 개혁으로 인한 혼란과 희생이 엄청나다.
동유럽이 처한 위기는 소련이 처한 위기가 점점 악화되면서 복잡해지는 측면이 있다.
소련이 처한 위기의 성격에 대해서 논의를 국한시켜 보자.
본인의 생각으로는 소련위기의 핵심은 경제파탄과 국가해체가 서로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가 경제고문인 샤탈린이 입안, 옐친이 촉구한 이른바 5백일 경제개혁 안을 거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소련은 인구의 절반이 비 러시아인이다.
물론 미국도 인종적으론 다양한 나라다. 하지만 소련과 미국은 문제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인은 대부분 그 자신, 아니면 조상이 「개인」으로서 미국에 이주해 왔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개인적 차원의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소련은 다르다. 소련은 다양한 민족국가들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다시 말해 소련은 국가적 차원에서 갈래가 여럿이다. 이들 국가들은 독자적인 정치적 아이덴티티를 추구하고 있으며 현재 이러한 움직임은 비등 점에 도달해 있는 느낌이다. 지금 소련은 해체단계에 들어가 있다. 소련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이 사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의 대소정책은 고르바초프 개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록 고르바초프 개인은 동정과 찬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소련은 이미 그의 통제력을 벗어나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장악하고 있는 것은 소련의 외교정책과 군, 그리고 KGB뿐이다.
이를 통해 그는 독재적인 대통령 권한을 유지하고 있지만 바로 이 때문에 소련에는 유혈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진정 소련을 돕기 원한다면 연방 각 공화국이 민주적 자결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다음은 페르시아만 사태를 살펴보자.
본인은 미국이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 장기적인 곤경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직후 미국이 취해온 행동은 지금까지 모두 옳은 것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파병, 제한된 제재조치 등은 이라크로 하여금 매일 1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게 하고 있다.
「응징적 억지」라고 말 할 수 있는 이 같은 정책은 이라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의 대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8월2일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침공 일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가 미국의 성공이었으며 이런 이유에서 유가는 25달러선으로 안정될 수 있었다.
페르시아만 위기와 관련, 최근 일고 있는 불안감은 미국의 국가이익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미국정부의 발언은 그 동안 이라크가 이 지역에서 무조건 철수하지 않으면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미국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국내에서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지 않고서는 달성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 점이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있다.
또 세계각국이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에 동참할 것인지도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쿠웨이트를 해방시키고 이라크를 궤멸시키려면 미국 스스로도 엄청난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대 이라크 제재동맹에서 리더로 활약하고 있으며, 이라크가 감내할 수 없는 손해를 보도록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현 상태가 계속될 경우 이라크는 앞으로 6개월, 최대 9개월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이 볼 손실 또한 엄청나다.
전비는 하루 1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으며 승산도 확실하지 않다. 미국이 자랑하는 공군력의 우세는 반드시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태에 대해 우리 스스로는 준비가 돼 있는가.
세계여론은 어떻게 될 것이며 아랍국가들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미국이 직면한 이 두가지 세계사적 사건에 대해 우리는 각기 다른 대응자세가 필요하다.
두 가지 과제에 어떻게 적절히 대응하느냐에 따라 냉전에서 얻은 미국의 승리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산산조각 날 것인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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