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데레프스키 유해 조국 품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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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세기초반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작곡가로 평가되며 초대 폴란드 망명 정부 수반을 역임했던 파데레프스키의 유해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의 유해는 50주기가 되는 91년6월29일 폴란드로 돌아가게 되며 이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파데레프스키 자유 콘서트」가 성대히 열린다.
그러나 그의 유해 중 심장만은 그의 유언에 따라 미국에 남게된다.
심장과 사체의 나머지 부분이 분리 매장되는 풍습은 폴란드에서는 이상스러운 것이 아니다.
쇼팽도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 교외에 묻혀있으며 그 외의 사체는 그의 활동근거지였던 파리에 묻혀있다.
파데레프스키 관련 각종 추모 행사는 미국의 비영리 문화 단체인 국제예술위원회가 벌이고 있으며 사체 이장 외에 전기 출간, 기념관 건립 등의 행사도 준비중이다.
파데레프스키는 폴란드 망명정부 수반을 역임하던 41년 80세를 일기로 미국뉴욕에서 숨진 폴란드가 자랑하는 음악가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887년 파리에서의 환상적인 데뷔공연으로 세계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으며 1891년 뉴욕에서도 데뷔 공연을 가졌다.
그의 인기는 미국에서도 폭발적이어서 미국 데뷔 첫해 90일간 1백17회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1892년 그의 2차 미국·연주에서는 당시 최고액수인 18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리기도 했었다.
작곡가로서 그는 폴란드소설에 기초한 『만루』라는 오페라와 많은 피아노소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들은 아직도 많은 연주가들이 공연하고 있다.
그는 연주활동을 하는 한편 19년 파리평화회담 폴란드 대표로 참석하는 등 조국의 자주독립과 평화를 위해 활동한 정치가로서도 큰 족적 남겼다.
그는 연주활동 중 각국의 유명 인사들에게 자신의 명성을 십분 활용, 폴란드의 국제위상을 높이는 정치활동을 병행한 애국자로 존경받고 있다.
그는 특히 폴란드가 나치와 소련 치하에 신음하던 41년까지 폴란드 망명 정부수반을 역임하면서 조국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정력적으로 활동해온 현실 참여 예술인이었다.
그의 사체 환국 등 50주기 기념행사는 자유폴란드의 상징적 사건으로 세계문화계는 평가하고 있다.
파데레프스키 추모위원회의장 헨리 아차키는 이 같은 일련의 행사와 관련, 『폴란드는 이제 정신적 상징조성이 시급한 실정』이라면서 『이 사업들이 폴란드의 국가적 행사로 자유와 평화회복에 큰 기여를 하게될 것』이라고 말했다.【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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