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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 충돌’ 여권내 충격파…용산, 한동훈과 회동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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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면충돌로 치닫던 대통령실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에 ‘일단 멈춤’ 신호가 작동했다. 총선이 80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분열은 공멸”이란 공감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2일 중앙일보에 “한 위원장과 용산 고위 인사가 곧 만나기로 했다”며 “어느 정도 수습된 후엔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도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모는 “지금 결별한다는 건 곧 공멸을 뜻한다”며 “양측 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류는 전날 밤 윤 대통령과 참모진의 관저 심야 회의 때부터 형성됐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참모들뿐 아니라 윤 대통령도 ‘당정 갈등이 커져 파국으로 가선 안 된다’고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중진들이 움직이면서 들썩이던 국민의힘 내부 분위기도 누그러졌다. 전날 경북 지역 의원들에게 “최근 정국 상황과 관련해 고견을 듣겠다”며 긴급회의 소집을 공지했던 송언석 의원은 모임을 취소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가장 큰 문제로 본 건 지난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 때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을 마포을에 출마시킬 거라고 깜짝 발표한 장면이라고 한다. 곧장 국민의힘에선 낙하산 논란이 일었는데, 윤 대통령은 “조건 없는 사퇴 요구를 한 것이 아니라 사천 논란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려는 취지였다”며 “한동훈은 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후배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신뢰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도 간접적으로 윤 대통령 측에 그간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한다. “원희룡 전 장관을 인천 계양을에, 김 비대위원을 마포을에 소개한 것은 험지에 나가겠다는 유명 후보를 내세워 분위기를 띄우려는 의도였다”는 게 한 위원장 측 설명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사무총장, 원내대표, 인재영입위원장 등 간부들과 사전에 논의를 거친 사안”이라며 “사당화라는 대통령실 지적에 한 위원장이 크게 서운함을 느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갈등 기류가 확 걷힌 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30분쯤, 30분 뒤 있을 민생토론회에 불참한다고 결정했다.

갈등의 뿌리는 김경율…중진들 ‘김 사퇴 카드’로 화해 모색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한국콘텐츠진흥원 홍릉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열릴 예정이던 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 감기 기운이 있어 불참했다. 이날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오른쪽)이 윤 대통령을 대신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한국콘텐츠진흥원 홍릉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열릴 예정이던 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 감기 기운이 있어 불참했다. 이날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오른쪽)이 윤 대통령을 대신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위원장이 이날 출근길에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제가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을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밝힌 직후였다. 한 위원장은 “(여사 관련)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감기몸살을 이유로 들었지만,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친윤계는 종일 부글거렸다. 한 친윤계 의원은 “비대위원장이 임기 3년 남은 대통령을 기어이 무릎 꿇릴 수는 없다”며 “이런 식으로 자기 정치에 몰두하면 설사 총선에 이겨도 윤석열 정권에 해악을 끼치는 셈”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갈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김 여사의 명품백 의혹에 대한 인식 차가 크다. 한 위원장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책을 요구하지만, 대통령실은 “몰카 공작에 대해 먼저 사과하진 않을 것”이란 입장이 확고하다.

한 위원장은 사천 논란에도 김경율 비대위원을 치켜세우지만, 대통령실엔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명품백 수수 의혹을 비판한 김 비대위원에 대한 불쾌감이 가득하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여사를 프랑스 혁명에서 교수형 당한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건 지나쳤다”며 “윤 대통령도 불쾌해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명품백 의혹을 키운 측면도 있지 않냐”고 말했다. 김 여사와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김 여사가 함정 취재인지를 모른 채 함부로 공간을 내줘 음모에 빠진 것은 부주의했다고 지적할 수 있다”면서도 “몰래카메라의 불법성과 특정 세력의 청부를 받은 선물 공작에 대한 가해자들의 사과가 먼저 있어야지, 피해자인 김 여사에게만 사과를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중진들에게선 두 사람의 화해를 위한 아이디어들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김경율 비대위원 사퇴’ 카드다. 총선에 출마는 하되 비대위원 자리에선 물러나라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비대위원은 공천을 결정하는 자리”라며 “전략공천 대상자가 있을 곳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은 이날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당 대구·경북(TK) 의원님들에게 분별없는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이 정치 공작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게 우리 당 내 TK의 시각이다. (그분들은) 본인의 선수가 늘어나기만을 바라는 분들”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김 비대위원의 오늘 사과도 유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용산의 뜻이 확고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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