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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학대? 이재명쇼?…유튜브 타고 가짜가 사실로 둔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양극단·증오 온상 된 정치 유튜브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습격한 김모씨가 지난 4일 부산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습격한 김모씨가 지난 4일 부산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근거는 없습니다.” 유튜브에 난무하고 있는 가짜뉴스의 시작은 대개 이렇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툭 던져진 한마디는 순식간에 알고리즘을 타고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 사실로 둔갑해 재생된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한 ‘젓가락 쇼’ ‘자작극’ 등의 반응도, 배우 이선균씨의 극단적 선택의 배후에 마약 수사를 빌미로 한 정부의 기획이 있었다는 음모론도 모두 이렇게 시작됐다.

근거가 있다 해도 조작되는 경우가 적잖다. 지난 8일 친야 성향인 정치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확산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아동학대 현장’ 조작 영상이 단적인 예다. 이상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처음엔 ‘진짜인가’ 의심이 가더라도 알고리즘에 의해 여러 채널에서 같은 정보가 계속 등장하다 보면 어느새 사실이라고 믿게 되고, 그러면서 진짜 정보는 관심 밖으로 밀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가짜뉴스는 유튜브에서 처음 접하는 빈도가 가장 높았다. 지난해 4월 한국행정연구원 조사 결과 응답자의 65.5%가 유튜브와 SNS에서 가짜뉴스를 접했다고 답했다. 국민의 한 달 유튜브 시청 시간이 1044억 분으로 모바일 앱 중에서도 압도적 사용 시간을 차지하는 걸 감안할 때 유튜브 가짜뉴스의 파급력이 위험 수위에 다다른 셈이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는 “유튜브는 기존 미디어와 달리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 성향에 맞는 편향된 콘텐트만 반복적으로 자동 재생해 보여주는 시스템”이라며 “이용자도 비슷한 내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가짜뉴스를 더 쉽게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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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유튜브 가짜뉴스는 비정치적 이슈라도 정치적 논란과 엮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에 현역 중진 의원이 연루돼 있다는 설이 일부 정치 유튜브에서 거론되면서 고소 사태까지 벌어진 게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정치적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과 맞는 정보만 찾아가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수요가 수익과 직결되다 보니 공급도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유튜버들도 팬덤층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메시지를 발산하려는 유혹이 커지기 쉽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29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이선균씨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29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이선균씨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렇게 형성된 팬덤층은 실제로 자신의 성향과 맞는 정치 유튜브를 적극 후원하고 있었다. 유튜브 통계 분석 전문업체인 플레이보드가 지난해 유튜브 슈퍼챗(후원금) 순위를 집계한 결과 상위 5위 유튜브 채널 중 4개가 정치 유튜브였다. 강연곤 중앙대 교수는 “정치적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댓글과 후원금 등을 통한 온라인 정치 참여에 훨씬 더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가짜뉴스가 가짜라는 게 드러나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5월 일본 나고야공업대·도쿄학예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는 팩트 체크 기사를 보여줘도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이 커진 탓이다. 유튜브 팬덤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연구위원은 “구독자에겐 정치 유튜브를 통해 맺어진 개인적 유대감도 중요한데,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허위 정보인 걸 알아도 좀처럼 태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는 사이비종교와도 비슷한 패턴”이라고 분석했다.

가짜뉴스의 폐해가 확산하면서 더 늦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튜브가 지난해 8월 가짜뉴스 제재에 나선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유튜브는 먼저 “암 환자에겐 방사선 치료보다 비타민C가 효과적”이라는 등 생명에 위협이 되는 허위 정보부터 삭제하기로 했다. 엘리자베스 앨런 미국 국무부 공공외교·공보 담당 차관도 지난달 방한해 안보를 위협하는 가짜뉴스에 한·미 양국이 공동 대응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문제는 유튜브 가짜뉴스 처벌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유튜브는 언론이 아닌 1인 방송으로 분류돼 있어 유튜브 제재가 자칫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상업주의에 기댄 선정주의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유튜버들의 자정 노력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며 “이용자 개인은 물론 정부와 플랫폼 업체 등이 더 늦기 전에 머리를 맞대고 가짜뉴스 양산을 막기 위한 실질적·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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