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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정치로 수억 버는 '신념 산업' 종사자 … 서울대병원을 휘젓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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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01면

양극단·증오 온상 된 정치 유튜브

[연합뉴스]

[연합뉴스]

 “○○신문이라네요. 취재를 허용할까요, 말까요.”

그의 한마디에 유튜브 공간이 순간 들끓었다. “색깔이 다른데, 결사반대!” “거기는 괜찮아요.” “그래도 왜 왔는지 물어봐요.” 2022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막 이삿짐을 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현장을 취재하던 한 언론사 기자가 특정 성향의 유튜버와 마주했다. 그는 “무슨 원맨쇼를 하듯 유튜버가 구독자들과 실시간 회의하더니 ‘취재를 허가한다’고 통보하더라”며 “순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벽에 맞닥뜨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현장은 기자 반, 유튜버 반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일 서울대병원. 습격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헬기로 이송되자 유튜버 60여 명이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꽂고 한 장면이라도 더 찍기 위해 병원 곳곳을 뛰어다녔다. 현장에 있던 지상파 방송 촬영기자는 “유튜버들이 한꺼번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니 취재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요즘 이런 현장에 가면 유튜버 7명에 기자 3명 비율일 정도로 유튜버들이 급격히 늘었다”고 전했다.

5대5에서 7대3. 1년 6개월여 만에 뉴스 현장은 유튜버 세상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들은 4월 총선을 앞두고 특정 진영에 기대며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그야말로 정치 유튜버들의 전성시대다. 기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앙SUNDAY는 이번주 이 대표가 입원한 서울대병원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다수의 유튜버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한국 정치의 판을 뒤흔들고 있는 정치 유튜브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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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들이 브리핑장을 습격해 기자들마저 취재 제한을 받는 것 같아요.”(S방송사 기자) “왜 취재기자만 출입을 허용합니까. 우리도 알 권리가 있잖아요.”(유튜브 채널 운영자)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습 후 입원한 서울대병원은 아수라장이었다. 기자와 유튜버들이 뒤엉켜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녔다. 파란 목도리를 두른 진보 성향의 유튜버들은 “대표님 힘내세요” “배후를 색출하라”고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이 공지된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 강당에는 유튜버 5명이 난입하기도 했다. 현장에선 “‘야! KBS 꺼져’ 등 유튜버들의 거센 항의에 KBS 기자가 잠시 카메라를 접기도 했다”는 말도 나왔다. 이날 ‘드물게’ 보수 유튜버도 있었는데 ‘다수’를 차지한 진보 성향 유튜버들은 그에게 “싸움 나기 전에 가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유튜브 뉴스 시청 5년 새 22%P 급증

정치 유튜버들에게 둘러싸인 이날 서울대병원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정재관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이게 바로 양극화와 혐오가 심화된 한국의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진보 유튜버 입장에선 KBS가 문재인 정부 때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됐다가 현 정부 들어 보수 성향으로 바뀌었다고 보고 공세를 펴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같은 유튜버들조차 이념 성향이 다르면 ‘구역’을 침범했다며 상대에게 설 자리조차 주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선 정치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알 권리’와 ‘팩트 전달’도 일방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입사 3년차인 KBS 카메라 기자는 “유튜버들은 성향에 따라 못 가거나 안 가는 현장이 있는 것 같다”며 “예를 들어 이태원 참사 기자회견이나 이번 서울대병원 현장은 보수 측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보니 보수 유튜버들이 스스로 안 가거나 제지를 당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보수단체 시위 현장의 경우 진보 유튜버들은 발을 못 붙인다. 현장에서부터 편 가르기가 심하다는 얘기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정치 양극화는 두 갈래다. 이념적 양극화와 정서적 양극화다. 정재관 교수는 “우리나라는 특히 정서적 양극화에 치중된 경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유튜브는 이 같은 정서적 양극화에 날개를 달아줬다. 국내 유튜브 뉴스 시청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66%)가 여전히 1위지만 지난해 기준 국민의 53%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본다(한국언론진흥재단). 2018년 31%에서 5년 새 22%포인트나 올랐다. 조사를 함께한 46개국 평균인 30%보다도 월등히 높다. 한 언론사의 정치 유튜브 시청률 조사(56.9%)와 비슷한 점으로 보건대, 이들 대부분이 정치 유튜브를 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양한 콘텐트 제공과 쉬운 접근성, 댓글의 익명성에 따른 고도화된 개인화, 강력한 추천 기능 등은 유튜브의 강점이자 단점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도 2021년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 유통 문제가 가장 심각할 것으로 우려되는 플랫폼으로 유튜브를 꼽았다. 정치 양극화와 혐오의 정치를 부채질할 우려가 가장 크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우선 알고리즘.

박모(58)씨는 진보 성향의 유튜브를 구독한다. 그는 “운영자와 패널들의 사이다 발언이 후련하다. 이런 게 언론에서 보여줄 수 없는 팩트고 정보라는 생각이 들어 구독 중”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 유튜브를 구독하는 이모(32)씨도 같은 말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었다. “한번 보수(혹은 진보) 성향의 유튜브를 클릭하니 ‘무서울 정도로’ 관련 유튜브들이 추천되더라”는 것.

실제로 취재진은 ‘윤석열’로 검색한 뒤 뜨는 특정 이념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봤다. 진보 채널에 들어갔던 기자는 처음엔 추천 동영상 20개 중 진보 채널이 4개만 떴다. 그러다 12회 차 접속 때는 13개로 폭증했다. 보수 채널에 들어갔던 기자는 추천 동영상 20개 중 보수 채널이 0개, 진보 채널이 2개였다. 그러다 보수 채널이 급격히 늘면서 12회 차에서는 보수 15개, 진보 4개로 역전됐다.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알고리즘에 따른 추천 동영상을 계속 보게 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나.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확증 편향’이 강해진다. 확증 편향은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추천을 통해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그런데 가용성 편향(생각하기 쉬운 게 실제로 일어난다고 여기는 것) 또한 강화된다. 특정 성향의 유튜브를 계속 보면 ‘세상의 여론이 이렇구나’ 생각하게 된다. 특이한 건 사고는 한쪽으로 쏠리면서 행위는 과격해진다는 점이다. 반대 여론은 사소하게 느껴진다. 이재명 대표를 습격한 범인도 ‘이게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유튜버들이 자극적인 언어를 쓰는데.
“사견임을 전제로, 돈이 되면 사람이 많이 모이고…. 다른 유튜버와 차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부정성 편향’은 대중이 부정적인 정보에 주의를 더 기울이게 된다는 심리인데 ‘나도 부정적인 내용으로 유튜브를 하면 차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효과가 좋다는 걸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보수·진보 유튜브 중간지대는 없어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렇다면 정치 유튜브는 누가, 왜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누가, 왜 보는 것일까.

“기자들이 기사를 똑바로 쓰면 우리가 여기(서울대병원) 나올 이유도 없다.” 전업주부에서 진보 성향의 유튜브 채널 운영자로 탈바꿈한 오모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만난 보수 유튜버도 “언론이 진실보다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며 여론몰이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 유튜브 ‘공급자’들의 이런 생각은 ‘수요자’의 생각과 맞아 떨어진다. 정치 유튜브를 참고해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방송·신문이 다루지 않는 정보를 주기 때문(32.6%)’을 유튜브 구독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한국리서치). ‘방송·신문이 왜곡된 정보를 담기 때문(25.5%)’ ‘방송·신문이 특정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기 때문(25.0%)’ 등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유튜브 뉴스는 60대 이상 시청률이 가장 높았지만, 지난해 20대·40대·50대 시청률이 10%포인트 이상씩 오르면서 순위가 뒤바뀌었다〈그래픽 참조〉. 진보 성향 이용자의 유튜브 뉴스 시청률은 62%를 기록하면서 보수 이용자(56%)와의 균형도 급격히 무너졌다. 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보수 정부에 대한 반작용으로 진보 성향의 유튜브 채널이 급격히 늘고 이에 따라 진보 성향 유튜브 이용자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정치 유튜브가 왜 늘고 있나.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필터 버블’로 걸러진, 보고 싶은 정보만 보게 되면 나만의 세계에 빠지기 십상이다. 유튜브라는 미디어, 정치 유튜버라는 특정 성향의 운영자가 그걸 이용한다. 이 유튜버들은 정치적으로 강한 주장을 상품으로 내세운 ‘신종 신념 산업’ 종사자다. 예능 유튜브에 ‘강한 주장’이 실리나. 정치라서 가능하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내용도 서슴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의 대안 마련도 미흡하다.
“거대 양당은 이를 해소하긴커녕 편 가르기와 혐오만 부추기고 있다. 진영을 공고히 해야 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9일 구독자가 가장 많은 보수 채널 두 곳과 진보 채널 두 곳의 이재명 대표 피습 관련 댓글 4000개를 검색했다. 보수 채널에는 이 대표 사건에 대해 비꼬거나 의심하는 단어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자작(57회)’ ‘특혜(43회)’ ‘쇼·쑈(37회)’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진보 유튜브 채널의 경우 이 대표 사건의 배후가 의심된다는 내용이 적잖았다. 댓글 창에도 ‘배후(74회)’ ‘진실(54회)’ ‘의심(48회)’ 등의 단어가 많이 보였다.

보수에서 진보를 비하하는 단어인 ‘개딸(34회)’ ‘좌빨(27회)’의 경우 보수 유튜브 댓글에선 80회 이상 찾아볼 수 있었지만 진보 유튜브 채널에선 0건이었다. 반대로 보수 유튜브 댓글에는 ‘죄명(이 대표를 비하하는 말)’이란 단어가 67회 나왔지만 진보 유튜브 댓글에는 1건도 달리지 않았다.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의 유튜브에 모두 댓글을 다는 비율은 0.45%에 그친다는 한 조사 결과가 여실히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중간지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보 채널에선 ‘탄핵(56회)’ ‘무능(36회)’과 윤석열 대통령을 비하하는 단어인 ‘굥(21회)’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처럼 양극화와 혐오를 부추기는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장승진 국민대 정외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대안은 없을까.
“보수 유튜브를 보면서 정치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갖게 되고 민주당을 싫어했던 사람이 있는데, 진보 유튜브를 함께 보게 되면서 그런 극단이 꽤 완화됐다. 이 사람의 1년 뒤 시청 패턴을 보니 보통의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보수적 정치 입장이라도 진보 성향의 유튜브를 참고하면 추천 영상도 균형을 맞추게 되고 이를 통해 정치 양극화와 혐오도 한층 누그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한국인은 자신의 뉴스 소비에 기반한 추천(37%)을 선호한다. 26개국 평균(30%)보다 더 높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정치 유튜버들은 갈수록 확산하는 추세다. 인기 있는 정치 유튜브 운영자(대표)들은 스스로를 언론인으로 부르거나 언론인 출신 또는 시사평론가들이 많지만 최근에는 오씨처럼 ‘일반인’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오씨가 운영하는 채널은 구독자가 3000명에 이른다.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만난 한 유튜버는 구독자가 3700명이었다. 구독자 180만 명, 슈퍼챗(구독자 후원금) 4억원 등 인기 정상인 정치 유튜브 대열에 올라서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현장’에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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