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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냐 중국이냐"...오늘 대만 운명 가를 총통선거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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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밤 경기도 판교와 이름이 같은 대만 신베이(新北)시 반차오(板橋) 제2 운동장에서 열린 민진당 ‘승리 전야’ 마지막 유세장 단상에 입법위원 후보들이 올랐다. 주최측은 오후 8시에 5만명이 모였다고 집계했다. 전날 타이베이 유세에는 20만명이 운집했다. 신베이=신경진 특파원

12일 밤 경기도 판교와 이름이 같은 대만 신베이(新北)시 반차오(板橋) 제2 운동장에서 열린 민진당 ‘승리 전야’ 마지막 유세장 단상에 입법위원 후보들이 올랐다. 주최측은 오후 8시에 5만명이 모였다고 집계했다. 전날 타이베이 유세에는 20만명이 운집했다. 신베이=신경진 특파원

세계냐 중국이냐, 민주가치 사수냐 전제주의 굴복이냐.

12일 밤 경기도 판교와 이름이 같은 대만 반차오(板橋) 제2 운동장에서 열린 ‘승리 전야’ 마지막 유세장. 라이칭더(賴淸德) 민주진보당(민진당) 총통 후보가 쉰 목소리로 “대만의 운명은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렸다”며 총통·입법위원·정당표 3표를 호소했다. 지지자들은 “총통하오(總統好), 총통하오. 둥쏸(凍蒜)! 둥쏸! 둥쏸!”을 외치며 환호했다. 얼린 마늘을 뜻하는 둥쏸은 현지어로 당선(當選)과 발음이 같아 대만의 선거 유세 단골 구호다.

12일 밤 경기도 판교와 이름이 같은 대만 신베이(新北)시 반차오(板橋)에서 열린 국민당(왼쪽)과 민진당의 마지막 유세 모습. 사진 국민당·민진당

12일 밤 경기도 판교와 이름이 같은 대만 신베이(新北)시 반차오(板橋)에서 열린 국민당(왼쪽)과 민진당의 마지막 유세 모습. 사진 국민당·민진당

전쟁이냐 평화냐, 청렴이냐 부패냐. 민주는 견제가, 정당은 교체가 필요하다.

같은 시간 국민당은 민진당 유세장과 약 1.4㎞ 떨어진 반차오 제1 운동장에서 정권 교체를 요구했다. 허우유이(侯友宜) 국민당 총통 후보는 “집중투표”를 외쳤다. 입법원(의회) 과반으로 제1당을 노리는 국민당 허우 후보는 이날 거리 유세에서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이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를 ‘미국의 위험한 친구’라고 지목했다”며 “우리 아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다만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는 시진핑을 믿어야 한다”는 ‘신습론(信習論)’ 발언을 한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은 마지막 유세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만은 홍콩이 아니다. 일국양제(하나의 나라 두 개의 제도)가 홍콩 모델이라면 대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제3당 돌풍의 주인공 커원저(柯文哲) 민중당 총통 후보는 이날 기자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외신 기자회견에서 ‘차이잉원 외교 노선’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내가 미국과 중국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라며 “미국과 중국은 ‘No surprise’를 원한다”고 차별화했다. 커 후보는 이날 밤 서울의 광화문 광장 격인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凱達格蘭) 대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이어갔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양안 이슈가 대만 선거전 막판에 다시 급부상했다. 마잉주 전 총통의 시진핑 발언에 유권자들이 동요하고 국민당에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하는 기류가 형성되면서다.

11일 민진당 유세장에서 만난 70대 지지자 천윈칭은 “제2의 우크라이나를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만민국 만세”가 적힌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들던 그는 “커원저 효과 때문에 라이칭더가 적은 표 차이로 이길 것”이라며 “라이가 이긴다면 대만은 사실상 독립 국가임을 과시하겠지만, 만일 다른 후보가 당선된다면 대만은 (러시아가 침공한) 제2의 크림반도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현지에서는 라이칭더가 승기를 잡았다고 보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대만 의사협회 쪽에서 민진당이 50만~100만 표 차로 승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의회는 민진·국민당 모두 과반을 넘기지 못하면서 민중당이 200만 표까지 약진할 수 있다”고 대만 현지의 한 기업인이 민심 동향을 귀띔했다.

12일 밤 경기도 판교와 이름이 같은 대만 신베이(新北)시 반차오(板橋) 제1 운동장에서 열린 국민당 마지막 유세 모습. 신베이=신경진 특파원

12일 밤 경기도 판교와 이름이 같은 대만 신베이(新北)시 반차오(板橋) 제1 운동장에서 열린 국민당 마지막 유세 모습. 신베이=신경진 특파원

그런 가운데 정권교체론도 사그러들지는 않았다. 12일 만난 우버 기사 린밍즈(37)씨는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정당 교체의 기회”라며 “8년마다 정권을 교체했던 선례가 이번에도 이어지기 바란다”고 집권당 교체를 통한 부패 방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사안의 중대함을 방증하듯 미국과 중국은 대만 선거를 앞두고 고위급 접촉을 이어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2일(현지시간) 차기 외교부장설이 나오는 류젠차오(劉建超) 중앙대외연락부장과 만날 예정이라고 미국의소리(VOA)가 보도했다. 블링컨·류젠차오 회담에는 선거 직후 타이베이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진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무부 부장관도 참석한다고 VOA가 전했다.

앞서 10일 류젠차오 부장은 존 피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만나 중국의 대만 관련 입장을 밝혔다고 중련부가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다음주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해 리창(李强) 총리와 만나 대만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대만 선거 결과는 한국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왕신셴(王信賢) 정치대 국제관계연구센터 부주임은 “(대만 선거에서) 미국에 완전히 기운 정당과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쪽 중 누가 이기느냐는 4월 한국 총선에도 함의를 준다”고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왕 부주임은 “만일 라이칭더가 당선된다면 당선 첫 발언이 매우 중요하다”며 “중국은 5월 20일 취임식까지 기다리지 않고 13일 당선자 확정 순간부터 대만해협에서 군사적·비군사적 방식으로 압박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대만해협은 원유를 포함해 한국의 무역 물동량 42.7%(해협 근접 해로 35.6%, 인근 해로 7.1%)가 통과한다. 대만해협의 안정이 한국의 국익과 직결되는 이유다.

게다가 2023년 11월 기준으로 대만은 한국의 6위(수출 5위, 수입 7위) 교역 대상이기도 하다. 인적 교류도 급증 추세다. 지난해 11월까지 한국을 방문한 대만인은 87만6439명, 대만을 찾은 한국인은 63만9900명을 기록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고 있다.

김준규 타이베이 무역관장은 “반도체 강국인 대만은 2033년까지 약 13조원을 투입하는 ‘칩(Chip)이 구동하는 대만산업혁신 계획’을 통해 반도체 설계 팹리스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현재 20%에서 40% 도달을 목표하고 있다”며 “대만과 무역에서 수출 47%, 수입 73%를 차지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양측의 유기적인 경쟁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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