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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이든 통일이든 관심없어"…대만 MZ는 집값이 더 급했다 [대만 총통선거 D-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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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만 독립도, 일국양제도 관심 없다. 집값을 낮춰줄 후보를 뽑겠다.

11일 대만 신베이에서 민중당 커원저 후보 지지자들이 줄을 서서 커 후보와의 사진 촬영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11일 대만 신베이에서 민중당 커원저 후보 지지자들이 줄을 서서 커 후보와의 사진 촬영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총통선거(대선)·입법위원선거(총선)를 이틀 앞둔 11일 타이베이 시내의 국립 정치대 캠퍼스에 만난 3학년 류(柳)모의 말이다. 그는 기자에게 “(민진당이 주장하는) 독립도, (국민당이 말하는) 통일도 비현실적이다. 전쟁 없는 평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캠퍼스 벤치와 학교 주변 카페에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은 선거 이야기에 한창이었다. 정치학 전공자인 2학년생 추이(崔)모는 “젊은 세대는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대만이 '제2의 홍콩'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막판 치열한 선거전을 의식한 듯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 대부분 성만 써달라고 당부했다.

‘2024년 첫 민주주의 시험대’(블룸버그)로 꼽히는 대만 총통·입법원선거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 CNN은 선거 분위기를 전하면서 “결과가 국경 훨씬 너머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전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와 미·중 관계는 물론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대만 MZ 세대의 표심은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선거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집권당인 민진당은 반중·친미·독립 노선, 제1야당인 국민당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내세우고 있다. 두 당은 8년 주기로 번갈아 집권해왔다.

그런데 실업·저임금 문제에 불만인 MZ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경제 이슈를 중시한다. 이들은 기성 정당인 민진·국민당 대신 제2 야당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후보를 주로 지지했다.

지난 6일 대만 신베이시에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 지지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6일 대만 신베이시에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 지지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 후보와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가 박빙의 선두 다툼을 벌이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 MZ 세대의 표심이 그대로 민중당을 가리킬지, 아니면 민진당 또는 국민당으로 옮길지가 총통 선거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권자 16.2%를 차지하는 20대(20~29세) 유권자가 예측 불가능한 이번 선거의 균형을 깨뜨릴 것이라고 전했다.

민진당과 국민당 모두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해 각각 최저임금 인상, 생애 첫 주택 구입 시 1500만 대만달러(약 6억3000만 원) 대출 지원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MZ들 다수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타이베이 기차역에서 만난 20대 웨이(魏)모는 “국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 민진당은 ‘중국의 선거 개입 반대’를 외치지만 생활과 동떨어진 문제”라고 비판했다.

타이베이 쇼핑가인 시먼딩(西門町)에서 만난 직장인 선(沈·34)모도 “초봉이 너무 적다. 공공주택도 대만이 가장 뒤처졌다”고 민생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 저임금이 이슈가 된 대만 직장인의 평균 월급은 약 182만원으로 한국(252만원), 홍콩(345만원), 싱가포르(488만원) 등에 비해 낮다.

투표 10일 전부터 여론조사 발표가 금지된 상황에서, 현지 전문가들은 총통선거에선 집권 민진당의 신승(辛勝)을 조심스레 예상했다. 의회 선거에선 민진당과 국민당 모두 과반 의석을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9일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 지지자들이 선거 유세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일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 지지자들이 선거 유세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커우젠원(寇健文) 정치대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에 “40~43% 지지도로 당선된 총통과 다수당 없는 국회가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진·국민당이 8년마다 정권교체를 해온 관례는 깨지지만, 국민당과 민중당이 민진당을 앞서는 여소야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MZ의 지지를 받는 제3당 민중당이 향후 정국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분출된 MZ들의 여론이 대만 국내 정치는 물론 양안관계, 미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는 “2030이 지지하는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는 양안 문제에 대한 입장은 국민당에 가깝지만, 미국의 대중 노선을 지지하는 등 사안에 따라 유동적인 입장”이라며 “의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면 기존 양당 체제에서 볼 수 없었던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선거 막판 대중 관계를 둘러싼 각 당의 논쟁도 이어졌다. 국민당 출신의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은 9일 독일 도이체벨레(DW) 인터뷰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시진핑 주석을 신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10일 라이칭더 후보와 커원저 후보는 국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라이칭더는 유세 중 “정말로 시 주석을 믿어선 안 된다”며 “중국이 온갖 문화·군사·경제적 위협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있는데 이 공작이 성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커원저도 “시 주석보단 자기 자신을 믿는 게 안전하다”며 국민당을 꼬집었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도 “나와 마 전 총통의 대중 노선은 조금 다르다”며 거리두기에 나섰다.

대만 정당의 전통적 지지층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느껴졌다. 10일 식당에서 만난 중국 선전(深圳)에 거주하는 대만 기업인 천(陳)모는 “고압적인 중국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며 “타이상(臺商·중국내 대만 기업가)은 모두 국민당 지지라는 통념이 바뀔 때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만 총통·의회 선거는 13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한국시간 9시~17시)까지 치러진다. 이날 밤이면 당선자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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