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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칭더 “운명은 우리 손에” 허우유이 “전쟁이냐 평화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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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03면

대만 총통 누가 될까 - 오늘 대만 총통·입법원선거

신경진 특파원 현장을 가다

12일 밤 대만 신베이시 반차오 운동장에서 열린 민진당 유세장 단상에 입법위원 후보들이 올랐다. 주최측은 5만명이 모였다고 집계했다. 신경진 기자

12일 밤 대만 신베이시 반차오 운동장에서 열린 민진당 유세장 단상에 입법위원 후보들이 올랐다. 주최측은 5만명이 모였다고 집계했다. 신경진 기자

“세계냐 중국이냐, 민주가치 사수냐 전제주의 굴복이냐.” 대만 총통 선거를 하루 앞둔 12일 밤 타이베이 근교의 반차오(板橋) 제2 운동장에서 열린 민진당의 마지막 유세장.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쉰 목소리로 “대만의 운명은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렸다”며 총통 선거는 물론 함께 치러지는 입법위원 선거에서도 표를 민진당으로 몰아달라고 호소했다. 여론 조사에서 근소한 차로 앞선 라이 후보가 입법원(국회) 과반수까지 차지해 안정된 정국 운영을 해야한다는 메시지였다. 지지자들은 라이 후보에게 “둥쏸(凍蒜)! 둥쏸! 둥쏸!”을 외치며 환호했다. 얼린 마늘을 뜻하는 둥쏸은 현지어로 당선(當選)과 발음이 같아 대만의 선거 유세 단골 구호다.

“전쟁이냐 평화냐, 청렴이냐 부패냐. 민주주의는 견제가, 정당은 교체가 필요하다.” 같은 시간 허우유이(侯友宜) 국민당 후보는 민진당 유세장과 약 1.4㎞ 떨어진 반차오 제1 운동장에서 정권 교체를 외쳤다. 1996년 총통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3기 연속 집권을 허용치 않은 대만 유권자들의 견제심리를 자극해 민진당 8년 집권을 끝내고 이제는 국민당이 정권을 돌려받을 차례라고 호소한 것이다. 허우 후보는 이날 거리 유세에서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이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를 ‘미국의 위험한 친구’라고 지목했다”며 “우리 아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반중(反中) 친미 성향의 라이칭더 후보 당선이 몰고올 양안 위기 발발 가능성을 강조하는 전략이 “전쟁이냐 평화냐”란 구호로 집약됐다.

“대만은 홍콩이 아니다. 일국양제(하나의 나라 두 개의 제도)가 홍콩 모델이라면 대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제3당 돌풍의 주인공 커원저(柯文哲) 민중당 총통 후보는 이날 기자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외신 기자회견에서 ‘차이잉원 외교 노선’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대신 중국과의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임을 동시에 강조했다. 그는 “나는 미국과 중국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라며 “미국과 중국은 ‘노 서프라이즈(No surprise)’를 원한다”고 차별화했다. 커 후보는 이날 밤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凱達格蘭) 대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이어갔다.

대만해협, 한국 무역 물동량 43% 통과

라이칭더, 허우유이, 커원저(왼쪽부터 순서대로). [EPA=연합뉴스]

라이칭더, 허우유이, 커원저(왼쪽부터 순서대로). [EPA=연합뉴스]

이번 대만 총통 선거전은 2강1중의 구도로 이어져왔다. 공표금지기간 직전 발표된 여론조사들에서는 민진당 라이 후보의 지지율이 3~5% 포인트 차이로 오차범위 안에서 국민당 허우 후보보다 높았다. 그런 가운데 갑작스레 불거진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의 이른바  ‘신습론(信習論)’ 발언이 선거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국민당 소속의 마 전 총통은 지난 10일 독일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는 시진핑을 믿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총통 재직 당시인 2015년 싱가포르에서 시 주석과 최초의 양안 정상회담을 했던 장본인이다. 마 총통의 발언은 안정적 양안 관계를 득표 전략으로 내건 허우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반중 성향 유권자들을 결속시킴으로써 국민당에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탓인지 마 총통은 12일 유세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만 현지에서는 라이칭더가 승기를 잡았다고 보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대만 의사협회 쪽에서 민진당이 50만~100만 표 차로 승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의회는 민진·국민당 모두 과반을 넘기지 못하면서 민중당이 200만 표까지 약진할 수 있다”고 대만 현지의 한 기업인이 민심 동향을 귀띔했다. 11일 민진당 유세장에서 만난 70대 지지자 천윈칭은  “라이칭더가 이기긴 하겠지만 표차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라이가 이긴다면 대만은 사실상 독립 국가임을 과시하겠지만, 만일 다른 후보가 당선된다면 대만은 (러시아가 침공한) 제2의 크림반도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반민진당 메시지 “독립은 죽음의 길”

수식

수식

대만 총통 선거가 국제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유는 미·중 경쟁과 중국의 대만 통일 전략 등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중국은 12일 반(反) 민진당 메시지를 재차 발신했다. 장샤오강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민진당 당국은 대만 보통 사람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미국 무기를 사는 데 쓰고 있지만, 통일이라는 대세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도 “대만 독립은 대만 해협 평화의 가장 큰 위협이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대만 선거 결과는 한국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왕신셴(王信賢) 정치대 국제관계연구센터 부주임은 “만일 라이칭더가 당선된다면 당선 첫 발언이 매우 중요하다”며 “중국은 5월 20일 취임식까지 기다리지 않고 13일 당선자 확정 순간부터 대만해협에서 군사적·비군사적 방식으로 압박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대만해협은 원유를 포함해 한국의 무역 물동량 42.7%(해협 근접 해로 35.6%, 인근 해로 7.1%)가 통과한다. 대만해협의 안정이 한국의 국익과 직결되는 이유다. 2023년 11월 기준으로 대만은 한국의 6위(수출 5위, 수입 7위) 교역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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