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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실사구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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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31면

민감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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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6월 베이징의 이화원 북쪽에 자리한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캠퍼스를 방문했다. 당시 당교에는 네 명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새긴 ‘전우’, 1943년 3월~1947년 3월 당교 교장이었던 마오쩌둥을 조각한 ‘우리의 옛 교장’, 덩샤오핑의 동상 ‘총설계사’였다. 마오쩌둥 동상 앞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爲人民服務)’가 새겨진 돌비석이 놓여있었다.

“실제에서 옳음을 구하라”는 실사구시는 마오가 당교를 위해 제정한 교훈(校訓)이다. 1938년 10월 중공 6기 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마오는 “공산당원은 실사구시의 모범이어야 한다”며 “오직 실사구시만이 확정된 임무를 완성할 수 있다”고 했다. 덩샤오핑은 마오의 실사구시에 더해 독단에 빠지지 말라며 사상해방을 보탰다. 마오의 후계자 화궈펑의 권력 원천이던 “마오쩌둥이 생전에 내린 모든 결정과 지시는 옳다”는 이른바 ‘양개범시(兩個凡是)’를 물리친 마법의 주문이 실사구시였다.

지난해 말 실사구시가 중국에서 민감어 경계선에 놓였다. 중국 경제지 『차이신주간(財新周刊)』의 12월 25일 자 사설 ‘실사구시 사상노선을 되새기자’가 온라인 게재 하루 만에 삭제당하면서다.

글은 예리했다. “문혁 기간 국민 경제가 붕괴에 임박했지만 당국은 여전히 상황이 좋다고 반복했다”며 “실제 민생은 힘들고 빈궁하고 낙후했으며 선진국과 차이는 갈수록 벌어졌을 뿐 아니라 비약하는 주변국가보다 멀찌감치 뒤처졌다”고 지적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知恥近乎勇), 오직 실사구시를 따랐기에 중국이 절대 빈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히는 후수리(胡舒立·71) 차이신 대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소환설에 휩싸였던 후 대표는 1일 위챗(중국판 카카오스토리)에 “많은 축하를 받고 답장을 보낸다. 2024 새해 축하”라며 신년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그가 중국판 트위터라 불리는 웨이보(微博)에 올렸던 글들은 4일 모두 사라졌다. 같은 날 ‘차이신’은 온라인에 새로운 연재를 시작했다. ‘망명한 선배의 길을 다시 가다(重走前輩流亡路)’ 기행이다. 후 대표의 외가쪽 홍군의 이야기다. 왕치산·주룽지·원자바오·고(故) 리커창·태자당·월스트리트까지 두루 관계가 좋은 후 대표의 실사구시 외침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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